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부탁해
오늘은 세계 고양이의 날이다. 나에겐 11살 된 고양이가 있는데, 유학을 나오면서 피치 못하게 부모님 집에 맡겨두었다. 사실 이 친구 때문에라도 유학을 나오고싶지 않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
이 아이를 처음 만난 건 2009년 1월이었다. 동물을 키우는 걸 반대하는 부모님 때문에 자취를 시작하자마자 고양이 분양을 알아봤다. 하지만 미성년인 나에게 기회는 많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무료분양을 받았다. 여대에서 주운 고양이. 추운 겨울날 케이지에서 울어대는 아기고양이를 달래려고 손을 넣어 쓰다듬어줬는데, 얼마나 작고 보드라웠는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무료분양이 무색하게 귀 진드기 치료비만 15만원이 나왔던 나의 작은 고양이.
잔병치레도 없이, 큰 사고도 쳐본 적 없이 무럭무럭 자라 이제 할머니가 되었다. 다른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색했다. 늘 팔베게를 베고 자고, 안겨있는 걸 좋아하고, 뽀뽀를 해주고, 높은 곳에 올라가지도 나의 물건을 부수지도 않는 고양이. 나를 때리지도 물지도 할퀴지도 않은 고양이. 편식도 하지 않고, 모래를 가리지도 않고, 낯을 가리지도 않고 늘 따뜻하고 상냥했다. 물론 털은 엄청나게 많이 빠졌지만. 혼자서 살아가는 동안, 나의 유일한 힘이자 안식처가 되어준 나의 고양이. 얼마나 소중한지, 5살쯤부터 이 친구가 언젠가 나를 떠날 수 있다는 걸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를 해왔다. 준비한다고 되는 마음은 아니지만서도.
길에 버려진 아기 고양이를 주워서 키울 때, 같이 돌봐주고 놀아주던 나의 착하고 나이 든 고양이.
정말로 많이 보고싶고, 독일로 데려오고싶지만 고령의 나이에 칩 이식, 항체 생성 주사 맞히기, 최소 12-15시간의 비행(본가 -> 서울-> 독일-> 독일 내 환승으로 이동시간만 거의 24시간) 등의 문제로 부모님께 맡겼다. 동물을 좋아하는 독일이지만 동물이 허용되는 집을 구하기도 쉽지 않고, 특히 하우스 셰어나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에겐 정말로 난관이 많은 일. 그래도 언젠가는 꼭 데려오고싶다. 30살까지 살아줘.
나의 고양이는 그저 길에서 태어나 길에서 산(혹은 사람에게 버려진) 길고양이이다. 품종도 대단한 것도 없지만 집에서 산다고 길고양이와 다른 종류의 동물이라고 말 할 수도 없다. 다 똑같은 생명이니까, 세계 고양이의 날을 맞아 오늘 하루라도 더위에 힘들어하는 길고양이들에게 물 한잔 건넬 수 있길. (물론 독일에는 길고양이는 없고 산책고양이만 있습니다 동물 유기는 3천만원 정도의 벌금을 물게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