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7. 2019

별이 되었다.

고양이 별에서는 아프지 말기를.


결국 내 고양이는 별이 되었다.


눈에 우주처럼 수많은 별이 있었던 내 고양이는 자기 스스로 별이 되어버렸다.


입원 중인 병원에서 고양이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을 때 너무 현실감이 없어서 정신없이 병원으로 달려가는 도중에 눈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 많이 울어서 이제 다 울어버린 건가.

축 쳐진 고양이를 직접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이렇게 울지 않고 담담하게 고양이를 보내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산소호흡기와 수액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작은 몸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를 보니 나도 모르게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병원 구석에서 듣든 말든 나는 엉엉 울어버렸다.

내가 회사에 있는 동안 혼자서 힘겨운 사투를 벌였을 거라 짐작되는 혈흔과 마지막 조치의 흔적들.

그리고 눈에 희미하게 맺혀있는 눈물자국이 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잘못 보신 거 아니에요? 

아직 숨 쉬고 있는 것 같아요. 배 쪽이 움직였어요. 날 보는 것 같아요.

그도 그럴 듯이 고양이는 아직도 부드럽고 따뜻했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지 딱 9일 만이었다.

고작 9일 만에 고양이는 우리 집에서 애교도 부리고 골골 송도 부르고 꾹꾹이도 하고 이틀간 토하고 설사를 한지 하루 만에 별이 되어버렸다.


차갑게 식어가는 고양이를 가운데 두고 수의사가 물었다.

고양이는 어떻게 하실 거세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 했다.

하나는 반려동물 화장 업체에 인계하면 운구를 해가고 화장을 하고 나중에 작은 항아리의 유골함까지 전달해 주는 곳이 있다고 했다.

다른 하나는 직접 묻어주는 방법이었다.


한적한 시골 땅 혹시 있으세요? 

라고 묻는 수의사의 말에 나는 힘없이 축 쳐져 누워있는 것만 봐도 미쳐 버릴 것 같은 고양이의 시신을 들고 차가운 땅 어딘가에 묻으러 다닐 용기가 나지 않아서 대답을 망설였다.

직접 묻어주는 게 좋아요. 


하지만 운전도 할 수 없고 차도 없는 내가 혼자서 시골 땅을 찾아서 어린 고양이를 묻어주는 일은 정말로 나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족들은 고양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으니 갑자기 전화해 고양이를 같이 묻어달라는 말을 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고, 만약 그 말을 가족 누군가에게 꺼낸다면

거봐라, 그래서 내가 반대했지. 내 말이 맞지. 됐어 뭘 묻어줘, 그냥 버려. 

따위의 말로 너무 훌쩍 죽어버린 내 고양이와, 허망하게 보내버린 내 마음을 또 아프게 찌를 것이 뻔했다.


어렵게 어렵게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고양이를 입양할 때부터 옆에서 지켜봐 준 회사 과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부탁을 청했다.

약속도 마다하고 흔쾌히 도와주러 와주셔서 고양이는 외가에서 관리하는 공터에, 어느 나무 밑에 묻어줄 수 있었다.

그리고 울고 있던 나를 숨어서 바라봤던 종이로 된 숨숨집과 마지막까지 차가워진 고양이를 감싸줬던 이불은 옆에 공터에서 태웠다.


우리는 아직 많이 친해지기 전이라서 다비는 아침마다 나를 직접 깨우지 못하고 내가 깰 때까지 기다렸다.


집에 돌아와서는 고양이가 쓰던 장난감과 모래, 화장실, 이동장, 먹다 남은 음식, 터서 입도 안 대본 간식들을 모두 버렸다.


아픈 고양이를 간병하다가 흘린 약들, 너저분하게 흩어져있는 고양이 사료 알들을 보고 있자니 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밖에서는 그나마 참느라고 울음을 참았던 터라 마음 놓고 엉엉 소리 내어 울면서 종량제 봉투에 고양이 물건을 쓸어 담았다.

바닥에 미처 발견하지 못한 고양이의 구토 자국을 닦으면서 마음이 너무 쓰려왔다.

혼자서 얼마나 아팠을까.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을 내 고양이가 너무 가련했다.

잘해준다고, 잘 보살펴주겠다고 데려와놓고선 겨우 4일 재밌게 놀고 고양이는 그렇게 별이 되어버렸다. 


나는 이 집에 또다시 혼자 남겨졌다.

우리 집이 이렇게나 넓었던가?

고작 10 일남 짓 안되게 있었던 우리 집에서 그새 좋아하던 자리 몇 개를 만들고선 내 눈길이 닿는 어느 자리에 가만히 기대앉아있던 고양이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려 하루 종일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다비가 제일 좋아했던 자리. 회사에서 돌아올 때면 항상 잠을 털어내고 뛰어오기 시작한 곳이 늘 저곳이었다.


가지 말지, 떠나지 말지.

그렇게 가련하게 가버릴 거면 밉게 굴지.

왜 그랬어. 다비야.

왜 그렇게 가버렸어.

우리 집에 있었던 9일 동안 내 고양이의 이름은 다비였다.

그전에 살아온 5개월은 무슨 이름으로 불렸을지 모르는 그 아이는 생애 마지막 10일 동안만 다비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이제 영원히 다비로 남아 내 마음에 묻혔다.




작가의 이전글 치명적이고 정해져 있었던 발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