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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rin Park Feb 04. 2021

상처를 포개어 어른이 된 그녀들, 영화 <세자매>



<사진 제공 - 리틀빅 픽처스>


둘째 미연 (문소리)은 특유의 가식과 위선으로 무장하며 완벽한 척 애를 쓴다. 하지만 나름 최선을 다해 산다. 여동생의 술주정 전화를 다 받아주며 경제적으로 힘든 언니의 부채도 안 갚아도 된다고 한다. 그녀는 그런 역할에 대해 아무런 불편한 내색하지 않는다. 동생, 언니, 가족을 보호하고 돌봐주는 행동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어느 면에선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것 같다. 남편(조한철)의 외도 문제를 해결하거나 집안 크고 작은 문제를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한다. 그런 그녀가 가장 의존하는 것은 종교 같아 보인다. 그녀 역시 무언가에 기대고 싶은 보이지 않는 의존성이 아닐까 싶다.


첫째 희숙 (김선영)은 입에 '미안하다'는 말을 달고 산다. 고스족처럼 꾸민 딸(김가희)이 버릇없고 돈 뜯으러 온 남편(김의성)이 뱃살 타령을 하며 무시해도 '미안하다' '괜찮다'라고 하지만 전혀 안 괜찮아 보인다. 살이 많고 안 보이는 곳에 자해를 한다. 희숙의 자해는 내가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 남에게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녀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삼키고 호들갑스럽지 않게 표현한다.


셋째 미옥 (장윤주)은 스스로 쓰레기라 한다. 술에 취해 글을 쓰고 언니 미연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도 그 분노와 결핍은 어떻게 할 수 없다. 술이 삶의 고통을 가렸다고 하는 애주가 권여선 작가의 애교처럼 느껴지다고 그 행동을 보면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위태로움에 안쓰럽다. 무엇보다 애착을 주고받을 대상이 필요하면 막무가내 행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미옥이 정서적, 심리적으로 의존할 대상은 둘째 언니 미연이다. 남편(현봉식)의 아들에게 돌아이가 아닌 엄마가 되고 싶은데 그 방법을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하다. 미옥은 어릴 때 엄마의 정서적 보살핌 부족이 그대로 보인다.




<사진 제공- 리틀빅 픽처스>



이 자매들도 그렇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떤 트라우마 시기에 고착되어 살고 있다.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이 자매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고 이미지를 형성했는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그린다. 어린 시절이 문제가 되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 성을 포함한 사랑의 문제, 돈을 포함한 현실적 삶을 관리하는 능력, 생을 활기 있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놀이의 문제가 야기된다. 괜찮은 척, 아닌 척 하지만 결국 세 자매 삶의 밑동을 흔들고 있다.


희숙(김선영)이 병원에 갔을 때  화장기 없는 얼굴에 키플링 가방을 들고 있던 장면을 보고 이 영화는 리얼리티 하나는 정말 잘 살렸구나 했는데 끝까지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불륜, 학대, 폭력, 중독, 자녀문제, 무관심 등 일상에 고통을 줄 수 있는 것들을 녹여서 한가족의 이야기지만 인간의 위선, 드러내기 싫은 수면 밑의 이야기를 한다.


세 자매가 살던 작은 마을과 세 자매의 부모에게 믿음을 갖게 한 교회는 공동체이지만 흑백 화면에 갇힌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학대가 어린 시절의 사소했던 갈등의 잔재라고 여기며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왜 그랬냐고 묻고 싶다. 이 자매들과 막내아들인 진섭(김성민)을 양육하고 보호해줘야 할 울타리가 와해되는 경험이 결국 성인이 되어서도 삶을 간섭하고 불편하게 한다. 미옥과 미연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서로의 콤플렉스를 알아봤을 것이고 미연은 엄마를 대신해 온몸으로 폭력을 받아냈을 미안함에 '그 언니' 희숙을 껴안아야 했다. 서로 다른 삶을 살지만 혈육의 굴레보다 더 무서운 끔찍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의 공유는 이들의 관계를 더 견고하게 한다.


영화 <세자매>는 그 누구의 삶에도 희망을 강요하지 않는다. 누구의 잘못에 대한 사과를 받는다고 용서하라고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이소라의 노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는 마음 처방곡으로 엔딩 크레디트에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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