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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AMAMBA May 08. 2023

올드 타운의 시작, 왓포 (2)

사진 찍기 품앗이, 상부상조.

와불상을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무렵, 공연 때문에 교장 수녀님의 차를 타고 뒤늦게 합류한 수학여행에서였다. 아침부터 정신없이 공연 준비를 하고, 정신없이 노래하고, 정신없이 뒷정리를 하고 나선 길이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귓전을 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울릴 때, 수녀님과 내 앞으로 스님 한 분이 오셨다.


“스님, 안녕하셨어요.”


마치 오랜 친구처럼 (실제로 매해 학생들을 보내다 보면 오래 알고 계셨을 것 같지만) 인사하는 두 분의 얼굴에도 부처님과 같은 인자한 미소가 자리했다. “수녀님이랑 스님이랑 그렇게 인사해도 돼요? 사이 나쁜 것 아니에요?” 필터 하나 거치지 않은 어린아이의 궁금증에 수녀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후로 내 마음 한편엔 타 종교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란 씨앗이 자라났다는 것과 편히 누워 풍경을 바라보는 와불의 얼굴이 유난히 편해 보였다는 것 하나만큼은 똑똑히 기억난다.


와불상은 그때부터 종교적 대 통합과 평화의 상징이 되었다. 내 손목을 두른 것이 묵주던 염주던, 목탁이던 십자가든 할 것 없이 공간을 채우는 풍경소리와 나무 내음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는 고요와 평화의 공간. 그래서 태국을 가게 되면 무엇보다도 왓포의 와불상이 보고 싶었다. 정신없던 그날의 나를 평화로 채워주었던 와우정사의 와불처럼, 왓포의 와불도 태국에서의 첫날을 평안으로 채워주길. (잊지 말자, 필자는 천주교 신자다.) 분명히 절경일 것임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프라 쩨디 라이: 왕족의 유해를 품은 쩨디. 쩨디는 보동 둥글거나 각이 진 모양의 탑을 일컫는 것으로, 부처의 사리, 유물, 왕/왕족의 유해를 품고 있다.

“어머, 화려해라.”


한 걸음, 사원 안으로 들어섰을 뿐인데 화려한 프라 쩨디 라이(Phra Chedi Rai)가 두 눈을 사로잡았다. 왕족의 유해를 담고 있으니 사실 고인돌이나 천마총, 왕릉과 별반 다를 바 없지만 굳이 사실을 말해서 엄마의 흥을 깨고 싶지는 않았다. 때로는 사실을 모르고 봐야 더 아름다운 것들이 있기 마련이니까. 한국도 태국처럼 오래도록 불교를 국교로 가지고 있었는데, 왜 한국은 무덤을, 태국은 조각조각의 자개로 장식된 쩨디를 만들었을까, 따위의 궁금증을 품으며 사원 깊숙이 들어갔다.


방콕 최대 사원인 왓 포에는 한때 1300여 명의 승려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공자처럼 생긴 석상을 지나쳐 문으로 들어서니 프라 마하 쩨디 (Phra Maha Chedi)가 자신의 화려함을 한껏 자랑하고 있었다. 방금 전, 프라 쩨디 라이를 보면서 감탄했던 것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크고 높았다. 얼마나 높았던지, 아무리 멀리 가도 한 컷에 모든 모습이 다 담기지 않을 정도였다. 16세기 아유타마 시대에 지어졌으며 현재의 왕조인 짜끄리 왕조의 라마 1세(녹색), 2세 (흰색), 3세(노란색), 그리고 4세(파란색)를 상징하는 네 개의 쩨디가 위치해 있다.


라마 1세를 상징하는 초록색의 쩨디.

11시도 되지 않은 아침 햇살의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쩨디를 둘러싸고 있는 회랑 안으로 태양을 피해 숨었다. 손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쫓아내려는 엄마에게 손풍기를 건네고 회랑 안에 있는 불상을 따라 쭉 걷다 보니 내가 찾던 와불이 위치한 위한 프라논(Wiharn Phranorn)이 있었다. 사원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있기라도 한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여행객 사이에서 함께 우왕좌왕하고 있자니 이제야 비로소 여행지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물 앞에 놓여있는 초록색 신발주머니에 운동화를 넣고 어깨에 맨 후 신성한 사원 내에서 플래시라도 터트릴까 카메라가 발광 금지로 설정되어 있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한 뒤 사원 안으로 한 발을 집어넣었다. 고작 한 발자국 나아갔을 뿐인데, 길이 46미터, 높이 15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와불상의 위용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 머리의 몇 백 배는 되는 사이즈의 머리였다. 저도 모르게 꾹 닫혀있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홀린 듯 셔터를 눌러대었다.


