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성 Dec 24. 2018

퇴사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다

첫 직장 그리고 첫 해고 (4/4)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항상 정답이 있을 순 없다.
내가 내린 결정이 잘못 된 길로 들어섰을 때,
빠르게 깨닫고 되돌아오는 게 최선이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쌓으며 성장하는 거다.


집으로 돌아오며 머릿속에 든 생각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이대로 스키를 포기하기에 너무 아쉽다는 것. 퇴사한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내관계 때문이라 던지, 업무과다 때문에 관뒀다 던지, 어떤 이유로 사표를 냈던 다시는 동종업계에 발 담구고 싶지 않다고들 말한다. 그만큼 진절머리가 났고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는 말이다.


그러나 나는 달랐다. 스키가 너무 좋았다. 일을 관둔 것 때문에 스키까지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손님들과 쌓아왔던 추억들, 무릎이 깨지고 엉덩이에 멍이 들어도 재미있던 스키, 슬로프 정상에 올라 밑을 내려 봤을 때의 그 쾌감. 나에겐 스키까지 그만두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계속해서 스키를 타고 싶었다.


오히려 이번 일을 계기로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명확히 할 수 있게 됐다. 스키의 재미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따라서 그 재미를 타인에게 알려줄 수 있는 직업을 원하고, 여기에 최적화된 직장을 원한다. 오로지 스키에만 집중할 수 있는 직장 말이다.


다른 하나는 나를 추천해줬던 수상레저 선배가 떠올랐다. 선배에게 너무 미안했다. 어떻게 보면 그 선배의 신뢰를 담보로 내가 일을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결과가 이러니 선배의 신뢰에도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죄송스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선배에게 사과하고 싶었지만, 막상 하자니 두려웠다.  ‘사정이 이랬다.’, ‘그런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변명하다 끝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선배의 입에서 ‘실망했다’라는 말이 나올까 겁나기도 했다.     


그래도 용기를 내서 전화를 걸었고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대답은 엉뚱했다. 선배도 그 사장님이 어떤 스타일인지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맡았던 ‘매니저’ 자리도 선배한테 먼저 제의 됐었다고 한다. 그러나 사장님을 잘 알기에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서 나한테 넘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실을 안 순간, 미안했던 감정은 눈 녹듯 사라지고 대신에 분노가 치솟았다. ‘사장님 성격이 이러하니 알고 있어라’라고 미리 귀띔이라도 해주던지. 아니면 ‘하지 말라고’ 강하게 말해주던지. 나를 생고생하게 만든 원인이자 사건의 발단이 선배였었다. 선배한테 따지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한편으로는 선배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그 형도 확신할 순 없는 게, 사람일은 모른다고 나랑 사장님이 잘 맞을 수도 있으니 ‘하지 말라고’ 선뜻 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선배 편을 들어주었다.


반성할 건 반성하고

그 때의 일들을 나의 시선으로만 서술하다 보니, 나만 잘났고 사장님은 못된 사람처럼 비춰질까 염려된다. 명심하자. 그분은 나와 맞지 않았을 뿐이다. 사장님을 따르는 직원도 많다. 또한, 그 분은 그 스키장에 속한 렌탈샵 중 매출 1위이고, 보유고객도 많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있었을 때와 행동들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자. 그분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훌륭하고, 배울점은 많은데, 내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아니었을 뿐이다.



새로운 시작


‘그만두겠다’ 말하고 매장에서 나올 때, 옆 가게의 사장님이 나를 붙잡았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어떤 계획을 염두하고 관둔 것이 아니라서 나는 딱히 생각한 게 없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사장님은 ‘혹시 이 일을 계속하고 싶거든 추천해주고 싶은 곳이 있다’고 말했다.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번호를 챙겨 집으로 돌아갔고, 생각을 추스른 뒤 그 번호로 연락했다. 그리고 연락이 닿았다. 면접 보러 오라고 했다. 그렇게 대명비발디파크로 출발했다.


