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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두보 Feb 09. 2023

매우 사적인 일본 기행문

큐슈섬 남동부 도시 미야자키에 다녀오다

지난주에 짧게 일본 미야자키(宮崎)에 다녀왔다. 큐슈섬 남동쪽에 있는 인구 40만 정도의 작은 도시다. 최근 엔저 영향으로 한국인들이 일본여행을 많이 해, 원하던 오키나와와 홋카이도를 놓치고 차차선으로 선택한 도시였다. 1960년대에는 ‘일본의 하와이’라는 별칭으로 신혼여행객의 성지였던 적도 있다고... 지금은, 그때의 명성은 뒤로 한 채..       


돌이켜보니, 1990년에 처음 일본에 갔었다. 당시 유행하던 “KAL 팩”이라는 이름의 10일 패키지였다. 원래는 부모님 두 분이 가시기로 되었던 것을 부친의 다른 일정으로 인해 내가 대타로 갔다. 당시 첫 도착지는 후쿠오카공항이었다. 입국 줄에서 멀리 보니, 일본 세관원이 한 한국인(보따리장수처럼 보이는) 여행객을 거칠게 대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슴이 불끈 뜨거워졌던 기억이 난다.(나한테 그러기만 해봐라..) 그런데, 이번에 미야자키 공항 세관원과 직원들은 너무나도 친절하다. 한국의 위상이 많이 달라져서일까(물론, 그 사이에 일본을 서너번 왔다갔다 한 적은 있었지만, 이번의 미야자키 입국경험은 첫 여행 때 목격한 것과 너무나 다르다).


메리쥬호텔은 3성급이라 하지만 4성급만큼의 정갈함이 있다. 확실히 호텔의 등급기준은 국가마다 다르다. 2006년에 갔던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4성급 호텔은 2성급 같았다. 호텔 방안 책상 위에 고사기(古事記)가 놓여있다. 이 책은 천황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신화서 아니던가. 보통의 호텔들이라면 성경이(태국에선 불경이 있더군) 있을 텐데..


구글 검색을 통해 미야자키 대표 음식인 치킨 남반(南蠻)의 발상지인 오구라 식당 (おぐら本店) 을 찾았다. 치킨 남반(チキン南蛮)은 치킨 닭가슴살 튀김이다. 고기튀김 위에 사우전드 아일랜드 소스를 듬뿍(지나치게..) 올렸다. 맛은 달콤짭자름하니 70년대 경양식 같은 옛스러움이 남아있다. 일본은 오랜 관습을 잘 유지하는 듯. 말 나온김에 덧붙이자면 한국에선 "서로 불편하니 생략합시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본은 "불편해도 유지합시다" 하는 태도가 강한듯. 이런 게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다루는 방식으로 이어진다. 요즘 MZ세대는 그래서 일본으로 레트로여행을 간다고 함(니들이 레트로를 알아? ..ㅋ)


동네를 거닐다 작은 카페 Rabbit Stand에 들어가 아몬드라테, 유자 라테와 와플을 사 먹었다. 일본에 올때마다 느끼는 건데, 일본은 커피가 맛나다. 진하면서도 탄내가 없이 부드럽고 고소하다.

(이번 여행 중 카페를 서너번 갔는데 커피값은 한국보다 싸고, 레스토랑 밥값은 조금 비싼듯 하다. 식료품 가게를 지나치다 딸기를 사 먹은 적도 있는데, 한국보다 쌌다. 어느 뉴스를 보니 생활물가가 한국이 더 비싸다고..)


저녁에 상업 중심가를 거닐었는데, 여성 접대부가 나오는 club이 성업중이다. 작은 도시인데.. 4층 빌딩 전체가 클럽으로 가득한 곳이 여럿이다. 한국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성(性)산업이 발달한 것 같다. 아무래도 사회적 성역할 인식과 관련될 듯.


해산물 구이를 먹었다.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길래 소우루에서 왔다고 하니, 직원이 비구 씨티!라며 놀라고 반가와한다. 자기 와잎이 한국도라마를 좋아하고, 9살짜리 딸도 한글을 읽는다 한다. 다 먹고 나올 때 “미야자키노 베스또 레스또랑데쓰”라고 말해주니, 너무나 기뻐하며 문밖까지 나와 깊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며칠 돌아다녀 보니 평균적 용모는 한국인이 일본인보다 나은 것 같다. 우리가 일본인스럽다라고 여기는 뺀질한 용모는 일본인 인구의 약 10%정도 되어보인다. 하관이 발달한 남방계의 특징이 더 강해보인다. 호텔 직원과 얘기하다가 케이팝가수는 누굴 좋아하느냐 물으니 트와이스의 모모라고 말하며, 모모가 한국인처럼 생겼다고 말한다(!) 모모는 이제 경계인인듯..^^


타츠야서점에 가니, 잡지의 종류도 다양하고 망가 서적이 참 많다. 2009년에 교토의 서점을 관찰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여러 종류의 한류잡지가 판매되고 있다.


다이어리코너에 가보니 한국과 달리, 몰스킨보다 트래블러스노트가 많이 비치되어 있다. 트래블러스노트가 일본 건지 처음 알았다. 가죽커버를 사이즈별로 샀다.


시간이 남아 골프도 쳤다. 한국은 디지털화가 많이 이루어져 종이 스코어카드가 사라졌는데, 일본은 아직도 사용한다. 동행인이 중간에 선글라스를 잃어버렸는데, 나중에 카운터에 신고되어 있어서 되찾을 수 있었다. 골프 라운딩 후 골프백의 채들을 캐디가 점검하며 말하길, 골프장 직원들이 더부루체크를 할 거란다(꼼꼼.. 매뉴얼사회 진면목..). 직원들 옆에서 스바라쉬, 스고이라고 말해주니까 까르르 웃으며 좋아들 한다.


등하교하는 학생들을 보면 자전거를 많이 탄다. 아무래도 운동이 될 것이다. 엘리베이터에서 잠깐 대화한 젊은 여성은 사업차 강원도에 가봤다 하는데, 단단해 뵈는 뭔가가 있다. 여러 번 경험한 건데, 엘리베이터에서 배려심 있게 타인을 먼저 내리게 하는 사람들. 쓰미마셍이란 말은 공동체에 대한 상상력에서 비롯된 배려심을 담고 있다던데, 그런 훈련을 제대로 받은 것 같다.


아무래도 한국어와 일본어는 언어적 4촌관계(형제?)라 발음을 알아듣기도 수월하고, 유추해서 뜻을 짐작할 수 있는 게 많다. 따져보니 대학 시절 이래 총합 5개월 정도 일본어를 공부했다. 이번에 쏠쏠히 잘 써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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