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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el Sep 29. 2023

감성은 이성이 주관하는 것이 맞는것 같다




새벽의 신선한 공기는 모든 지난날의 생각들을 환기시킨다. 몇달전부터 새벽에 눈이 떠졌다. 일찍 잠을 자게 되면서 이기도 하지만 뭔가 내안에 변화가 일어난 것도 어느 정도 짐작이 된다. 인간은 각성을 하면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죽음과 직결된 혹은 그에 비슷한 정신적인 고통을 맞이하면 일어나는 것이 처절한 각성이다.

그것은 죽음과 맞닿은 고통이지만 그 후에는 다른 체질의 사람이 되어가는 성장을 맞이한 것이다.


수많은 감성이 나를 독특한 세계로 인도한다고 생각했다. 타인보다 더 많이 받은 감성은 더 멋진 세상을 보여주고는 했지만, 또한 더 많은 상처와 좌절을 선물하고는 했다.


그리고 삶은 더욱 휘둘리며 휘청거렸다. 이것은 분명 뭔가가 바르지 않는 것이다. 나에게도 어느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이 감성을 절제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아니 절제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이전보다 더욱더 절제시켜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나는 이 감성들을 사랑한다. 그들의 향연과 끝없이 달려 나가는 상상의 나래들을 통하여 통찰이라는 기쁨을 맛보기란 살면서 가장 큰 정신적 기쁨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늘 감성과 이성이 부딪히며 선택이라는 결론을 만들어 낸다. 또한 그 선택이 불완전한 경우에는 삶이 정돈되지 못하고 흐트러져 버리고 그러하므로 정신도 흐트러져 버린다.


나는 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신을 믿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초보운전으로 엉망이 되어 버린 인생을 회복하게 되었으므로 그 선택이 옳았음을 확인하였다.






이성이 필요한 이유는 인생이라는 시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감성은 늘 오늘만 사는 것처럼 순간을 즐기고 깊은 내면으로 향한다. 그러나 인간의 삶에는 의식주라는 한계가 있고 생명과 죽음이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이성이 필요한 것이다.


우리에게 대기권 안과 대기권 밖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는 한계가 주어진 세상에서 한계가 없는 정신적인 사고를 점유하고 있다. 이 한계 속에서 우리는 각자 나름으로 방식대로 자신의 삶을 창조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중년이라는 시간을 맞이하고 나는 조화를 화두에 두게 된다. 의식주의 조화, 정신의 중용, 주관에서 객관으로 개인에서 전체로의 관점으로 말이다.






늘 지금 이 순간의 알 수 없는 사건과 의문들은 시간이 가고 나서야 원인과 이유를 알게 된다. 그러한 깨달음은 휘둘리지 않는 법을 깨우치게 된다.


지금 좋은 것이 나중에 좋은 것은 아니고,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 나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결국 인생의 모든 상황과 결론에는 동전의 양면이 존재한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음을 말한다.

자신의 감정과 감성의 충동을 객관화하며 평가할 수 있는 이성이 정신의 전체를 주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올바른 인식.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는 나라는 것과 그러므로 자신을 가장 사랑해야 한다는 전제. 그리고 타인은 나의 성장을 위한 존재이며 또한 사랑을 나누는 존재라는 전제.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소명을 받은 존재라는 전제.


질서가 세워졌을때 우리는 평안한 기쁨을 누릴 수 있고 삶을 더욱 풍성해지고 여유롭게 이루어져 간다는 것을 느끼고 있는 지금이다.


또한 여전히 감성은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의 내면 나의 목소리이고 가장 존중해야 할 자아이기 때문에 철저히 이성은 감성의 판단을 기준으로 나아가야 한다. 감성을 무시한 채 이성만을 따른다면 내가 원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이고, 이성을 무시하고 감성만을 쫓는다면 삶은 멸망으로 빠져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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