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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6. 2019

치명적이고 정해져 있었던 발병

범백 - 고양이 백혈병이라 불리는 병.

다음날 점심시간에 맞춰 병원을 다녀오고 나서야 파보, 즉 고양이 범백혈구 감소증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묵직한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했다.


보호소에서 그렇게나 범백을 피하기 위해서 보호소 유기묘들과 합사도 하지 않은 구조되자마자 데려온 아이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미 범백에 걸려있었던 거였다.


수의사 선생님은 증상이 나타난 지 벌써 6일째고 수치상으로는 아주 위험한 수치는 아니라고 비교적 희망적인 말로 안심시켰지만 그건 다른 고양이들의 통계상 수치일 뿐이었지, 내 고양이에도 해당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살 확률이 더 크다는 수의사 선생님의 말을 나는 너무나 믿고 싶었지만

그날 밤 고양이의 기력은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쇠약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회사원인 나는 회사 사람들과 일을 하고 회식에 참석해야 했다.


머릿속에는 온통 고양이 생각뿐이었지만 누군가에게 고양이의 목숨이란 회사 회식을 빠질 만큼 중요한 일은 아니었나 보다.

어떤 존재의 목숨의 무게가 누군가에게 이렇게나 상대적일 수 있다니.

나는 그냥 할 말을 잃었다.




어쩌면 엄마가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고양이는 요물이라 사람 마음을 홀리니 절대 정주면 안된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엄마의 말이 어느 정도는 맞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겨우 일주일을 함께 지냈을 뿐인데 나는 꼬박 이틀을 울고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요물이 아니라면 어떻게 이럴 수 있겠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랑비에 옷깃이 젖는 것처럼 슬그머니 정이 들어버려 나중에는 폭우처럼 눈물이 몰아쳤다.


다음날 나는 고양이를 입원시켰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달라고 당부하고 병원을 나섰다.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나는 갑자기 왈칵 눈물이 자꾸 쏟아졌다.

인생은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다.


난 똑같은 대사를 내가 죽을 만큼 사랑했던 사람이 떠나갈 때도 했었다.

삶이란 힘들어도 어느 굴곡점에서 내면이 훌쩍 성장하는 거라고, 그러니 의연하게 생각하자고 그때도 그렇게 나 스스로 위로했지만 지금만큼은 그게 잘 되지 않았다.


자꾸만 대상 없는 누군가를 원망하고 싶었다.

그동안 나는 어지간하면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마지막 연애가 끝날 때도 나는 담담했다.

나는 내가 성장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갑자기 쏟아지는 눈물이,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그냥 문득문득 쏟아져버려 전혀 제어가 안 되는 내 모습이 퍽 한심했다.


고양이가 죽으면 어떡하지? 내가 다시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내 마음에 남으면 어떡하지?

왜 더 빨리 병원에 가지 않았을까?

왜 범백부터 검사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일찍 알았다면 지금보다는 상태가 좋지 않았을까?


지난주만 해도 나는 너무 괜찮았다.

버려진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이렇게 울리다니.


인생은 정말 럭비공 그 자체다.


또다시 이렇게 길을 걸으면서 울고 있는 내 모습을 다시 볼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희망을 갖고 싶었다.

괜찮을 거야. 다시 일어나 앉을 수 있을 거야. 다 나으면 제일 좋은 캣타워를 사줘야지.

다시 회사로 돌아와 잡히지 않는 일을 억지로 집어 들고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중간중간 수의사님께 전화를 걸어 상태를 물었다.

그리고 4시 반이 조금 넘었을 때 기어코 좋지 못한 소식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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