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 글은 6시간의 비행에서 완성되었다
이때 아니면 언제 먹어보겠냐고 무리해서 욱여넣은 진생라떼 덕분에 뒤늦게 탑승을 한 덕분일까, 좌석 위 짐칸은 트렁크는커녕 배낭 하나 넣을 공간도 없이 꽉 들어차 있었다. 복도 쪽 짐칸도, 창가 쪽 짐칸도 어디 하나 빈 곳이 없었고, 의자 아래 짐을 욱여넣기에 내 가방은 너무 컸다. 설상가상으로 우리보다 더 늦게 탑승한 창가 쪽 승객은 두 손으로 들기도 버거운 무게의 트렁크를 가지고 있었다. 이도저도 못하고 서 있는 우리를 본 승무원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짐칸 속의 짐을 옆으로 밀어도 보고, 돌려도 보고, 옆칸 짐과 바꾸기도 해 보고, 결국 승무원이 크기가 작은 트렁크 - 본인의 것으로 보이는 - 를 짜부시키면서까지 나와 옆 사람의 짐을 밀어 넣은 후에야 우리는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이렇게 요란 법석을 떠는데도 그저 지켜보기만 하는 - 분명히 본인들 중 하나의 것이었음에도 - 주변 사람들이 살짝 얄미워지기도 하는 순간이었다. 고작 이런 걸 가지고 화를 내느라 출발의 순간을 망칠 수는 없지, 마음을 다잡고 자리에 앉았다. 여섯 시간. 최소 24시간을 잡고 이동했던 미국이나 13시간을 잡았던 스페인보다는 짧지만 결코 짧다고만은 할 수 없는 비행이었고 엄마에겐 인생에서 가장 오래 비행기를 타는 날이었으므로 초장부터 기분을 망칠 수는 없었다. 넣었으니 되었다며 애써 인상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이곳저곳 탐색을 시작했다. 음, 우선 비행에서 간편하게 신을 수 있는 얇은 슬리퍼는 없었다. 비닐에 싸여있는 담요를 꺼내어 펼치고 베개를 등허리 중간 즈음에 끼워 넣었다. 발받침은... 역시 없었다. 없는 게 많군. 조그맣게 읊조리며 좌석 앞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좌석 앞 주머니에는 앞 좌석이 없는 엄마의 것까지 두 명 분의 책자와 멀미가 날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봉투 등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었다. 입국 시 작성해야 하는 서류 같은 것이 없어진 것을 모르고 여권을 손에 들고 있던 나는 별수 없이 무릎 위에 그것들을 올려놓고 좌석에 몸을 기댔다. 나의 소지품을 끼워 넣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해 보였다.
짐을 실은 컨테이너에 문제가 생겼다고 그랬던가, 어쨌든 비행기에 문제가 생긴 것은 맞는 모양이었다. 비행기는 우리가 모두 탑승한 이후에도 한참을 출발하지 못하고 땅에 붙어 있었다. 언제 비행기가 뜰지 모르니 노트북 같은 것을 꺼내지도 못하고, 핸드폰은 이미 비행모드로 바꾼 지 오래였다. 잠은 비행기가 뜬 다음에 자야 하는 건데, 가만히 앉아있자니 잠이 솔솔 몰려왔다. 결국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좌석 등받이에 살짝 기대 눈을 감았다. 출발 예정 시각인 6시는 이미 예지녁에 지나 6시 30분을 넘어가고 있었다. 2시간의 시차가 있다지만 이렇게 늦어지다가는 정말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하겠다는 생각에 공항 주변의 저렴한 호텔을 잡을 걸 그랬나 하는 후회까지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하면 무엇하랴. 일은 이미 벌어져 있었는데.
