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의 재부상

by Dancing with Pen

1945년 8월 9일 미국의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라디오 연설을 한다. 나치독일 패망 뒤 유럽의 전후 질서를 논의한 포츠담회담의 결과를 직접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유럽에서의 우리의 승리는 군사적 승리 그 이상입니다. 삶의 양식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보편적 인권, 인간의 존엄성, 국가는 국민의 주인이 아니라 봉사자라는 개념 등에 근거한 이상의 승리였습니다."



Our victory in Europe was more than a victory of arms. It was a victory of one way of life over another. It was a victory of an ideal founded on the rights of the common man, on the dignity of the human being, on the conception of the State as the servant ― and not the master of ― its people.



트루먼 대통령에게 나치독일과의 싸움은 유럽의 패권을 둘러싼 강대국간 지정학적 경쟁에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생활양식의 충돌이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생활양식이 전체주의라는 다른 생활양식에 대한 승리를 거둔 것이었다. 정치체제(political regime)의 차이는 단순히 정치제도가 서로 다르다는 의미를 넘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총체적으로 상이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정치체제가 곧 생활양식이라는 생각의 원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서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최선의 정치체제와 최선의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지며 좋은 정치공동체와 훌륭한 삶의 관계를 탐구했다. 인간은 정치공동체를 떠나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결국 어떤 정치공동체에서 사느냐가 그곳에 사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결정한다. 즉, 폴리스(polis)에 살아가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러나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의 연관성에 대한 인식은 지난 30여년 동안 계속 희미해진 것처럼 보인다. 전체주의, 공산주의 등 대안 이데올로기와의 경쟁에서 자유주의가 승리했고, 자유주의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영역과 개인의 영역을 엄격히 구분해왔기 때문이지 않을까. 소련은 붕괴하고, 동유럽은 민주화되고, 제3세계의 반공 권위주의 정권은 몰락하고, 중국은 국가자본주의로 변신했다. 거래에 참여하는 모두가 이득을 본다는 자유무역론의 든든한 지원 아래 세계화는 인간이 인종, 종교, 문화 등을 초월하여 보편적인 욕망을 공유한다는 사실을 새삼 다시 일깨워주었다. 시장(market)에서 살아가는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



최근의 국제정세는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푸틴(Vladimir Putin) 러시아 대통령은 급기야 동원령을 내렸다. 젊은 러시아인 남성들이 징집을 피해 고국을 떠나 주변국으로 탈출하거나 망명길에 오르고 있다. 중국은 결국 집단지도체제를 버리고 1인영도체제로 돌아섰다. 제20차 중국공산당 당대회는 시진핑의 황제 대관식으로 끝났다. 수없이 많은 역사적 선례의 경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무오류의 신화에 사로잡힌 시진핑의 중국은 여전히 제로 코로나 정책을 고수하며 봉쇄와 격리를 남발한다.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정치체제에서 살아가는 인민의 생활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우리가 너무 익숙해져서 어느 순간부터 무디어졌을 뿐, 아리스토텔레스적 사유의 현실성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지역중 하나는 한반도이다. 민족과 계급의 해방을 약속했던 평양정권 아래서 북한 주민은 출신과 궁핍에 단단히 구속되어 있다. 핵과 미사일이 파괴한 것은 남조선 괴뢰나 미 제국주의가 아니라 인민의 자유와 복지였다.



푸틴의 러시아, 시진핑의 중국, 김정은의 북한. 유라시아를 중심으로 갈라지는 세계질서 속에서 정치체제와 생활양식의 불가분성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최선의 정치체제는 훌륭한 삶의 필요조건이고 정치체제를 수호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잠시 잊고 있었지만 결국 인간은 폴리스를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정치적 동물이다.


2022.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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