프레임에 다 담기지도 않는 커다란 불상의 모습이 경이롭다.


과연 그 옛날에 이렇게 큰 동상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작은 동상의 세밀함이 더 만들기 어려울까, 아니면 큰 것이 더 어려울까. 조각조각 나누어서 만들었다는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처럼 부위별로 조각내어 따로 만들어 붙였겠지, 따위의 것들을 생각하며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중요한 것은 이 큰 동상이 내 눈앞에 있다는 것 하나였으므로.


진짜 108개의 동전을 정확하게 세서 넣어 놓은 줄 알고 한 항아리에 하나의 동전만 넣기 위해 애를 썼다.


와불의 머리가 얼마나 큰 지 한참 놀라워했으므로 이제는 108개의 항아리에 동전을 넣을 차례였다. 입구 근처에 자리하고 있는 직원에게 20밧을 지불하고 동전이 담겨있는 그릇을 받아 들었다. 불자가 아니므로 동전 하나에 소원을 담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걱정 하나, 근심 하나, 슬픔 하나, 고민 하나를 털어내겠다는 다짐을 담아보았다. 불상의 머리에서부터 자개로 조각된 거대한 발바닥에 이를 때까지. 이 사원을 나서면 내 어깨 위의 근심을 털어 낼 다짐을 굳히며.


불상 앞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포토스폿에서 엄마의 모습을 담아주다가 독일의 신사분께 사진 한 장을 부탁했다. 사진에 열정적인 한국인과 다르게 원, 투, 쓰리의 끝을 셔터 음 한 번과 오케이 한 번으로 맺은 뒤 사진을 확인해 보라고도 하지 않고 휴대폰을 넘겨주는 쿨함에 엄지 척 한 번을, 본인과 아내의 사진을 부탁하며 건네는 미소와 휴대폰에 오케이 사인 한 번을 보냈다.


역시 여행은 상부상조. 서로 사진 품앗이는 역시 만국 공통의 룰인가 보다.




본문에서 다룰 수 없었던 왓포의 소소한 순간들


1. 왓포의 입장권엔 물 한 병이 포함


왓포의 입장권에 붙어있는 QR코드를 사용하여 물 한 병을 공짜로 받을 수 있다. 아마도 화장실 근처에 있던 자판기 등에서 코드를 인식하고 받을 수 있는 모양인데, 돈을 넣고 따로 뽑아 먹어야 되는 줄 알았던 나는 멍청하게도 공짜 물을 받아 먹지 못헀다. 


2. 화장실은 돈을 내고 가야 하나요?


관광지 화장실에서 돈을 받지 않는 한국과 달리 방콕을 포함한 여러 나라는 공공 화장실에서 돈을 받는다. 왓포의 화장실이 유료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화장실 앞에는 직원이 앉아 있었고, 화장실 내에는 화장지가 비치되어있지 않아 따로 들고 가던지, 화장지를 따로 구매하든지 해야 했다. 외국인 두 명이 화장실 앞을 서성거리자, 직원이 본인의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화장지를 뽑아주려고 하였지만, 그가 동전을 자판기에 넣는 것보다 내가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는 손이 더 빨랐다 (아주 다행이었다). 중국에서 얻은 생존능력은 여러 군데에서 실용적이다. 


3. 갑분파 (갑자기 분위기 파티)



와불상이 있는 위한 프라논 앞에는 커다란 종탑과 화려한 징(?) 있는데, 사원을 방문한 모든 방문객들도 칠 수 있도록 봉과 시주할 수 있는 함이 함께 놓여져 있었다. 정확히 몇 번 쳐야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미국인 관광객을 동반한 가이드가 두 번 치면 된다는 듯 손가락 두 개를 펼치는 것을 보아 두 번이면 충분한 것 같았다. 설명을 듣지 않은 미국인 방문객이 여러 번 난타를 하는 바람에 일순간 사원 안이 난데없이 파티장으로 변해 그곳에 있던 모두의 입에서 실소가 터져나왔다.



또다시 사원 안을 파티장으로 만들기는 싫었던 엄마와 나는 징을 치는 시늉만 하고 발걸음을 돌려 그곳을 벗어났다. 해외를 나가면 내 얼굴이 내 국가의 국기라는 마음을 품고 산다. 어글리 관광객이 되어 모국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을 현지인들에게 심어주는 것은 지양하는게 좋은 것 같다. 


4. 경전을 모시는 건물도 화려하게


방콕 사원의 건물들은 햇빛과 함께일 때 그 빛을 발하는 것만 같다. 빛을 받아 영롱하게 빛나는 초록색의 조각들이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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