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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d Nov 11. 2022

주었다고 생각했으나 사실은 받았던 것들 5

긴장 혹은 사랑의 시작

그는 보았다. 그 녀석과 그녀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그가 군 복무로 다니던 동사무소, 정확히는 동대본부 근처에는 고아원이 있었고 거기 아이들을 위해 합창단을 만들겠다고 했지만 변변찮은 실력에 후원도 없이 쉽게 일이 될 리 없었다. 뭘 해도 내편일 그 녀석이 없었다면 진즉에 도망갔을지도 모른다. 그 녀석은 그에게 좋은 일이라고 잘한다고 격려했고 그 힘에 친하지도 않고 오히려 서먹한 그녀에게까지 전화를 돌렸던 것이다. 매주 토요일의 연습에 그 녀석이 나타났다. 근처 시장에서 떡볶이를 커다란 비닐봉지에 가득 담아 마치 산타처럼 등에 지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 장면을 피아노에 앉아있느라 보지 못했던 그녀는 아이들의 환호와 웃음소리에 뒤를 돌아봤고 거기엔 그 녀석이 짧은 머리로 땀을 뻘뻘 흘리며 엉거주춤 서 있었던 거다. 


아이들은 악보고 뭐고 팽개치고 달려가버렸고 그릇이랑 뭐랑 준비해야 먹을 수 있다고 소리를 지르는 그 녀석은 도망이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그와 그녀는 웃지 않을 수 없다. 그녀의 얼굴이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도. 


어색함은 잠시. 잘 지냈냐는 말이 오가고 얼굴이 그게 뭐냐고 질러대는 그 녀석의 입을 그는 한사코 막아보지만 그녀는 얼굴에 여드름이 있어도 여전히 예쁘다며 지지 않는다. 더 먹을 게 없는지 탐색하는 식탐 가득한 한 아이가 셋을 빤히 바라보다 노래를 한다. 어디서 들은 건지, 아님 어디서 배운 건지. 마법의 성을 부른다. 왜 그랬을까. 그 녀석도 따라 부른다. 얼굴에는 장난기가 가득하지만. 그는 그 녀석의 모습에 전에 들었던 5살 그 녀석 모습이 겹치는 것 같다. 그녀는 피아노로 냉큼 가서는 둘에 맞춰 연주를 한다. 난장판으로 떡볶이를 먹던 아이들 중에도 노래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그는 생각한다. '이 곡은 연주회를 하게 되면 무조건 해야겠다'라고. 


매주 토요일, 아이들과의 연습은 점점 나아진다. 깡마르고 햇빛에 그을린 듯 구릿빛 얼굴에 스프링 같은 곱슬머리를 한 우찬이라는 아이가 연습 중 창밖을 보더니 갑자기 소리를 지른다. 


"어! 엄마다!"  


연습은 엉망이 되고 아이들은 갑자기 엉켜서 창문 쪽으로 달려간다. 우찬의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높은 목소리였는데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되어 엄마를 부른다. 그와 그녀는 난감하지만 우찬을 보내준다. 


"우찬아, 엄마랑 좋은 시간 보내고 와."


다음의 토요일에는 우찬이 보이지 않는다. IMF사태로 갑자기 어려워졌던 우찬이네가 경제적으로 회복을 한 모양이다. 그는 더 이상 보육원에 머무르지 않게 된 것이다. 그는 나에게 작은 쪽지를 남겼다. 아이들이 그렇듯 대단한 메시지는 없다. 그저 몇 글자가 날아가는 새 모양으로 적혀있을 뿐이다. 


"노래해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그와 그녀가 날아가는 새 모양의 글자를 하나씩 추정해가며 읽은 결과다. 그와 그녀는 다시 힘을 얻었고 한 달 후에는 동네 사람들을 초대해서 하기로 한 발표회를 틀림없이 해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거기에 그 녀석도 있다. 


"그러니까 이거는 내가 할게. 우리 경찰서에서 복사할 수 있을 거야."

순서지를 인쇄하겠다고 먼저 나선다. 처음에 느껴졌던 셋 사이의 긴장이 사라졌다. 그녀도 거기에 더한다. 


"우리 학교에 연주 동아리가 있으니까 나는 거기에 찬조 출연을 부탁해볼게."

"야 근데 그 동아리에 예쁜 애들 많냐?" 그 녀석이 진지하게 묻는다. 

"나 정도 되는 애들은 없지."

"헉" 그가 진심으로 놀란다. 


그는 아직도 그녀가 편하지는 않다. 언제 그만둔다고 해도 설득하거나 마음을 돌리게 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음 주에도 그저 나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반면에 그 녀석은 의무 경찰로 복무하는 이 시절에 매주 토요일 근무를 빠지고 나오는 게 쉽지 않은데 무슨 마법을 부리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히 보이는 것은 그가 어떤 대가를 지불하는지 몰라도 그 대가는 그녀를 보는 것으로 충분히 상쇄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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