대명 비발디파크로 가기 위해서 홍천에 도착했다. 그리고 받은 연락처로 전화를 해서 ‘버스를 타면 OO시간에 맞춰 도착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그쪽 사장님은 ‘버스타면 피곤할 테니 택시타고 와라, 택시비는 대신 내주겠다’고 말했다. 무언가 느낌이 좋았다. 출발이 좋다는 예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택시를 타고 OO렌탈샵 앞에 도착했다.


그러나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렌탈샵의 모습이었다. 전에 일했던 렌탈샵의 1/3 크기도 되지 않았다. 불안한 느낌과 함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사장님이 반겨주셨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바로 계약조건으로 들어갔다.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의사전달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우선 강습에만 집중할 수 있는 줄 알았지만, 영세한 규모에 맞게 모든 걸 다 맡아야 했다. 배달부터 시작해서 고객응대, 강습, 장비관리, 매장청소 등을 전부 수행해야 했다. 그러니 강사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과 맞지 않았다.      

무엇보다 사장님과 얘기하면서 크게 느꼈던 것은, 나 같은 사람이 아닌 경력 5~10년 된 팀장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사장님은 수상레저 쪽에서만 일하던 분이었고, 이번에 겨울도 일해보고 싶어 처음으로 매장을 열어본 케이스였다. 그래서 사장님도 겨울스키에 대한 경험·경력이 없었다. 직책은 사장이지만 사장님도 겨울 일을 배워나가야 하는 입장이었고 누구를 가르쳐줄 처지가 아니었다. 때문에 겨울 일을 5~10년 해본 팀장급이 필요했다.


그래서 최대한 예의를 갖춰 조심스럽게 거절했다. 서로에게 도움 되지 못한다는 것을 확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나도 성장할 수 없지만, 사장님한테도 나는 도움 될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사장님에게는 내가 아닌 경력자가 필요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였든 거절하는 입장이 되니 미안한 마음이 컸다. 같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조리 있게 설명해드려도 사장님은 최대한 나한테 맞춰주게끔 노력하겠다며 같이 하자고 붙잡으셨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어쩔 줄 모르고 있었는데, 마침 스케줄에 스키강습이 예약되어있는 것을 봤다. 그래서 나는 ‘의사전달이 잘못된 게 안타깝지만 사장님도 상실감이 클 테니 강습을 해드리고 가겠습니다.’ 말씀드렸다. 그리고 강습을 마무리하고 나서 짐을 챙겨 나섰다.


물론 어떤 보상을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었고, 사장님께 잘 보이고자 한 행동도 아니었다. 일을 하지 않겠다고 했으니 잘 보일 필요도 없었다. 그럼에도 강습했던 이유는, 아마 스스로 편해지기 위한 행동이었던 것 같다. 거절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리도 불편한 것이었나. 무언가 빚을 진 기분이었다. 그런 불편하고 무거운 응어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할 듯해서 강습을 했던 거였다. 그러면 미안한 마음 없이 당당히 나올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다행히 사장님도 내 마음을 헤아렸는지 더 이상 무리한 부탁을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사장님과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함께 일하기를 기약’하고, 다음 매장에 연락했다. 이곳은 집에서 쉬면서 미리 알아두었던 곳이었는데, 여러 렌탈샵을 운영하면서 별도로 스키강습팀까지 운영하고 있는 곳이었다. 마침 이곳도 대명이어서 바로 출발했다. 그리고 그 출발이 내 레저활동에서 최고의 선택이었다. 강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고서, 때로는 손님들 때문에 힘들고 때로는 팀원들 때문에 지치고 때로는 커리어의 한계가 보여 그만두고 싶었다. 그러나 극복할 수 있었던 것도 손님들, 동료들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나의 20대 절반을 함께하며 우여곡절을 보냈던 그 스키강습팀을 선택한 것은 내 레저활동 최고의 선택이자 새로운 시작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나에게 스키장은 낭만이 아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