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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지런한 방랑자 Oct 26. 2019

버려진 아이라고 다 의기소침한 건 아니었구나.

유기동물 보호소에서 고양이 입양하기.

나는 그동안 고양이라는 동물을 꽤나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다.


버려진 고양이에 대한 사회적 구조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비판과, 그 안에서 내 마음대로 정한 나와 내 고양이가 함께 사는 모습, 그리고 그토록 한없이 가벼울 줄 몰랐던 내 째끄만 책임감까지.


언젠가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올 내 고양이가 생길 거라고, 그리고 그 고양이를 만나면 반드시 내가 알아볼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 운명의 고양이를 찾기 위해 유기동물 보호소에 들렀을 때 나는 그동안 내가 고양이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있었고, 어설프게 알고 있는 그 콩알만큼의 관심을 지식으로 착각하고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곳에는 다양한 개월령의 버려진 고양이들이 제각각 누군가를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기다리다 끝까지 만나지 못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고양이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녀석들은 과할 정도로 사람을 따른다. 버려진 아이들의 본능인가 보다.


그동안 고양이를 나름대로 꽤 잘 안다고 느끼게 만들어준 나의 아주 어설픈 지식으로는 감히 짐작도 하지 못했던 보호소의 형편과 환경을 처음 마주했을 때, 슬그머니 비겁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냥 나가서 꼭 샵이 아니더라도 건강한 가정에서 버려진 적 없고 상처 받은 적 없는  아이를 데려와서 키우는 게 낫지 않을까?

이곳에서 상처 받은 아이를 내가 잘 보듬어줄 수 있을까?


하지만 나는 때에 따라서는 도망치기도 하는 비겁한 성향도 있지만, 후회하더라도 꼭 부딪혀보는 무식한 성격도 있는 편이다.

미리 너무 안 좋은 상황을 낙관하지 말아야지 하고 보호소에 계신 보호사님의 안내에 따라 입양 절차를 진행했다.


보호소에서 아이를 입양할 때, 아주 복잡한 절차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절차와 진행단계가 있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일단 보호자의 마음가짐과 금전적 환경이 될 것이고, 

책임감은 금전적인 여유와 비례한다는 것은 진리에 가까운 쓰디쓴 사실이다.


흡사 대기업의 면접을 방불케 하는 보호사님의 심사가 진행되었다.

서면도 작성하고 신분증으로 신원도 체크하고 회사 위치나 직무 내용 같은 간단한 상황도 체크한다. 


처음에는 아기 고양이를 데리고 오고 싶었지만 너무 어린 고양이들은 폐사할 확률이 높다고 보호사님이 만류하셨다. 

한 살 정도 돼 보이는 아이를 염두에 두고 마지막 서류를 작성하러 나온 사무실에서 케이지에 얌전히 앉아있는 작은 고양이를 발견했다.


그 아이는 5개월쯤 된 수컷인데 이제 방금 들어와서 보호소 아이들과 합사 되지 않은 아이예요. 데려가실 거면 그 아이는 바로 데려가시는 게 좋아요. 합사 하면 혹시 범백이 전염될 수도 있으니까. 


보호소는 시설 관리상 완벽하게 범백을 다 관리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래서 안쪽에 합사 되어있는 어린 고양이들은 거의 범백에 걸려있을 확률이 높아서 개월 수가 좀 오래된 아이들이 비교적 안전하다고 한 것이었다.


나는 보자마자 케이지 안에 앉아있는 무릎까지 올라오는 흰 양말을 신은 고양이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보통은 며칠 있다가 데리러 오라고 연락을 주는 식이지만 합사 하는 게 저 고양이에게 더 안 좋을게 뻔하므로, 케이지까지 빌려주며 얼른 데려가시라며 보호사님이 등을 밀었다.


전 사실 집에 아무것도 없어요. 아무것도 준비 못했어요.

급하게 필요한 대부분은 근처 펫 샵에서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사료와 모래, 화장실.


나도 오늘은 서류만 작성할 거라고 생각하고 가볍게 나선 것이어서 손에 갑자기 고양이 이동장이 들려진 지금의 상황이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

고양이는 밖에 나오니 그제야 자기의 존재감을 알아달라며 애옹애옹 울어댔다.


집에 도착해 이동장에서 나온 고양이는 호기심 덩어리였다. 덕분에 나는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청소한 적 없었던 구석구석까지 따라다니면서 쓸고 닦고 하느라 팔자에 없는 전쟁 같은 청소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고양이는 호기심이 많은 동물이긴 하지만 처음 본 사람의 집에 이렇게 빨리 적응하다니.

저 고양이는 자기가 버려진 줄도 모르는 것처럼 발랄하게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자기 냄새를 묻히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바로 내 다리에도 자기 냄새를 묻히며 나까지 자기 소유임을 확실하게 해 뒀다.

하루 이틀은 구석에 박혀 숨어있을 줄 알았는데 

나오자마자 자기 집 행세라니. 고양이의 뻔뻔함에 약간의 괘씸함과 대견함 그리고 다행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집에 온 첫날, 녀석은 나만 따라다니며 내 옆에서 말 그대로 기절했다.

고양이는 말 그대로 똥꼬 발랄하게 나를 따라다니며 이리저리 참견질을 했다.

나는 시어머니 잔소리를 듣는 것처럼 그의 참견질에 말없이 바닥을 닦고 청소하는 집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고양이가 갈만한 곳에 방석과 담요를 깔아 두었더니, 처음부터 제자리 인양 자리 잡고 앉아 다른 일을 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잠이 들곤 했다.

거긴 내 자리야. 이 뻔뻔한 놈아.

그리고 나도 침대에 올라 수면등을 켜었을 때는 침대로 자리를 옮겨 나와 살짝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잠을 청했다.


덕분에 나는 고양이가 온 첫날 혹시 고양이를 발로 찰까 봐 벽에 달라붙어 자느라 피곤한 밤을 보내야 했지만, 함께 잠드는 게 싫지는 않았다.

비로소 우리 집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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