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MAMBA Mar 26. 2023

10년도 안 됐는데 강산이 바뀌다니

텅 빈 인천공항, 대한항공 코트룸 서비스, 그리고 라운지

2020년 코로나가 전 세계를 삼키기 전까지 나는 여러 가지 이유로 공항을 찾았다. 공연을 위해, 유학을 위해, 여행을 위해, 연구를 위해, 배웅을 위해, 그리고 지갑을 잃어버린 친구의 유실물을 맡아주기 위해. 인천대교가 없던 시절, 동구와 서구를 가로질러 영종대교를 넘어 옆 도시인 서울과 경기도를 가는 것보다 더 오래 먼 길을 돌아 공항을 와야 했던 2004년에는 베트남과 필리핀으로 공연을 갔고, 2005년과 2006년에는 중국 공연을, 2007년과 2008년에는 각각 졸업 수학여행과 공연을 위해 일본을 찾았다.


2009년, 인천대교의 개통으로 집과 공항의 거리가 30분으로 줄어든 이후로는 6년 동안 중국과 미국, 스페인에서 유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매해 최소 두 번에서 네 번은 공항을 찾아야만 했다. 인천에서 딱 한 시간 걸리는 대련에서 유학할 땐 심지어 비행 두 시간 반 전에 집을 나와 짐 부치고 잠깐 상공에 떠서 나오는 밥을 먹고 콜라를 목구멍에 넘기면 채 반나절도 가기 전에 다른 나라 다른 도시에서 간식을 먹고 있을 정도였다. 공항은 그렇게 우리 집만큼이나 익숙한 곳이 되었다. 어디로 가면 택배사를 찾을 수 있는지, 물건을 잃어버렸을 땐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하는지, 갑자기 몸이 좋지 않거나 약이 필요할 땐 몇 층으로 가면 되는지. 비행 전에 샤워를 하고 싶을 때나 잠시 쉬고 싶을 땐 어떤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지와 같은 것들 말이다.


3년의 코로나를 겪은 공항은 나에게 익숙하고 내가 잘 아는 곳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우선 5-6일 정도의 일정에 종종 이용하는 장기주차장엔 ‘예약 시스템’이 생겼다. 출국 1개월 ~ 3일 전까지 예약할 수 있는 본 서비스는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0년에 시작되었다. 제2 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 기준, 입구에 바로 위치한 예약 주차장. 장기 주차장 이용객 수가 예년보다 적은 지금은 모르겠지만, 앞으로 다시 해외 입출국이 완전히 정상화되면 더 쏠쏠히 쓸 수 있을 것 같다. (참조: 인천국제공항> 교통/주차 > 주차안내 > 주차안내> 주차장안내

https://www.airport.kr/ap_lp/ko/tpt/parinf/parinft1/parinft1.do)



이번 여행에선 항상 이용하던 원래 공항(?)이 아니라 개장하고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의 발길이 끊겨 아직 새것 냄새가 가시지 않은 제2 여객터미널을 이용했다. 마지막으로 대한항공을 이용했던 것이 제2 여객터미널 개장 전이었던 2017년이었으니, 아직 나의 뇌가 앞으로 대한항공을 이용하기 위해선 제1이 아닌 제2 터미널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진 않았지만, 인천공항답게 깔끔하고 좋다는 소문은 들었기에 새로운 곳을 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흥이 났다. (새것 싫어하는 사람 누가 있으랴)



아직은 어색한 제2여객터미널 장기주차장에 차를 대고 셔틀버스를 이용하여 여객터미널로 이동하였다. 당연히 제1여객터미널도 지날 줄 알았는데 (얼마나 먼 지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버스는 그저 몇 개의 장기주차장 승강장만을 거지 고는 출국장 앞에서 우리를 내려주었다. 지나면서 본 장기주차장은 승강장을 사이에 두고 그 주변에만 옹기종기 차가 모여 있었을 뿐, 도대체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 뱅뱅 돌다가 속이 터질 뻔했던 2019년 12월의 장기주차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많은 미주 유럽 등 장거리 노선 운항스케줄이 오전에 몰려있기 때문인지 오후 2시 무렵의 터미널도 썰렁하긴 마찬가지였다. A - D 카운터에 있는 대한항공 카운터만 열려있다고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닐 정도였다. 물론 2020년과 2021년에 친구를 배웅하기 위해 왔던 공항이 2022년의 공항보다 훨씬 텅 비어있고, 훨씬 더 외로워 보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하늘길이 막혀있을 때라 그러려니 했었는데, 홈쇼핑만 틀어도 해외여행 상품이 나오고,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갔다 오는 마당에 이렇게나 텅 빈 공항을 마주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해서 더 그랬다. 모닝캄이고 이코노미고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 안 지나다니는데, 이래서야 모닝캄인 이유가 1도 없다는 것에 내심 아쉬워하며 짐을 부치고 카운터를 돌아 나왔다.


