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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mm Jul 08. 2019

콜라보와 오마주

수요일의 플레이리스트 05


한 달 만에 쓰는 수요일의 간헐적 플레이리스트 5편. (5월 첫 번째 글;;) 글을 4주 만에 쓰는 이유는 당연히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지만, 굳이 또 변명을 해보자면 새로 나온 음악 중에 들을 게 너무 많아서 미처 다른 음악들을 들을 여유가 없었다.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고 싶지만 새로 나온 음악을 듣기에는 벅차 고민하다가, 새로 나온 음악으로 새로운 플레이리스트를 만들기로 했다. 어차피 새로 나온 음악에 대해 따로 글을 쓰지도 않으니... 아직 5월이 다 지나지는 않았지만 5월에 가장 좋았던 앨범 3개를 소개하고자 한다. 한 명의 작사가가 앨범 전반에 관여하며 완성도를 높인 경우도 있고, 다양한 뮤지션들의 스타일을 흡수하며 넓은 음악 세계를 펼쳐 보인 경우도 있으며, 선대 예술가들의 남긴 유산에 대한 오마주로 앨범을 가득 채운 경우도 있다.






오마이걸 - [THE FIFTH SEASON]



[THE FIFTH SEASON]은 2014년 데뷔한 오마이걸의 첫 정규 앨범이다. inst 트랙인 마지막 곡을 제외하면 총 9곡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6곡에 서지음 작사가가 참여했다. (단독 작사는 4곡.) 서지음 작사가는 2010년도 케이팝씬을 대표하는 작사가 중 한 명이다. 아이돌 음악의 가사는 대부분 기획사가 미리 구체적인 컨셉을 잡고 컨펌을 하면   그에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사가의 스타일이 전면에 드러나기 어렵다. (서지음이 만든 몬스타엑스와 레드벨벳과 오마이걸의 가사는 각각 매우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사가의 색깔 혹은 지향과 그룹의 색깔 혹은 지향이 비슷하여 결과적으로 작사가의 색깔이 강하게 나타나는 경우들이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물론 그룹과 작사가의 케미도 더 돋보이게 된다. 서지음 - 오마이걸은 켄지 - 에프엑스, 김이나 - 가인 등과 함께 2010년대에 가장 인상적인 작사가-아이돌 협업을 보여준 한 쌍이다.


[THE FIFTH SEASON]은 오마이걸이 서지음 작사가와 지속적으로 작업하며 일관된 세계관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너에 대해 커져가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하는 '심해(마음이라는 바다)'의 가사는 'WINDY DAY'를, 나의 진가를 곧 알게 될 거라고 말하는  'Vogue'의 가사는 '비밀정원'을, 과거의 좋았던 순간을 추억하는 '소나기'의 가사는 '불꽃놀이'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 서지음 작사가가 가사를 쓴 곡들이다.) 그리고 타이틀곡인 '다섯 번째 계절(SSFWL)'의 가사는 오마이걸의 변화를 보여준다. 스스로의 감정에 대한 불안이 주된 정서였던 초기 곡들과 달리, 이 곡의 화자는 '확신'한다. ("꼭 분명한 건 사랑이면 단번에 바로 알 수가 있대 // 헷갈리지 않고 반드시 알아볼 수가 있대 // 이제 난 그 사람이 누군지 확신했어") "이 안에 멋지고 놀라운 걸 심어뒀"('비밀정원')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대해 확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오마이걸은 소위 '여성적'이라고 불리는 이미지들과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전혀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주지 않는데, 언제나 단단한 자아가 느껴지는  서지음의 가사의 역할이 클 것이다. '심해(마음이라는 바다)'의 화자는 짝사랑하면서도 "이제부턴 맘껏 나아가볼 거야 // 너의 마음과 만날 때까지 난"이라며 의지를 다진다. 심지어 네가 나의 중력이라고 말하는 '유성 (Gravity)'에서도 나는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는다("gravity 온 힘을 다해서 너를 스쳐 가는 걸"). 그러니까 젠더적 관점에서  좋은 아이돌을 원한다는 말이 레이스 달린 옷을 입지 말라는 게 아니다. 오마이걸은 걸크러쉬 같은 거 안 하고도 여성 팬이 많은 이유에 대해서 안 하느니만 못한 걸크러쉬 컨셉을 기획하는 제작자들이 꼭 한번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황소윤 - [So!YoON!]



