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을 통해 글을 쓰면서 매일매일 글을 써나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는 사실 힘들지 않다. 무엇이든 그냥 쓰면 그만이다. 처음에는 기계적으로 썼다. 서평을 쓰던 제품 후기나 방문기를 쓰던, 무엇인가 쓸거리를 찾아서 떠오르는 생각을 그저 써 내려가면 그만이다. 내 글을 누가 어떻게 평가하듯 신경 쓰지 않고 쓰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를 두고 기계적으로 쓰라고 하면 계속 쓸 수 있다.
하지만 기계적이라고 생각 없이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써 내려가면서도 계속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하게 된다. 목적을 가지고 글 쓰기 싫어서 생각하고 느끼는 걸 쓰기도 해 본다. 쓰면서 내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구나, 이때 이런 감정이 드는구나, 이런 고민을 하고 이런 결론을 내리는구나 알게 된다. 나는 내가 아니라 '나'라는 이름을 가진 어떤 사람 같다.
글쓰기 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지만 이제야 나도 깨닫는 것은 글을 쓰면서 나 자신을 성찰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거다. 깨닫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나를 직면하기가 어렵다. 지난번에 결심한 건 실천도 안 하고 이번에 또 결심하고, 책에 나온 이야기는 다 안다면서 실천은 안 한다. 실천을 안 하는 걸 알면서도 안 한다. 생각의 지경이 좁고 깊이도 얕고 결심하지만 지속하지 못하며 작은 유혹에도 쉽게 흔들리는 '나'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답답함에 짜증이 나는 지경에 이른다.
책을 읽고 있고 글을 쓰고 있기에 내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커다란 쳇바퀴를 천천히 돌고 있는 것 같다. 쳇바퀴를 도는 사실을 깨달으면, 또 한 번 자괴감이 드는데 그 이유는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도 그 쳇바퀴를 벗어나지 못하는지 한심하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세상에 대해 내가 과연 아는 것은 뭘까? 글쓰기 앞에서 나는 참으로 초라해진다. 줌인 모드로 사는 나를 줌 아웃시켜서 먼지보다 작은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잠시 어떻게 하면 쳇바퀴에서 벗어날까 생각해본다. 책을 제대로 안 읽은 걸까? 결심을 더 독하게 실천해야 할까? 그냥 매일 쓰면 되는 걸까?
발레가 생각난다. 지금도 헤매고 있긴 하지만 처음보다 힘이 생겨서 다리도 좀 더 높이 들 수 있고, 턴도 전보다 한 바퀴는 더 돌 수 있다. 할 때는 매일 해도 느는 게 없다고 좌절했지만 2년이 지난 지금 처음 할 때보다 많이 좋아졌다.
글쓰기도 발레 했듯이 너무 좋아서 매일 한 2년 하면 조금 늘려나? 쳇바퀴에서 벗어나려나? 글쓰기도 발레처럼 좀 좋아할 만한 구석이 있긴 한 걸까? 아름다운 발레리나들의 시범을 보듯이 유려한 글들을 보면 감탄하면서 좋아하게 되려나?
이 또한 늘 하던 패턴이지만 읽었던 책을 생각하면서 스스로 위안해본다.
"결과가 좋든 좋지 않든 그날 아침의 활쏘기에 너무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앞으로 수많은 날이 남아 있고, 각각의 화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삶이다.
잘하지 못한 날들을 교훈 삼아 네가 흔들린 이유를 알아내라. 잘한 날들을 거울삼아 내면의 평온으로 이르는 길을 찾아라.
하지만 두려워서든 즐거워서든 정진을 멈춰서는 안 된다. 궁도에는 끝이 없기 때문이다.
<<아처>> (파울로 코엘료 소설, 민은영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