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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7. 2019

이별

이별은 한 번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나 혼자 눈을 떴다.


일어나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일단 나갈 준비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음악을 틀거나, 유튜브를 보거나 하면서 준비했겠지만 

속이 시끄러워 아무것도 틀지 않으니, 집은 그저 적막으로 가득했다.


사람이 죽은 것도 아닌데 유별나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 말을 반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사람과의 이별만이 가장 힘든 이별이라고 누가 정해놓았는가.

나는 내가 했던 어떤 수많은 이별도 죽음으로 이뤄져 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모습이 이렇게 맺혀본 적이 없었다. 


그동안 혼자 있는 게 아무렇지 않았던 집순이인 내가 집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 도망치듯 집을 빠져나왔다. 

그래도 다행히 집 말고 갈 데가 있었다. 같이 술 마실 친구는 술을 다 마시고 나면 각자의 집에 따로 들어가야 하지만 가족은 그냥 집으로 가면 된다. 


내 이별을 모르는 가족은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반겨주었다.

나도 텅 빈 웃음을 지으며 소란스러움 안에 그저 몸을 숨겼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다.

우리 집에 애초에 고양이가 온 적도 없었던 것 같다.


문득문득 초점 없이 풀려버린 내 고양이의 눈동자가 언뜻 머릿속을 헤집어 놓으면 

하던 일이 멈춰지고 순식간에 어제의 동물병원에 다비가 누워있던 그 순간으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빨려 들어갔다 오곤 했다.


집 거실에는 더 이상 한두 알의 모래가 내 발바닥을 괴롭히지도 않았고, 

고양이가 기다릴까 봐 무단횡단을 하면서까지 허겁지겁 집에 뛰어가지 않아도 되었고,

그저 적막만이, 오로지 깊은 어둠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별은 끊임없이 매 순간마다 이뤄지고 있었다.


내 허벅지에 다비가 장난치다 긁어놓은 한줄기 상처를 발견했을 때,

내 까만 책상에 다비가 자면서 부비적 대다가 흘린 몇 가닥의 털을 집어 들었을 때, 

경비실에 뜯지도 않은 고양이 모래 24kg과 네이버 알림 톡에 다비 간식이 잘못 배달되어 다시 배송되었다는 알람이 떴을 때도 나는 그때마다 수없이 많은 이별을 새롭게 해야 했다.


다비가 없는데 다비의 물건만 계속 내 곁에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겨우 10일 가까이를 살았을 뿐인데 누군가는 나에게 유난 떤다고 얘기해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내 첫 고양이었고, 너무 예뻤고, 많이 착했고, 우리는 막 친해지기 시작했던 중이었다. 

나한테는 첫사랑이다.

전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 와서는 오로지 내가 전부인 아이였다.


유기묘를 입양하는 모든 케이스가 나처럼 불행하진 않겠지.

하지만 나는 사랑에 빠지자마자 너무나 아프게 이별했다.

이 10일간 벌어졌던 모든 일이 앞으로 절대 잊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강렬했고, 실로 거대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나는 부디 당부하고 싶다.

나의 케이스만으로 유기묘를 입양하는 것을 주저하지 말기를.

모든 동물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지만 

유기당한 동물은 특히 더욱더 큰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저 이해하고 실천해주기를.


상처 받았지만, 다비를 만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 다른 고양이를 다시 입양하는 것은 조금 힘들겠지만

나중이라도 유기당한 아이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다시 온다면 좋겠다.


그리고 다비야. 

고양이가 별이 되면 고양이 별에 먼저 가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다는 얘기를 들었어.

나는 너에게 너무 짧은 행복밖에 주지 못해서 나보다는 전주인을 기다리면서 놀아도 나는 좋아. 

대신 나중에 나도 너희 별에 놀러 가면 예전처럼 그저 눈인사 한번 해줄래?

그리고 혹시 나중에라도 건강한 고양이로 다시 태어나서 나에게 와준다면, 정말 많이 많이 사랑해줄게.


다비다비 내 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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