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특별한 ‘사전’을 알게 되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
‘가치 사전’이라는 말이 생소해 살펴보던 중 아름다운 문장과 그 문장이 주는 편안한 감동에 한껏 마음이 들떴던 기억이 난다.
믿음이란, 자전거를 타러 가며 언니가 혼자만 앞서 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유머란, 삶을 줄넘기하는 것.
존중이란, 동생의 일기장을 훔쳐보거나 함부로 편지를 뜯어보지 않는 것.
사랑이란, 꽃을 보고 싶을 때마다 뜰로 나가 꽃을 보는 것. 꽃을 꺾지 않는 것. 꺾는 것 대신에 꽃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는 것.
가치 사전.
글을 배우는 아이에게 가장 먼저 알려주고 싶은 말들이 가득하고 엄마인 나도 더욱 깊이 담고 싶은 문구들이다 보니 글을 읽는 순간조차 귀하게 느껴져 휘리릭 읽고 넘기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드는 그런 책이었다.
사전 속 문구 하나를 정해 아이 한 번, 나 한 번 무심코 따라 썼던 날이 있었다.
‘겸손.’
아이가 ‘겸손’이라는 말을 쓰는 모습 자체로도 좋았는데, 쓴 문구를 소리 내어 읽고 나니 버섯을 삼키면 효과음과 함께 몸이 커졌던 그 옛날 유명 게임의 한 장면처럼 ‘겸손’이라는 가치의 힘이 나에게 쌓인 듯 기분 좋은 에너지가 느껴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날 이후, 아이의 행동과 마음 씀씀이, 그리고 말 한마디의 아주 작은 찰나가 마치 시간이 늘어진 순간처럼, 또 지금 순간을 놓치지 말라고 나를 붙잡아두는 것처럼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날, 식사를 마친 아이가 말했다.
“엄마, 밥 다 먹었어요?”
“응. 다 먹었지?”
“그럼, 내가 커피 만들어줄까요?”
커피머신을 다룰 줄 아는 아이가 커피를 만들어 주던 일이 종종 있긴 했지만, 그날따라 아이의 말과 행동이 새삼 다르게 느껴졌다. 급하게 작은 노트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놓치고 싶지 않은 그 순간을 글로 적은 뒤, 아이에게 읽어주었다.
밥을 먹고 난 뒤에,
엄마에게 커피를 만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사랑’이야.
엄마의 도움 없이
커피를 혼자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자신감’이야.”
고작 글로 적었을 뿐인데 마치 숨겨진 보석을 발견이라도 한 것처럼 찰나가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했다. 따뜻함이 소복이 쌓이는 기분이었다. 노트를 덮고 표지에 ‘가치 노트’라고 적었다. 보석처럼 빛나는 아이들의 하루를 글로 오래 남겨두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날 이후, 아이의 가치가 노트 속에 차곡차곡 글로 남겨지고 있다.
‘사랑’이란, 아침에 일어나서 잘 잤는지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
엄마가 도라지차를 마시고 아픈 목이 괜찮아졌다 했을 때, ‘야호’ 하고 함께 좋아하는 마음이 ‘공감’이야.
‘용기’란 산을 오르는 일이 힘들고 어려워 집에 가자고 하고 싶지만, 끝까지 해보려는 마음.
할머니가 주신 ‘콩’ 과자를 먹고 싶지 않았지만, 할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감사합니다’라고 받아 둔 마음이 ‘배려’야.
‘가치 노트’가 하루하루 점점 두둑해지고 있다. 노트가 두둑해질수록 마음이 가득 찬 느낌이 드니 쉬이 지나치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우리의 일상이 새삼 반갑고 고맙게 느껴진다. 무심코 건네는 ‘잘 잤어?’라는 아침 인사에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는 사랑이 전해지고, 힘들다는 아이의 투정에서도 숨겨진 애씀이 보이니 말이다.
지난밤, 아이가 방에 불을 끄고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오! 절약!”
엄마의 장난기 있는 한 마디에 아이가 웃었다. 엄마가 무엇을 할지 아는 아이의 웃음. 그 웃음에 보답하기 위해 노트를 꺼내어 몇 자 적었다.
“절약이란, 방을 나오면서 더 이상 쓰지 않는 불은 잠깐 시간을 들여 끄고 나오는 것”
“책임이란, 내 방을 내가 스스로 살피고 돌보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