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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응갸 Apr 17. 2023

거북바위는 원래 거북이가 아니다

함부로 불씨를 당기는 모든 이에게.







“망할 놈의 세상! 모조리 없애주마!!!” 


상철은 모두가 잠든 새벽 시간을 골라 움직였다. 사사건건 무시하는 마을 것들을 오늘 밤에 모두 입 다물게 하리라, 단단히 마음 먹은 터다. 고작 열 발자국, 상철만 보면 욕지거리를 참지 못하는 앞집 할망구는 새벽 잠이 없다. 마당에 멈춰서서 깨 있는 사람은 없는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손도끼로 현관 창을 깨고, 출입구 앞으로 불쏘시개를 던져넣었다. 널부러진 신발에 옮겨붙은 새끼불이 안정적으로 몸집을 불려나간다. 나쁘지 않은 시작이다. 상철은 서둘러 제 집에도 불씨를 당겼다. 이 재수없는 마을을 모조리 불살라버릴 참이다. 


동네 여기저기서 훨훨 타오르는 도깨비불을 보며 상철은 누런 이가 보이게 히죽 웃는다. 상철은 부지런한 자신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염병할 노인네들, 외롭지 말라고 나란히 가게 해 줄테니 감사 인사나 하라고.”


산불감시단으로 활동한 세월만 20년이다. 바람 냄새만 맡아도 느낌이 왔다. 오늘이다!

손끝만 스쳐도 스파크가 튀어 오를 것 같은 바짝 마른 공기, 습기 없이 맑은 날씨와 강풍주의보까지, 거사를 치르기에 완벽한 날이었다. 설레는 입꼬리를 숨기느라 상철은 하루종일 애를 먹었다. 


‘-호르르르르르륵!’


마지막 집 창문을 깨는 순간, 지척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젠장할, 생각보다 빨리 발각됐다. 상철은 생각할 것 없이 산으로 뛰어 올라 험한 지형으로 추격자를 유인한다. 상철의 지도는 나무다. 아무리 어두워도 상철은 산의 나무들을 하나하나 구분해 낼 수 있다. 주민이라면 몰라도, 경찰 나부랭이들은 어림도 없다. 그리고 오늘 밤, 주민이라고는 상철 혼자 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자신이 있다. 여기서 오른쪽, 다음도 오른쪽, 그대로 가다가 왼쪽, 낯익은 나무들이 상철을 반겨주는 것만 같다. 손끝에 전해지는 옹이의 단단한 감촉이 강한 확신을 불러온다. 산비탈을 오르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호르르르르르륵!’


상철이 빚은 불덩이가 자신의 실루엣을 환히 비춘다. 젠장, 이 정도도 예상하지 못한 스스로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소리를 따라 어둠 속에서 툭툭 새로운 손전등이 튀어나온다. 상철은 가까스로 충돌을 피하며 방향을 바꾼다. 뜨거운 바람이 아찔한 연기를 실어오자 숨 쉬기 조차 힘들다. 다행히 추격자들에게도 악조건인 모양이었다. 숫자는 늘었지만, 거리를 좁히지는 못한다. 


‘-호르르르르르륵!’

‘-호르르르르르륵!’

‘-호르르르르르륵!’


호루라기 소리가 끈질기게 뒤통수를 따라 붙는다. 눈에 보이는 사람은 없는데, 여기 저기서 비명 같은 호루라기가 울고 있다. 상철은 급한 마음에 소리 반대 방향으로 일단 뛴다. 어떻게 알았는지 상철의 진로를 미리 아는 것처럼 길목마다 지겨운 경고음이 가로막는다. 이렇게 허무하게 잡힐 수는 없다. 상철은 온 힘을 다해 마구잡이로 달린다. 위치를 가늠하던 여유는 사라진지 오래다. 


‘앞으로, 위로, 이러다 잡히겠어!!’ 


상철은 숨을 쉴 수 없을 때까지 달렸다. 산 아래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한 참이다. 끈질긴 추격음도 더이상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오늘을 기다리며 매일 달리기 연습을 해둔 보람이 있다. 비로소 마음이 놓인 상철은 거친 호흡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주변 나무를 찬찬히 훑는다. 정신없이 달리느라 위치를 가늠할 틈이 없었던 터다. 


맹렬한 화기를 뚫고 차가운 땀이 등골을 어루만진다. 상철의 기억이 맞다면,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쩌다 망연사 고개로 들어왔단 말인가! 아무리 상철이라도 맑은 날에 꼬박 이틀은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다. 게다가 바로 아래는 수목장으로 유명한 골짜기였다. 상철의 부모는 물론, 마을의 역사가 이곳에 잠들어 있었다. 하필 오늘 같은 밤에는 절대 혼자 오고 싶지 않은 곳에 제발로 찾아든 것이다.


