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한일관계와 한류 유니버스
다나카상 인기가 심상찮다. 다나카는 2000년대 초반 SBS “웃찾사”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개그맨 김경욱의 부캐(부차적 캐릭터, 멀티 페르소나)로 유흥업소 호스트 직업을 가진 일본인이다. 지난해 여름부터 유튜브 먹방을 통해 회자되더니(김경욱에 따르면 2018년부터 다나카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지상파방송 프로그램인 MBC “라디오스타,” CBS 라디오의 “김현정의 뉴스쇼” 등에 초대손님으로 출연하며 더욱 큰 관심을 얻고 있다. 그의 외모, 말투, 행동은 한국을 좋아해 한국에 와서 활동하는 실제 일본인 같다. 하지만, 그가 가짜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후에도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그의 인기는 더욱 올라갔다. 하긴 언젠가부터 부캐가 익숙한 시대다. 개그맨 유재석은 가수 유산슬로, 개그맨 김해준은 카페 사장 최준이라는 부캐로 상당한 인기를 누린다. 유튜브의 코미디 채널 “피식대학”은 부캐 콘텐츠로 채워져 있을 정도다. 메타버스 등 가상현실이 확대되면서, 10대들 사이에 부캐를 만들어 소통하는 것은 새로운 문화가 되었다. 아무튼, 다나카는 유튜브에서의 인기를 기반으로 해 여러 편의 광고와 패션잡지 화보를 촬영했으며, 심지어 여러 도시에서 단독 “내한” 콘서트를 열 정도로 엄청난 스타가 되었다. 참고로, 그의 콘서트 티켓은 판매 개시 5초 만에 매진이 될 정도로 구하기 어렵다.
필자가 다나카상에 주목하게 된 것은 그가 지난해 말 자신의 록발라드 곡 “와스레나이(忘れない)”를 발표하고선 엠넷(Mnet)의 음악프로그램 “엠카운트다운”에서 노래하는 것을 시청했던 순간이다. 방송 카메라에 비친 여성 관객들은 마치 한류스타 콘서트장에 와 있는 듯 다나카를 연호하며 괴성을 질렀고, 즐거운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으로 응원부채와 응원봉을 흔들며 그를 응원했다. 사실 이들 20대 팬들은 어린 시절부터 케이팝 안무를 따라 하며, 누군가의 케이팝 팬으로 성장한 세대다. 나는 이들이 케이팝 세계에서 흔히 실천되는 팬질의 여러 관습을 다나카에게도 시전하는 광경을 통해, 다나카라는 텍스트를 읽어낸다면 한류를 둘러싼 여러 파생적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일본인이 많아졌다. 이들은 한국 드라마와 케이팝에 매료된 후 한국 음식과 한국 스타일에 찬사를 보내더니, 결국 한국말도 꽤 잘하게 되고 한국인 친구를 사귀겠다며 한국을 방문한다. 필자에게는 한국 남자친구를 사귄 경험이 있으며, 계속해서 한국을 좋아해 한국으로 유학을 온 일본인 대학원생이 있다. 이 학생에 따르면 친지 가운데 한국 남성과의 연애를 꿈꾸는 일본 여성들이 많다고 한다. 실제로 최근 유튜브에는 한국에 거주하는 한일 커플을 주제로 한 영상과 숏폼이 많이 보인다. 이는 인구이동의 관점에서 볼 때도 매우 흥미롭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을 방문하는 일본인은 주로 중년남성이었다. 그러던 것이 2003-4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인기와 함께, 중년여성이 방한 일본인 관광객의 대다수를 점하더니 최근에는 한일 젊은 세대 간 교류가 증가하고 있다.
