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제1 여객터미널을 이용했었기 때문인지 그 크기와 규모가 더 작은 것만 같은 면세점을 뒤로하고 마티나 라운지에서 열심히 시간을 때우다 보니 어느덧 보딩 시간이 되었다. 마치 처음부터 아무것도 입지 않고 들지 않은 것처럼 가벼운 어깨에 다시 무거운 짐가방을 올리고 게이트로 향하려던 찰나였다.
아침내 조용하던 휴대폰에 알람이 울렸다. 항공기 지연 안내였다. 스마트폰으로 끝내는 모바일 체크인에 삼성 페이에는 항공권까지 넣어주더니, 이제는 항공기 출발 지연 알람까지 보내주다니. 새삼 작금의 변화에 놀라워하며 다시 털썩 의자에 몸을 밀어 넣었다. 뜻하지 않게 좀 더 많은 시간을 공항에서 보내게 되었다. 면세점 구경도 하지 않고 라운지에나 있을 거였으면 좀 더 여유 있게 (늦게) 와도 됐을걸. 벌써 오후 2시부터 한참을 공항에 있었던 터라 지겨움이 몰려왔다.
“그럼 어떡해?”
걱정하는 엄마에게 보딩 하는 곳 근처에서 커피나 한 잔 사 먹으며 기다리면 된다고 말했다. 먹을 것도 다 먹고 쉴 만큼 쉬어서 한껏 늘어진 몸을 애써 일으켜 드디어 n시간 만에 라운지 밖으로 향했다. 아까도 봤던 면세점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며 공항 이곳저곳을 괜히 더 눈에 담아보았다.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질 것 같았다. 그래도 그나마 배라도 부른 지연이라서 다행이었다.
공항 및 항공기를 이용하면서 항공기 지연만큼 짜증 나는 일이 있을까. 학수고대하던 여행길에 오른 사람에게도, 유학이나 일을 위해 타지로 떠나는 사람도, 반대로 머나먼 타지에서 고향을 찾는 이들에게도 제일 반갑지 않은 손님, 그것이 바로 ‘항공기 지연’ 일 것이다.
3년 만의 여행이라는 데에 취해 여러 음식에 평소 마시지도 않는 와인과 맥주까지 골고루 챙겨 먹어 통통해진 배를 두드리며 2014년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서의 끔찍했던 항공기 지연을 상기했다. 항공기에 지연될 경우 환승 항공편 안내를 해준다는 한국과 달리 (안 해봐서 모르겠다) 환승이 제시간에 안되면 그 항공권을 날리고 새 표를 ‘알아서’ 구해야 한다는 미국. 이미 공항 30분 거리에 산다고 자만하다가 체크인도 못할 지경에 놓여 속으로 엉엉 울면서 비즈니스로 업그레이드를 한 것과 같은 날의 일이었다.
그때 내게 주어졌던 시간은 오로지 한 시간. 비행기 가장 앞자리에서 바퀴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짐가방을 내려 손에 단단히 들고 (마치 트렁크에 바퀴가 달린 걸 잊은 사람처럼) 우사인 볼트에 빙의하여 이미그레이션으로 전력질주를 했었다. 으레 유학생들이 그런 것처럼 바리바리 짐을 욱여넣은 짐가방은 마치 돌덩이처럼 무거웠지만, 스마트폰이 지금처럼 만능도 아니었던 데다 정지해 놓은 핸드폰 요금제를 살릴 방법도, 돈을 주고 와이파이를 사는 것도 너무 아까웠기에 (지금이라면 바로 신용카드를 꺼냈겠지만 그땐 부모님 카드를 쓰는 가난한 학생이었기에) 절대 환승 비행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이를 악물고 뛰었더랬다.
비행기에서 제일 먼저 나왔는데도 이미 사람들로 가득한 입국 심사대 대기선에 초조하게 자리했다. 같은 나라에서 똑같은 돈을 쓰고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은 공기를 마시고 똑같은 음식을 먹는데도 미국 여권이 없다는 것 하나 만으로 이렇게 오래 기다려야 하다니 (사실 미국 아니라도 똑같다). 가까스로 40분 만에 입국심사를 마치고 이미 보딩이 시작돼도 한참 전에 시작됐을 게이트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잊지 말자, 이 글의 포인트는 항공기 지연이다). 그래도 5분 전은 아니니 문은 열려 있겠지, 왜 이제까지 안 탔냐며 짜증이야 좀 내겠지만 그래도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거야. 이미 10시간 넘게 날아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난 반드시 연결 편 비행기를 타야 했다.
탑승을 마무리해도 한참 전에 해야 했을 게이트가 닫혀있고, 탑승 대기줄 대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보았을 때가 되어서야 나의 놀란 심장은 안정을 찾았다. 지연이 된 모양이었다. 흘러나오는 안내에 따르면 기상 악화로 인해 비행기가 30분 정도 지연된다고 했다. 30분 정도야 뭐, 나의 작은 심장이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준 항공기 지연에 감사했다. 지연이 딱 30분일 줄 알았을 때까지는.
비행기에서 내릴 때는 미처 몰랐는데, 당일 시카고의 날씨가 심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는지 창밖으로는 계속해서 광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고작 30분이었던 지연이, 처음에는 20분이 늘고, 또 다른 30분이 되고, 1시간이 되는 동안 나는 언제 탑승이 재개될지 알 수 없어 화장실도 가지 못하고 탑승구 앞 벤치의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배는 고파오고, 잠은 몰려왔지만 인천도, 서울도 아니고, 미주리도 아니고, 시카고에서 이 짐을 다 든 채로 잠이 들 순 없었다. 30분과 30분이 쌓여 여덟 시간이 되었을 땐, 이미 배가 등짝에 가 붙어 배도 고프자 않을 지경이 빠지고 말았다. 차라리 여덟 시간 정도 지연될 예정이니 밥도 먹고 오시고 눈도 좀 붙이라고 했으면 이렇게 짜증이 나지는 않았으리라.
게이트 근처에 엄마를 앉혀놓고 게이트 근처 -라고 하지만 마냥 옆이라고는 할 수 없는 - 카페에 가서 진생라테 한 잔을 시켰다. 늑장을 부리다가 이미 보딩이 시작되어 사람들이 탑승하고 있는 것을 본 후에는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핸드폰을 든 채로 냅다 달음박질을 치기도 하였다. 행여나 40분이 여덟 시간이 될까 봐 초조함에 타들어갔던 목에 진생라테를 들이부으며 한 발자국, 태국으로 더 다가갔다. 약 여섯 시간을 가야 했지만 이미 나의 영혼은 카오산로드 한가운데를 거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