상철은 이내 정신을 가다듬어 달리고, 또 달렸지만 도무지 나가는 길을 찾을 수 없다. 동이 틀 무렵, 화마는 골짜기를 넘어 상철이 있는 망연사 골짜기를 추격한다. 나무들의 비명소리가 숲 전체를 흔들고, 상철의 귓가엔 누군가의 목소리로 통역된다. 하나도 빠짐없이 누군가의 얼굴로 번역된다. 모두 상철이 운구하고, 삽을 뜨고, 봉안의 과정에 한 번이라도 참여했던 마을의 아무개들이었다. 


“이노오오오옴!” 


천둥 같은 호령이 울리고, 불이 옮겨붙은 나뭇가지가 호되게 상철의 등을 내려친다. 

깜짝 놀란 상철이 이리저리 나무 사이를 뛰어다녔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온통 아는 나무였다. 골짜기의 나무들은 자비 없이 상철의 등에 번갈아 불회초리를 휘두른다. 숲 속의 모든 동물들이 그랬듯, 상철 역시 발버둥쳐 보지만 나무들은 쉬이 그를 보내줄 생각이 없다. 

멀쩡한 다리가 살겠다고 계속 달려보지만 새로운 매가 끝없이 상철을 기다리고, 골짜기는 더욱 깊어진다. 살겠다고 달리는 건지, 더 맞기 위해 달리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다. 마침내 상철은 무릎을 꿇고 바닥에 엎디어 울부짖는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상철을 둘러싼 분노는 쉬지 않고 그의 등 위로 꽂힌다. 아는 얼굴의 나무들은 화마에 툭툭 허리가 꺾여나가면서도 매정한 매질을 그칠 줄 모른다. 나무가 완전히 쓰러져 잠시 멈췄나 싶으면, 또 다른 나무의 담금질이 시작된다. 영원히 반복될 것만 같은 다그침이 상철을 떨게 만든다. 눈물, 콧물, 땀이 한데 얽혀 앞도 보이지 않는다. 

도망갈 길이 없는 불구덩이 속에서 이제 상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엎드려 싹싹 비는 것 뿐이다. 



‘-호르르르르르륵!’



멀지 않은 곳에서 다시 인기척이 들린다. 아까 상철을 쫓던 추격자가 고맙게도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다. 지금은 상철을 구해줄 유일한 구원자다. 


“여기요! 제가 그랬어요! 자수할게요!!! 여기에요!!!”


상철이 목청껏 외치며 도움을 요청해 보지만 아무도 그 쪽을 돌아보지 않는다. 손을 뻗어 위치를 알리려 해봐도 화상이 심한 탓인지 혼자 힘으로 움직일 수가 없다. 도대체 왜, 자수하겠다는데도 잡으러 오지 않는 것인가. 그저 상철은 목이 터지도록 외치고 외칠 뿐이었다. 하릴없이 호루라기가 멀어져가나 싶더니, 소방관의 고함소리가 멀리서 그를 향해 전진한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자수할게요! 저 좀 도와주세요!”


상철의 목소리를 들었는지 소방관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진다. 드디어 구조된다는 안도감에 잠시 행복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는다. 이제 상철을 기다리는 것은 기나긴 조사와 유가족들의 분노 뿐, 어쩌면 남은 생을 감옥에서 마치게 될 지도 모른다. 인기척이 가까워질수록 상철은 머릿 속에 되뇌인다. 일단은 살아야 한다. 두 눈을 꼭 감고 죄를 빌듯 엎드린 모습 그대로, 상철은 자신의 운명을 기다린다. 고통스러운 기다림 끝에 고개를 들어 보려는 순간, 소방관 무리가 그를 밟고 지나간다. 어쩐지 단단하고 단단해진 그의 등판엔 막 새겨진 회초리길이 문신처럼 남았다. 


“대장! 어찌된 일인지 이곳 나무가 먼저 타버려서 여기서 불길을 잡을 수 있겠는데요?”

“그래, 여기를 방어선으로 진화한다! 망연사 골짜기는 죄다 수목장이라더니 이렇게 마을을 돕는구만!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우리한테는 감사한 일이지!”


무전을 받고 더 많은 인원이 줄지어 뛰어온다. 약속이나 한 듯이 엎드려 있는 상철의 등을 힘차게 밟고 도약한다. 마치 상철이란 사람이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 듯, 누구 하나 그를 의식하지 못한다. 그를 제외한 숲의 모든 것들이 부지런히 움직인다. 상철은 그저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 만으로도 고통스럽다. 두툼한 안전화에 짓밟힐 때 마다 생경한 아픔만이 생생하게 그대로 전해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지옥 속에서 상철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엎드려 싹싹 비는 것 뿐이다.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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