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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Dec 03. 2018

나는 스키강사다. 그런데 겨울이 싫다

첫 직장 그리고 첫 해고, 살면서 처음으로 받아본 소송

2018년에도 어김없이 왔다. 누구에게는 아름다운 추억이 가득한, 누구에게는 상처받은 기억만 있는 겨울이. 길을 걷는 사람들의 어깨가 잔뜩 움츠러든 것을 보니 겨울이 왔음을 더욱 실감한다. 

     

누구나 삶에 대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고 가치관과 신념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삶을 살아오면서 겪는, 크고 작은 경험들 속 깨달음으로부터 형성된다. 그래서 20대의 경험들은 중요하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20대는 향후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이에 대한 지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신념을 다듬으며 보다 완성도 있는 삶을 계획한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20대는 고생을 사서 할 나이’라고 말한다. 나도 공감한다. 20대는 판단하는 시기가 아니다. 오는 기회 마다하지 않고 많은 걸 해보며 경험을 쌓아야 한다. 도전과 실패를 거듭하고, 때로는 달콤한 성공까지 얻으며 시행착오를 쌓아야 한다. 그 이후에 이것저것 재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는다. 그래서 나도 할 수 있는 한 많을 걸 해보려 했다. 그리고 평범한 것보다 남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것들을 해보고 싶었다. 

     

결과는 어땠을까. 대책 없이 무모하게 시도했던 대가는 컸다. 특히 20대의 겨울은 차디찬 아픔뿐이었다. 처음 해고를 당해본 것은 겨울이었고, 처음 소송을 받아본 것도 겨울이었다. 그리고 단순히 ‘좋아’가 아닌 ‘사랑’이란 감정을 느끼게 해준 그녀의 일방적 이별 통보를 받아본 것도 겨울. 아픈 경험들로 내 삶의 방향성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겨울이 싫다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무역학을 전공한 내가 겁도 없이 레저업에 뛰어든 게 잘못일수도 있고, 남들처럼 평범한 아르바이트 혹은 도서관에서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던 게 잘못일수도 있다. 더욱더 나를 힘들게 만든 것은 레저업에서 쉽사리 벗어나질 못하겠는 것이다. 힘든 만큼 그만두면 되는데, 도망치면 되는데 그러지를 못하겠다.      

왜 일까. 도망칠 용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쌓아온 시간들이 아까운 건 더더욱 아니다. ‘이번 겨울이 지나면 꼭 그만 둬야지’ 다짐해도, 다음 겨울이 다가오면 강사활동을 위해 준비를 시작한다. 겨울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인 10~11월 쯤 연락이 온다. 그 연락들이 그만둬야겠다는 내 다짐을 무너트린다. ‘쌤, 올해도 강습하시죠? 스키장에서 뵙겠습니다~’, ‘선생님~친구들이랑 스키장 놀러가기로 했어요. 엄마한테 간신히 졸라서 가는 거예요’, ‘작년에 배웠던 OO입니다. 이번에는 아내와 함께 가니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손님들의 연락과 ‘올해도 함께할 거지? 기다리고 있을게’ 강습팀장님까지.    

 

연락뿐만이 아니다. 강습 팀원들과의 끈끈한 우정, 스키 기술을 하나씩 배워가던 재미, 단순히 손님이었던 사람들이 내 삶의 일부분이 되어가는 과정, 나의 멘토이자 롤모델인 사장님 아래서 배울 수 있는 것들. 이 밖에도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붙잡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아픔에도 불구하고 내가 레저강사를 계속하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 없었던 그 이유를 알아갈까 한다. 스키를 배운 적도 없고, 체육학이 아닌 무역학을 전공한 내가 레저업계에 뛰어든 계기. 그래서 체육학부생처럼 순탄한 길을 걷지 못하고, 소송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며 배운 레저생활. 이 밖에도 아직까지 답을 찾지 못하고 머릿속에 맴도는 녀석들이 많다.     


무역학을 전공한 나는, 왜 레저업계로 뛰어들었을까?

연차가 쌓일수록 한계가 보인다. 나는 그만둬야 하나, 계속해야 할까?

레저업계에서 배운 것들은 앞으로의 내 삶에 도움될까?

취업난이라고 한다. 나는 취업준비생에게 당당히 레저를 추천할 수 있는가? 

무역과 레저를 연결하고 싶다. 지나친 욕심일까?

스쿼시 강사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와중에 글을 쓰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우선 질문들을 던져 놨다. 그리고 지금부터 답을 찾아갈까 한다. 무역학부생과 레저의 어울리지 않는 만남, 그리고 낯선 질문들. 그래서 내가 글을 쓰는 것 같다. 질문에 대한 생각을 천천히 적어나가다 보면 그 끝에는 답이 있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나는 글쓰기가 좋다.     


PS.

그런데 나는 스키강사를 왜 했지? 나는 상경계열 학생인데. 아니, 일단 체육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어도 스키강사를 할 수 있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밑바닥부터 시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것도 아주 깊이. 내가 그랬다. 나는 스키를 배운 적도 없었고 전공은 무역학이었다. 그래서 체육학부생처럼 순탄한 길을 걷지 못했다. 무지에서 시작했고 가르쳐줄 사람 한 명 없이 어깨너머로 배울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3,000만 원짜리 소송이라는 비싼 수업료를 내며 스키실력을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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