그렇게 한참을 인천공항에 묶여있던 항공기는 한참 후에야 겨우 이륙했다. 거의 한 시간가량을 비행기에 앉아있었기에, 벌써 한 한 시간은 비행한 것 같은데 방콕과 나의 거리는 아직도 이역만리 떨어져 있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더 지연시키고 나중에 태우지, 볼멘소리를 내뱉고 싶었지만 그 순간
'우에에엥’
아이가 울었다. 지금껏 너무 조용히 있어서 있는 줄도 몰랐던 아기였다. 세상에, 6시간 동안 이제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겠구나, 눈을 또 한 번 질끈 감았다. 그래도 나에겐 4년 동안 영어유치원에서 다져진 짬밥이 있으면 괜찮을 거야, 머리는 의연했지만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던 다리는 덜덜 절로 흔들렸다. 다행히 이륙할 때 귀압 때문에 일시적으로 불편했던 모양인지, 비행 내내 아이를 달래던 엄마의 노력 덕분인지, 비행 내내 울지는 않았지만 요즘엔 하도 이곳저곳에 불편한 사람들이 많아서 얼마나 눈치가 보였을까 싶어 괜히 마음이 쓰였다.
매가리 하나 없는 몸으로 영화나 드라마만 뒤적이던 찰나, 기내식 카트가 복도를 지나다니기 시작했다. 기내식 정보에 따르면 묵밥이랑 비빔밥이 있댔나 - 아니었다 - 뭘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결국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소고기와 생선이었다. 엄마와 사이좋게 하나씩 받아 앞의 테이블에 놓고 저도 모르게 실실 웃었다. 평소에는 보지도 않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기내식 정보’ 탭이었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떠나는 해외여행이 퍽 좋은 모양이었다. 그것도 아주 많이.
즐거운 마음으로 한 술 뜨려는 찰나, 계속해서 ‘아니 이게 왜 이래?’ 하며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엄마의 모습에 무슨 일이냐고 묻자, 테이블이 고정되지 않고 기울어져서 기내식 쟁반이 계속해서 옆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바쁘게 움직이는 승무원을 또 한 번 불러 테이블을 고정시켜 줄 수 있냐고 물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짐을 싣는 일로 이미 한 차례 바쁜 사람을 붙들고 한참을 씨름하게 만든 뒤여서 괜히 눈치가 보였다. 매니저로 보이는 분 까지 와서 고쳐보았으나 결국 고정하지 못한 접이식 테이블에 엄마는 나의 테이블 위로 쟁반을 걸쳐 옆을 보고 식사를 해야 했다.
불편했다. 편하려고 고른 자리인데 과연 그렇게도 미리 좌석 지정을 해 두었어야 했나 고민이 될 정도인 자리였다. 다리는 뻗을 수 있었을지 몰라도 테이블이 고정되지 않아 엄마는 내 팔걸이에 겨우 쟁반을 걸쳐 놓고 밥을 먹어야 했고, 그다지 길지 않은 비행이라서 화장실 갈 일도 많지 않았다. 한번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자 오던 잠도 다 달아나 선반에서 힘겹게 욱여넣은 나의 백팩을 꺼내 노트북과 여행책을 꺼냈다. 어차피 잠도 못 자는 거 놀기라도 하자.
저장해 둔 넷플릭스를 켤까, 아니면 여행 계획을 복기할까 고민하다가 메모장을 켰다. 벌써부터 화분에 물을 주고 병원을 들러 약을 탔던 아침이 아득한 옛일로 느껴지는 밤이었다. 이 글도 이렇게 여섯 시간의 비행기 안에서 시작되었다.
비행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속사정이야 알 턱이 없지만 기류 변화로 인해 기체가 흔들리니 안전벨트를 묶어달라는 안내 방송 하나 없이 안정적이었고, 이어진 착륙조차 그랬다. 비행기가 땅에 떨어지자마자 저마다 선반에서 짐을 꺼내 내릴 준비를 하는 한국인들 사이에 우리도 합류했다. 마치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경주마들처럼 문이 열리면 뛰어나갈 기세로 대기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놓고 내린 것이 없는지 점검하는 나의 앞으로 앞칸의 승객 한 명이 가로막고 섰다. 화장실을 가려는 건가 싶었는데 그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와서 내 머리 위 선반에 손을 뻗었다. 나와 내 옆 사람의 짐을 못 넣게 무지막지한 양의 짐을 넣어놓았던 짐 주인이었다.
“잠깐, 나 짐 꺼내서 갈게.”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으로 휘감은 그의 입에서는 중국어가 흘러나왔다. 나의 중국 친구들에게 미안해서라도 절대 사람들을 과하게 일반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살짝 접을까 고민되는 순간.
참 좋은 여행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