공항 중간 즈음에 있는 북스토어에서 태국에서 사용할 유심을 수령하고 (현지 번호가 있는 유심으로 신청하였고, 이것은 정말 신의 가호가 깃든 선택이었다) 통신사에 가서 엄마 핸드폰 로밍 신청을 한 뒤, 대한항공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코트룸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한진택배 카운터로 이동하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고의 루트가 아닐 수 없다. 극 J 마음 편안) 출국일 기준으로 코로나로 인해 중단되었다가 다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고마운 서비스. 최초 5일은 무료이고 이후 추가로 사용한 만큼 (1일 5천 원) 돈을 지불하면 되니, 추운 겨울에 여름 나라로 출국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가 아닐 수 없었다.


두꺼운 패딩을 내려놓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H 카운터에서 제일 가까이에 있는 게이트로 들어갔다. 이미 한적한 한진택배 카운터나 모두 닫혀있는 외항사 카운터 덕분에 짐작은 했지만, 손님인 나와 엄마를 제외하고 모두가 공항 직원인 짐 검사대와 입국 심사대는 어색하다 못해 민망할 정도였다. 괜한 민망함에 한 마다라도 뱉었다간 모두가 엄마와 나의 대화를 알 것 같은 기분에 숨 쉬는 것도 조심히 쉬었을 정도였다. 최근에 새롭게 여권을 발급받아 자동심사 신청이 안 되어 있는 엄마의 여권을 기계가 인식하지 못하자 그저 텅 빈 출국 심사대를 가로질러 골라 들어갈 정도였다.


대한항공 코트룸 서비스 안내: https://www.koreanair.com/kr/ko/airport/airport-guide/seoul-icn/coatroom


5분은커녕 5초 만에 끝난 출국심사에 당황스러워진 건 바로 나였다. 너도 나도 모두 나갔다 오기에, 뉴스에서도 하도 해외 출국자들이 늘어난다 호들갑을 떨길래 오래 걸릴 줄 알고 서둘렀는데, 이 모든 걸 다 하고 A카운터에서 정반대의 한진택배까지 공항을 활보했는데도 불구하고 3시는 커녕 2시 반도 되지 않은 시간. 달러 가치가 천정부지로 뛴 상태에서 제1여객터미널보다 규모가 작은 제2터미널에서 면세점 쇼핑을 다닐 것도 아니거니와, 필요한 걸 손에 쥐고 다니 달리 할 것도 없었다. 좀 더 여유롭게 해도 될 걸, 괜히 바가지로 물이나 주게 했나 민망해서 눈치가 보였다. 아휴 민망해라.


들어가서야 사람들이 좀 있었던 인천공항 제2 터미널


카드사 혜택이라도 이용하자 싶어서 (라운지 티켓이 있다는 걸 잊고는 추가 1인을 결제한 바보가 여기 있다) 마티나 라운지를 찾아 들어가 앉았다. 한 접시, 음식을 보고 나서야 긴장이 풀려 허기가 지는 모양이었는지 배가 찰 법한 탄수화물을 들이켠다. 또 한 접시, 이제는 배가 어느 정도 찼으니 주전부리할 만한 것으로 채워본다.


한 컵, 평소에는 마시지도 않는 맥주를 가져와본다. 한 잔, 괜히 마시지도 못하는 와인을 채워 와 얼굴을 빨갛게 물들여 본다. 잠시 화장실에 가서 인천공항의 빵빵한 난방 덕에 더워하는 엄마에게 방콕에 도착하면 입고 있던 가을 원피스를 벗어던질 요량으로 껴입고 있던 반팔 셔츠를 벗어주고 컵라면 하나에 물을 부어 본다. 라운지에 있는 모든 것을 먹었는데도 4시 반이었다. 아직 비행까지는 1시간 여가 남아있었다.


조걱정인형은 오늘도 걱정을 품고 말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든 것이 뜻대로 되지는 않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