현재 일본의 SNS에서 한국은 멋짐과 세련됨의 기호가 되었다. 일본 젊은이들은 “맛있어요” “사랑해요,” “안녕하세요”를 가타카나로 바꾸어 쓰는 것에 더해, 아예 한글로 “꿀잼,” “심쿵,” “화이팅” 같은 단어를 올리기도 한다. 이러한 언어차용은 점차 진화해 피진(pidgin)어의 형태로 나아간다. 특정 언어의 어휘들이 토착 언어의 어휘들과 결합해 만들어진 혼성어를 뜻하는 피진은 장기간의 전쟁과 식민 등을 거치며 발생하곤 하는데, 때로 하나의 유사언어로 발전한다. <같은 일본 다른 일본>의 저자 김경화 교수에 따르면 한국어의 “감사”를 가타카나로 표현한 “가무사”는 일본 SNS에서 자주 보이는 표현인데, 최근에는 일본어로 “하다”란 뜻을 지닌 “스루”와 합쳐져 “가무사스루”란 동사가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하긴, 한국에서도 언제부턴가 “간지”(멋지다 뜻), “닝겐”(인간 뜻), “가와이”(귀엽다 뜻)와 같은 일본어가 은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부탁해요”란 의미를 지닌 일본어 어미 “구다사이”를 활용해 “도움 구다사이”식으로 말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러한 언어유희는 온라인상에서 “한본어”(한국어와 일본어를 섞어 재미난 구절 만들기)라고 알려져 있다. 필자는 “직원분,” “팬분,” “손님분”과 같은 최근의 과잉존칭 표현도 단어에 미화어(美化語)를 붙이는 일본어의 영향이 아닐까 하고 추정한다.
아무튼, 요즘 젊은이들 문화에는 일종의 “취향적 지일”(친일이라는 기표가 어디로 튈지 몰라, 보다 안전한 지일로 표현한다.)이 존재한다. 대학 강의실에서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와 영화”를 소개하라는 과제를 내어주면 일본 애니메이션과 드라마를 발표하는 학생이 상당히 많다. 엔저 효과도 있겠지만 일본 관광이 인기여서,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2023년 1월 방일 관광객 중 단일 국가 1위는 한국이었다. 서울 시내 여러 먹자골목에는 스시집과 이자카야가 즐비하다. 심지어 갈빗집에서 와사비가 소스로 제공되는 시대다.
다시 다나카로 돌아가자. 다나카상의 인기에는 몇 가지 약호(code)가 작동한다. 그 첫 번째는 일본인의 어설픈 한국어 발음이 자아내는 탈정치적 효과다. 다나카는 망언을 일삼아 한국인의 대일 감정을 악화시키는 예의 그 나쁜 일본인이 아니라, 한 음절의 한국어 단어를 두 음절로 발음함으로써(“먹방”을 “머끄방그”로) 웃음과 연민을 동시에 자아내는 존재다. 게다가 다나카는 인기 없는 호스트여서, 돈벌이가 시원찮아 짝퉁 옷을 입고 게스트하우스에 살아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잔망스러운 몸놀림에 드러나듯 그는 회복탄력성이 높은, 유쾌한 사람이다. 사람들은 일본인이지만 가엾고, 반면에 솔직한 매력을 지닌 그에게 무장해제되어 팬이 된다. 그런데 다나카를 구성하는 여러 요소는 유튜브라는 공간의 성격과 맞물려 성적(性的) 약호와 결합한다.
지난해 데뷔한 걸그룹 뉴진스는 지상파방송의 예능프로에 출연하는 대신, 여러 유튜브 예능 채널에서 신곡을 홍보했다. 지난 1월 개봉한 영화 “유령”과 “교섭”의 주연 배우들도 홍보를 위해 지상파를 선택하는 대신 유튜브 채널에 먼저 출연했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지상파 대신, 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타깃층을 공략할 수 있는 유튜브가 선호된다. 젊은 층이 지상파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계산한 전략이기도 하다. 그간 지상파방송의 규제에 따라 설 자리를 잃었던 코미디언들은 유튜브를 통해 오히려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유튜브 코미디 채널 “숏박스”와 “피식 대학”은 채널 구독자 수가 각각 200만 명을 상회하고 있으며, 에피소드에 따라 조회 수가 1,200만 명을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 유튜브 코미디 채널은 지상파에서는 금기어에 해당하는 “호스트,” “모텔,” “조루”와 같은 성적 소재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한국어 발음을 힘들어하는 일본인으로 설정된 다나카상은 꽃을 “꼬츠,” 엠을 “에므,” 브라더를 “브라자” 식으로 발음해 성적(性的)인 연상을 불러일으키는 웃음을 끌어낸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느끼한 목소리로 골반을 과하게 흔들며 춤을 춘다. 그런데 외국 코미디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익숙한 젊은 시청자층은 다나카가 활용하는 성적 약호를 친숙하게 받아들이고 거부감 없이 즐긴다.