황소윤의 새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화려한 참여진이다. 지윤해, 나잠수, 선우정아,  모임별 등등등 크레딧만 보고도 기대감이 넘쳤다. 앨범 발매 후에는 새소년의 스타일과 달라서 혹은 피쳐링진들의 색깔에 가려 황소윤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아쉽다는 의견들도 있지만, 나에게는 한껏 높아진 기대를 배반하지 않는 좋은 앨범이었다. 이번 앨범에서 보여준 황소윤의 장르를 넘나드는 넓은 스펙트럼은 오랜만에 나타난 록스타로서의 그의 행보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아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욕심 많은 이 앨범을 듣고 앞으로 그가 얼마나 대단한 스타가 될지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황소윤이 참여진에 가려졌다는 의견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작사·작곡·편곡을 주도하고 있으며 곡의 주도권을 뺏기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황소윤은 메인 프로듀서로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음악에 맞게 참여진을 구성했을 뿐이다. 황소윤이 다른 뮤지션들에 가려졌다기보다는 그들의 스타일을 흡수하며 세계를 넓힌 것에 가깝다. 


'Noonwalk'와 'A/DC='에서는 각각 수민과 공중도둑이 주도한  편곡 하에서 황소윤이 곡에 맞는 최적의 방식으로 노래한다. 'Noonwalk'에서는 서로 대비되는 수민과 황소윤의 보컬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다가 자이언티가 갑자기 등장해 명품 조연으로 활약한다. 재키와이가 참여한 'FNTSY'는 앨범 내에서 가장 흥미로운 콜라보를 보여준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두 사람이 서로 만나는 풍경이 떠오른다. 왠지 녹음실에서도 서로 어깨동무하고 불렀을 것 같은 노래다. 'FOREVER dumb'은 황소윤과 샘김이 같이 만들고 편곡에는 적재도 참여했다. 앞선 두 곡이 전자음이 돋보이는 날카로운 곡인 것과 대비되는 감정적으로 뜨거운 곡으로, 존버의 미학이 돋보인다. 'Athena'는 무지개 팀과 많은 기대감을 남긴 채 입대해버린 장석훈이 참여했다. 그리고 피쳐링은 새소년! [So!YoON!]은 황소윤의 솔로 앨범이지만 새롭게 돌아온 새소년을 알리는 앨범이기도 하다.






3. Jamila Woods - [LEGACY! LEGACY!]



Jamila Woods의 신보 [LEGACY! LEGACY!]는 앨범 제목처럼 자신에게 남겨진 유산, 더 정확하게는 자신에게 많은 영향을 준 블랙컬쳐 예술가들이 남긴 유산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앨범의 트랙 제목은 각각 선대 예술가들의 이름에서 따왔다. 1~6번 트랙은 여성 예술가, 7~12번 트랙은 남성 예술가의 이름에서 따왔고, 1번 트랙과 7번 트랙 의 제목을 서로 부부였던 베티 데이비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름에서 가져오는 등 일정한 형식에 맞춰 트랙을 구성했다. 각 트랙의 제목이 누구를 나타내는지, 그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하며 들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https://earmilk.com/album-reviews/645288/jamila-woods/legacy-legacy/)


자밀라 우즈가 영향을 받은 예술가들의 직업은 다양하다. 니키 지오바니는 시인, 프리다 칼로는 화가, 옥타비아 버틀러는 SF작가다. 그중 아래에는 자밀라 우즈가 뮤지션에게 경의를 표한 세 곡과 그들의 곡 하나씩을 가지고 왔다. Betty Davis는 뛰어난 펑크 뮤지션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욕망에 대해 아무런 숨김없이 표현하는 흑인 여성에게 많은 이들이 불편함을 느꼈고, 타협을 원하지 않던 베티 데이비스는 일찍 음악을 그만두었다. 'BETTY'의 "I am not your typical girl // Throw away that picture in your head"라는 가사에는 'typical girl'이 아닌 여성들을 억압하는 사회에 굴하지 않은 베티 데이비스에 대한 존경이 담겨 있다. 뮤지션이자 배우이고 활동가이기도 했던 Eartha Kitt는 TV 버전 배트맨의 캣우먼으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EARTHA'의 뮤직비디오는 어사 키트에 대한 오마주이고, 타협하기 싫다고 말하는 가사는 어사 키트의 인터뷰에서 영감을 얻었다. 'Sun Ra'는 아프로퓨처리즘의 선구자로 불리는 전설적인 재즈 뮤지션이다. "My wings are greater than walls"라는 가사는 선 라가 지은 시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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