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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소해 Feb 22. 2022

한 스푼의 시간

일상에 매달려 전전긍긍하거나 혹은 바쁘게 보내다 보면 하루가, 일주일이, 그렇게 순식간에 시간이 흐른다. 엄청  무엇인가 되고자 했지만 어느 순간엔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다. 2022년도 벌써 2월이 끝나가고 있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 년을 조금 너무나 그렇다지. 그 우주 안의 콩알만 한 지구도 태어난 지 45억 년이나 되고. 그에 비하면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단다. 그러니 자신이 이 세상에 어떻게 스며들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하고 나면 이미 녹아 없어져 있지." <<한 스푼의 시간>>(구병모 저)


지금 내가 느끼는 시간의 빠름을 '세제 녹는 시간'으로 표현해 낸 구병모 작가의 표현력에 감탄한다. <<한 스푼의 시간>>을 읽게 된 건 우연히다. 독서 모임방에서 누군가 추천한 책이었다. 추천했다고 다 읽지는 않지만 그냥 나도 모르게 끌려 읽게 되었다.

아내도 잃고, 허름한 동네 한 구석에서 세탁소를 하던 명정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8개월 전에 비행기 사고로 잃었다. 시신을 찾지도 못한 채 그렇게 아픈 마음을 달래며 지내고 있는 어느 날, 아들의 물건이라며 아들의 회사 동료가 보낸 커다란 택배를 받게 된다.


배달된 건 17세 정도 돼 보이는 남자아이 로봇이다. 로봇을 만든 회사가 문을 닫아 수리도 부품 교체도 안 되는 설명서도 외국어로 되어 있고 어떻게 동작하는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 학습을 통해 배우는 로봇이었다.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듯 명정은 이 로봇을 받아들인다. 태어나면 지으려고 했단 둘째의 이름을 부여한다. 그리고 로봇은 이제 존재의 의미가 생긴다.


"상상 속에서 수도 없이 불렀기에 낯설지 않은 존재의 이름이 구체적인 발음과 형태를 띠고 혀끝에서 흘러내리는 순간, 그는 이 유용한 도우미를 가족 비슷하게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로봇인 은결은 사람을 닮았다. 걷고 서고 혼자 밥을 먹고 말하게 되기 까지를 마쳤다고 해도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청소년들은 아직도 세상과 만나고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일까 비슷한 또래의 시호와 준교도 함께 등장한다. 그들도 인생의 풍파를 만나며 은결이처럼 세상을 배워간다.


은결은 자신이 알지도 못한 채 시호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품게 되고, 정해진 패턴을 깨트리고 혼자 산책도 하는 등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한다. 어렴풋이 사랑에 대해 알게 되어 가는 은결은 상실과 죽음까지도 자신도 모르게 배우게 된다.


"—사람이 스스로 죽음을 택할 때란 어떤 때입니까.

  —지구 상에 사람이 70억 명이나 되는데 그들 각자의 이유라면 70억 가지도 넘겠지만 너한텐 말해줄 수가 없구나. 말해본들 네가 알지 못할 좌절이기도 하고.


  그때 은결의 머릿속에서 표적을 알지 못하는 방아쇠가 당겨진다. 다리의 신경을 지탱하던 인공세포들이 일순간 휘발되기라도 한 듯 은결은 욕조 깊이 주저앉는다."


명정이 병으로 세상을 떠나자 은결은 자살하려 한다. 위기의 순간 겨우 준교의 도움으로 은결은 살아난다. 외모는 늙지 않는 은결이지만 준교와 시호도 세상을 떠난 준교 아이와 함께 있는 은결은 나이 많은 할아버지 같다. 배터리 충전 시간이 짧아지고, 걸음도 절뚝거리고 한쪽 눈 마저 잘 보이지 않는다.


은결이 혼란스러워하며 느끼는 감정과 생각들, 내가 감정에 대해 은결이보다 더 잘 알고 있는 걸까? 자문해본다. 느끼는 세세한 감정들이 왜 생기고, 그 미묘한 차이가 무엇이며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6살 딸아이가 다양하게 느껴지는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지 못해 떼쓰고 우는 것처럼 겉으로는 이성적으로는 이해된다, 납득된다 하지만 결국 잘 소화하지 못해서 다른 식으로라도 폭발하거나 병이 되거나 하는 우리네 모습을 보며 은결과 무엇이 크게 다를까 싶다.


은결의 모습을 통해 죽기 전 로봇인 은결처럼 행복과 아름다움을 깨닫고 죽을 수 있다면 참으로 다행일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은결은 아직 작동을 멈추지 않았으며, 그는 이토록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야 인간이 말하는 행복이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이제 소모될 대로 소모된 내장 배터리가 태양열로는 더 이상 충전되지 않더라도, 플러그를 꽂은 채로 예전보다 전원 대기 모드가 턱없이 길어지더라도, 감사가 어떤 것인지 또한 알 것만 같다."


삶, 사랑, 감사, 죽음, 가족 등 이 모든 것을 깨달아 알기에 우리의 한 스푼의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그래서 오늘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 깨닫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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