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소해 Feb 23. 2022

파랑 연못에 사는 그들처럼


아이가 티브이로 읽어주는 동화를 보길래 옆에 앉아서 빨래를 개며 보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 나온다.  


파랑 연못에 사는 파랑 오리가 버려진 아기 악어를 키운다. 악어는 파랑 오리 덕분에 수영하는 법도, 먹이를 잡는 법도 배운다. 그렇게 어른이 된 악어. 어느 날 파랑 오리는 악어를 기억하지 못한다. 악어는 기억이 사라진 파랑 오리를 파랑 오리가 자신을 돌봐주었듯이 돌봐준다. 그리고 파랑 오리가 사라지면 파랑 연못에 간다. 

<<파랑 오리>>(릴리아 글그림, 킨더랜드)


파란 오리를 안고 있는 악어는 행복해 보인다. 


일상생활에서는 가족의 얼굴을 유심히 볼 일이 별로 없다. 매일 보는 엄마, 아빠 (심지어 남편도)인데도 대충 본다. 누군가를 빤히 쳐다보는 일은 회사에서 회의하며 싸울 때 정도? 대부분은 대충 쳐다보고 인사도 대충 한다. 누군가를 깊이 들여다보는 건 사랑에 빠졌때 빼고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이야기하다 깨닫는다. 엄마, 아빠 언제 이렇게 늙으셨지?


아이가 자라는 걸로 나이를 실감하지 다 큰 어른들은 한 해가 가고 나이가 먹어감을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 외모와 상관없이 나는 늘 20대 같고 부모님은 늘 4,50대 같다. 내가 부모님 나이가 되었는데도 내 정신 연령은 아직 거기다. 


아마도 부모님이 시계처럼 살고 계셔서 일거다. 새벽기도를 가고, 필사를 하고, 아침을 준비하고, 하루를 마치고 집에 와서 티브이를 보며 함께 이야기하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항상 그렇게 반복될 것 같은 그 일상을 보내고 계시기에 마치 내일이면 당연히 아침이 온다고 생각하듯이 늘 부모님은 그런 모습이실 것 같다. 


아빠가 무릎이 아프다고 하신다. 하루 사이에 얼굴이 핼쑥해지셨다. 전에 아프다 하실 땐 그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연세가 드시니 조금 편찮으셔도 바로 티가 난다. 


엄마는 잘 못 주무신다고 한다. 갱년기 때문에 시작된 불면증은 사라질 줄 모른다. 불면증으로 얼굴색이 안 좋아지고 팽팽했던 피부는 갑자기 쭈글쭈글해진 것 같다. 늘 40대 같았는데 갑자기 70대가 되신 것 같다. 


파랑 오리가 키운 악어는 파랑 오리를 잘 돌보는데, 나는 내 자식까지 엄마, 아빠께 맡기고 있다. 그리 대단하고 거창하게 돈을 버는 일을 하거나 세상을 구할 만큼 대단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혼자 악어와 스스로 비교하고 작아지는 느낌이다. 


문득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은 피고 나고 지고 사라지는데, 유한함을 잊고 마치 영원을 살듯이 일상에 머리를 파묻은 채 살고 있다는 걸 물속에서 고개를 꺼낸 듯한 느낌으로 깨닫는다. 


아깝고 안타깝고, 아프다. 


하지만 이런 느낌도 잠시 파도가 지나가듯 지나가고, 다시 나는 일상의 물속에 머리를 파묻고 살겠지. 얼른 코로나가 끝나서 엄마, 아빠와 좋은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 스푼의 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