셋째로, 다나카는 “세기말” 혹은 “20년 전”을 추억게 하는 여러 기호로 구성된 “세계관”을 구현한다. 다나카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유행했던 섀기커트 헤어스타일, 타이트한 셔츠, 로고 버클이 달린 벨트, 돌청바지를 고수한다. 게다가 그는 그 당시 한국에서 인기 있었던 일본 노래를 즐겨 부른다. 예를 들어 다나카의 최애곡인 “Endless Rain”을 부른 X Japan은 일본에서보다 한국과 아시아에서 더 많은 팬층을 보유했으며, 서태지, 김태원, 적재 등 수많은 음악인에게 깊은 영향을 준 일본의 록밴드다. 이들의 히트곡 “Endless Rain”과 “Tears”는 여러 한국 드라마와 영화의 삽입곡으로 사용되었으며, 당시 10-20대 남성들의 노래방 애창곡이었다. 다나카상은 X Japan 곡에 더해, 일본 록밴드 라르크 앙 시엘의 “Driver’s High”와 애니메이션 “원피스”의 오프닝 곡 “We Are”를 자신의 콘서트에서 열창함으로써, 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 청소년들의 하위문화로 큰 인기를 얻었던 J-pop과 일본 스타일에 대한 향수를 자아낸다. 최근의 "슬램덩크" 인기가 괜한 게 아니다. 팬들은 한국 대중문화 어딘가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일본문화의 영향을 태생적으로 인지하듯, 옛날 일본 노래를 부르는 무대 위의 다나카와 교감하고 그의 세계관에 참여한다.
마지막으로, 다나카는 한류 현상에 기대어 자신의 서사를 구성한다. 다나카 연기를 하다가, 유창한 한국어로 인해 한국인이라는 정체가 들통날 위기에 처하면 그는 “한국 드라마에서 봤다”는 식으로 얼버무려 위기를 벗어난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이 한국 드라마 팬이어서, 한국인만 알 수 있는 지식을 일찍 습득했다는 식으로 변명한다. 게다가 그는 일본에서 활동하는 한류 스타들과 자주 콜라보를 한다. 장근석, 김재중, 카라, 태양에 이어 성시경까지 그의 유튜브 채널에 등장한 스타들은 다나카의 팬임을 고백하고, 일본에서의 한류에 관해 그와 대화한다. K-pop을 좋아해 한국에서 아이돌로 데뷔하는 게 꿈이라고 말하는 다나카를 보며 한류 국뽕이 차오르는 팬들은 일본인을 연기하는 다나카의 부캐성(性)을 승인한다.
다나카는 탈정치화된 존재다. 그는 “독도는 한국 땅”이라 선언함으로써, 역사문제를 둘러싼 팬들의 우려를 씻고 공감대를 형성한다. 결국, 다나카상은 일본인이라는 원본을 복제했지만, 원본과 분리된 표상으로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닌 시뮬라크라(simulacra)다. 팬들은 “친일”이라는 주홍글씨로 인해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라 여겼던 “취향적 지일”을 다나카라는 부캐를 통해 즐기고 발산한다. 부캐는 가상현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 캐릭터를 좋아할 때 그는 “실재”하게 된다. 다나카를 통해 팬들은 식민지배자 일본이라는 맥락과 의미가 제거된 현실의 시뮬레이션을 경험한다.
다나카상의 인기를 제노포비아로 읽거나, 음지문화를 정당화하는 것이라 하여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동의하지 않는 바 아니다. 하지만 다나카 현상에 한류라는 매개변수를 대입한다면, 우리는 대중문화로 촘촘히 연결된 동아시아 하위문화를 재확인하고, 한류의 밑바탕에 흐르는 일본문화의 자취를 짚어볼 수 있다. “부캐” 다나카상은 한류라는 유니버스 안에서 살아가는 시뮬라크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