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정말 먼 곳>은 강원도 화천의 양 목장에서 딸을 키우는 진우(강길우)와 서울서 내려와 함께 지내는 연인 현민(홍경) 앞에 어느 날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 은영(이상희)이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그리고 있다. 진우는 양 목장에서 중만(기주봉)의 가족인 딸 문경(기도영), 할머니 명순(최금순)과 함께 유대를 쌓으며 밥을 함께 먹는 식구(食口) 또는 유사한 가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저마다 깊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하나씩 꺼내 이야기하기보다는 침묵이나 한숨, 시선 속에 그 사연을 묻어 인물 간의 거리를 만들었다. 쌍둥이인 진우와 은영은 한 뱃속에서 가장 가까운 존재로 태어나 딸 설(김시하)을 두고 지금은 마음의 거리가 가장 멀다. 할머니 명순 옆에서 식혜가 만들어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은영은 명순과 교감을 이룬 듯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 살갑게 대해줘도 그녀는 이 평온을 깨기 위해 나타난 훼방꾼이기에 한발 빼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그들의 관계가 만천하에 드러나자 진우와 현민을 둘러싼 현실은 그들 사이에 거리감을 만든다.
시인인 현민(홍경)의 시 강의에선 나열된 단어의 문장엔 목적어와 서술어만 있고 주어는 없다. 목적어인 "핸드폰"이 "가을"로 바뀌면 ‘꺼낸다.’ ‘넣는다.’ ‘던진다.’ ‘부숴버린다'를 서술어로 가진 문장은 의미가 달라지고 달라진 문장의 의미가 재미있다고도 표현한다. 목적어와 서술어의 관용적인 연관 관계를 끊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규정되지 않을 때 얼마나 자유로운 시상이 되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하지만 '과연 그 문장의 주어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쓴다는 것은 감정을 기억하는 것이라고 하는데 그 문장의 감정을 기억해야 할 주인은 없다. 타인에 의해서 사라진 주어처럼 살아야 하는 진우와 현민이 가장 먼 곳에 있으면 문장처럼 쉽게 달라지고 행복할 수 있을까?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당선작인 박은지 시인의 "정말 먼 곳"을 영화의 제목으로 가져왔으며 영화 속에서 현민(홍경)이 직접 이 시를 쓰고 낭송한다. 이 시는 "과잉된 수사가 주는 피로감 속에서 간결하고 명징한 언어가 상대적으로 돋보이고 '장소성'에 대한 의식과 상상력이 두드러지며 절벽과도 같은 현실을 견디면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힘을 잃지 않는 것, 그 리드미컬한 힘으로 '정말 먼 곳'까지 갈 것" 라 평을 받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시가 인용되어 메시지를 부각하고 또한 다양한 해석의 공간을 만든다. 느리게 진행되는 영화의 속도는 해석의 공간을 더 확장시킨다. 영화를 더 시적으로 만드는 것은 배경 음악 없이 엔딩에 도달해서 첼로와 비올라 & 바이올린의 소리가 흘러나오는 눈이 오던 밤, 단 한번의 진우의 시점 숏이다.
풍경이 지닌 서사의 힘을 믿게 해주는 양이 뛰어노는 목장, 단풍이 든 커다란 나무가 있는 성당의 마당, 강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 한적한 시골 도로, 안개 낀 깊은 숲,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강의 작은 무인도 등의 풍경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외치고 있다. 때론 풍경이 주인공이 되고, 그 속에 서 있는 사람들이 엑스트라가 된다. 서사에 힘을 더하는 풍경이지만 영화 <정말 먼 곳>의 인물들의 얼굴이나 몸짓이 말하는 서사의 힘도 간과할 수 없다.
관조적인 태도로 카메라는 진우와 현민은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거리를 두거나 멀리서 실루엣을 잡았다. 사랑하는 이들을 잡는 팽팽한 리버스 숏이나 오버 더 숄더 숏을 기대했던 것과는 달랐다. 선입견을 두지 않은 조금은 덤덤한 시선으로 소비적인 이미지를 갖지 않게 특히 인물에 대한 태도를 명확히 했다.
소수자를 소재로 한 영화를 볼 때 스스로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들에게 날 선 차별을 가하는 한 시선이지 않길 바라며 ‘섞여 이야기를 듣는, 들어주는’ 관객의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관계 맺기의 두려움을 피해서 진우는 한적한 정말 먼 곳을 향해 왔고, 현민에겐 그 어느 곳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그곳을 찾아왔다. 이렇게 두 사람은 다른 듯 하지만 서로를 사랑한다. 다른 것을 혐오하지 않고 차별하지 않는 정말 먼 곳을 찾아 떠나야 한다면 새로운 변화를 딛고 이겨야 할 것이다. 양의 탄생에서 설의 굳센 응원의 목소리가 그들에겐 절망 속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