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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lee Aug 08. 2018

아우슈비츠, 오시비엥침.

아우슈비츠에 다녀왔다.

이유는 별 것이 없었다. 영국에서 학위를 끝낸 오랜 친구와 그 가족들이 유럽 여행을 오기로 했고, 독일 내의 기차표보다 폴란드로 가는 비행기 표가 쌌다. 크라쿠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약해놓고 친구를 만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캐러밴에 문제가 생겨 혼자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그제야 찾아보니 말로만 들었던 아우슈비츠가 크라쿠프 근처에 있다고.


도저히 혼자 갈 용기가 없어 망설이던 중 호스텔에서 만나 친해진 중국계 캐나다인 여자와 함께 길을 나섰다. 둘러보는 동안도, 지금도, 혼자 가지 않길 잘 했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10시 이전, 15시 이후 무료입장을 위해 아침 6시에 일어나 준비를 하고, 15즈워티(한화 약 4500원)를 내고 한 시간 반을 달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학생은 할인요금으로 11즈워티 정도였다. 놓친 것은 어쩔 수 없지.) 하얀색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무료 티켓을 받고, 가방을 맡기고(4즈워티), 25즈워티의 한국어 가이드를 사서 입장을 했다. 가장 먼저 보였던, 가장 유명한,


Arbeit macht Frei.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아우슈비츠 입구


강제노역 때문에 과로로 죽어간 사람들에게 매일 보여줬던 말, 노동이 자유를 만든다.

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정문을 지나, 가이드북의 화살표를 따라 집단 학살의 증거들, 수감자의 삶, 위생환경에 관련된 전시를 보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빗, 신발, 머리카락, 가방, 안경, 의수, 의족들을 보며 차마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사람이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수백만의 사람들의 옷가지를 보며 마치 시체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기 때문에.


얄팍한 독일어로 읽었던, "독일 어린이만을 위한 놀이터" 팻말, 음식 수급을 중단하는 것이 약물이나 문화적 교란보다 문화를 붕괴시키기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에, 폴란드를 해체시키기 위해 음식 수급을 중단한다는 독일인들의 말들, 유태인, 폴란드인, 집시, 슬로바키아인이 없는 세상에서 살겠다는 선언들, 일말의 죄책감이나 그릇된 일을 한다는 자각이 없는 듯한 수많은 증거들, 노동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가스실로 보내졌던 노인들, 임산부들, 아이들, 슬로바키아인이기 때문에 곧장 가스실로 가야 했던 사람들, 인체실험에 이용되었던 사람들, 지푸라기에서 자고 미음을 먹고 매일 11시간을 땡볕에서 노동하다 과로사로, 아사로 죽어간 사람들... 몇 번이나 구역질이 났고 주저앉았고 울고 싶었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까지 잔인해질 수 있는 걸까.


아우슈비츠라는 이름도 폴란드의 문화를 지우기 위해 폴란드의 지명 "오시비엥침"을 독일식으로 바꿔 부른 것이었다.


독일에서 유학생의 신분으로 지낸 지 1년, 백수였던 시간까지 1년 반.

유학생으로 독일에 체류하는 것에 만족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나에게 독일에서의 시간은 사실 그렇게 즐겁지 않다. 베를린에서의 7개월 동안 나에게 이유 없이 침을 뱉던 사람들, 휘파람을 불던 사람들, 밀치고 지나가던 사람들, 돈을 던지던 캐셔, 소리를 지르던 사람들, 끝없는 경멸의 눈빛들. 다른 도시로 이사오고난 후 현저히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나를 스캔하는 독일인들. 미국인에 비해 현저히 낮은 "예의"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나, 자각하지 못하고 뱉어대는 인종차별적인 발언들 사이에서 점점 기운을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런 전적들과 아우슈비츠에서 보았던 독일인들의 만행이 더해져 독일로 돌아온 나는 독일어를 듣고 있는 게 거북할 지경.


[심지어 베를린에서 잠시 일할 때 회사 사장의 할아버지가 위키피디아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히틀러의 최측근 SS부대였는데, 그 사장은 공연히 할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다니던 인간. 함부르크에서 구한 첫 집의 주인아저씨(50대)의 아버지도 나치, 그다음으로 이사 간 동네에서 매일 봤던 네오나치들, 생각보다 독일에서 나치의 자손들을 만나는 일이 쉽다. 세계 제2차 대전은 그렇게까지 오래된 일이 아닌 것.]


이런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싶지만,

학위는 받아야지.

방학이 끝나기 전에 이 감정들-독일인에 대한 증오, 인종차별주의자들에 대한 혐오, 희생자들에 대한 연민- 모두, 잘 추스르고 학교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키라라 - 이 지구에서 어떻게 살까요

https://www.youtube.com/watch?v=b2Bg6Waae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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