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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 Dec 27. 2018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

과거에 무엇을 했느냐는 상관없다

보통 강사들은 크게 세 가지로 진로를 선택할 수 있다. 첫째는 렌탈샵에 소속되는 경우다. 둘째는 렌탈샵 없이 스키강습팀만을 운영하는 회사에 속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스키장 내부의 스키학교로 들어가는 것이 있다. 예외적으로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고 1인 업체로 활동하는 ‘프리랜서’도 있다. 세 번째를 제외한 첫째, 둘째의 경우는 렌탈샵과 강습팀이 따로 구분되지 않고 섞여져 있다. 렌탈샵과 스키강습팀을 서로 연결하여 협력하는 구조를 갖추는 게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前) 렌탈샵도 강사들을 직접 관리했다. 다시 말해, 그곳 강사들은 렌탈샵에 소속되어 스케줄 등을 지시받는 구조였다. 그러나 새롭게 시작하는 이곳 시스템은 확실히 달랐다. 이곳도 여러 개의 렌탈샵과 수십 명의 강사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강사들을 따로 모아 만든 스키강습팀을 별도로 관리했다. 즉, 강습팀은 렌탈샵과 같은 회사지만 독립된 팀으로서 강습, 숙식, 교육, 고객관리 등 자체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핵심은 스키강습팀이 렌탈샵의 업무에 관여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이곳도 처음에는 스키강습팀을 따로 구성하지 않고, 강사들을 각각의 렌탈샵에 배치해두었다고 한다. 그러나 강사들을 렌탈샵에 배치해두자 여러 문제가 발생했다. 강사들이 강습을 마치고 렌탈샵에 돌아와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매장 일을 이어서 하게 되는 경우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강사가 강습에만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 강습의 질 저하로 연결되어 고객의 컴플레인 사유가 된다. 이 뿐만 아니라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 못해 불만을 표출하며 그만두는 강사들도 많아져, 강습팀을 별도로 구성했다고 한다. 따라서 이 시스템은 렌탈샵보다 강사들을 좀 더 배려해주는 제도였다.


전(前) 렌탈샵과 새로운 강습팀의 차이

① 임금의 지급 기준과 방법

전 렌탈샵은 ‘월급제’였다. 강사들이 시즌 내내 10개의 강습을 하든, 100개의 강습을 하든 동일한 금액을 지급 받는다. 이 방식을 선호하는 강사들의 대표적인 이유는, 안정된 생활을 보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변동에 민감한 레저스포츠 업계의 특성상, 강습량이 매년 동일하지 않고 불규칙적이기 때문이다. 예로 세월호 참사와 사드 배치, 해병대 캠프 안전사고 등 때에는 고객방문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따라서 강습 개수에 상관없이 동일한 임금을 받는 ‘월급제’를 선호하는 강사들이 있다.


그러나 내가 느낀 월급제는 직원들을 안일하고 나태하게 만들었다. 무엇 하나라도 타인보다 더 일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은 피해심리가 생겼다. 같은 월급을 받는 입장에서 누군가만 일을 더 하게 되면, 그 누군가는 짜증이 나고 화가 나는 것이다. 강습도 마찬가지였다. 옆에 있는 강사는 강습을 2개 밖에 안했지만 나 혼자 3~4개를 했다면, 나만 더 고생했다는 생각에 화가 치민다.


반면에 새로운 강습팀은 ‘월급제’ 외에도 ‘건 바이 건’을 선택할 수 있다. 월급제는 이전 렌탈샵과 같은 방식이고, ‘건 바이 건’은 건당 ?%를 받는 방식이었다. 즉, ‘건 바이 건’을 택한 강사는 자신의 노력으로 강습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만큼 더 받아갈 수 있는 구조다.


나는 스키를 배우는 과정이었고, 실력 있는 강사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이것 외에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월급제를 선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에 이곳 강사들은 3~4년차 이상의 강사로서 스키 실력과 강습 역량이 높고 보유고객도 많은 프리랜서들이 대부분이었고, 때문에 대부분 ‘건 바이 건’을 선택했다.


② 강습 배정 방식

‘건 바이 건’ 방식은 강습을 배정하는 게 월급제와 달랐다. ‘월급제’였던 전 렌탈샵은 일의 양을 공평하게 나누었다. 같은 금액을 받는 만큼, 누구 하나가 더 일하지 않게 하고 반대로 누구 하나가 덜 일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건 바이 건’이었던 이곳은 지원자에게 강습을 우선 배분했다. 따라서 자신이 강습을 많이 하여 높은 성과를 쌓고 싶다면, 쉬지 않고 계속 지원하면 된다. 반대로 강습은 쉬엄쉬엄하면서 스키를 즐기고 싶다면 덜 지원해도 무방했다.


물론 지원자들이 많을 경우 연차순으로 배정하기도 하고, 강습량이 부족한 강사를 우선해줄 때도 있다. 그렇게 로테이션을 돌려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 이유는, 실력 있는 강사들은 이미 고객에게 지목받은 예약으로 스케줄이 꽉 차여 있기 때문이다. 인기 많고 실력 있는 강사들은 강습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일 때가 많다.


‘신입사원’으로 다시 시작한다는 것

여기서 나는 ‘신입’과 다를 바가 없었다. 전 렌탈샵에서 일했던 경험은 이곳 강습팀에서 활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 렌탈샵에서 내가 보유했던 고객들은 이곳 스키장으로 놀러오는 경우가 많지 않았다. 보유한 고객이 없으니 새롭게 시작하는 ‘신입’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또한, 스키장도 달라져 슬로프 적응도 다시 시작해야 했고, 이곳 강습팀의 규칙과 관행도 새로 익히고 배워야 했다.


가령, 이곳 강습팀은 오전 강습이 끝나면 스키장 중앙으로 모여 다 같이 점심을 먹으러 갔었다. 그러나 인원체크를 따로 하지는 않았다. 인원이 15~20명에 이르는 꽤 큰 규모의 강습팀이었고, 강습 끝나는 시간도 제각각이어서 인원이 매번 달랐기 때문이다.


모임 장소로 오지 않을 경우에는 따로 손님과 식사시간을 갖는 것으로 간주했다. 강습이 늦게 끝나서 모이지 못한 강사는 별도로 식사하고 영수증을 제출하면 됐다. ‘신입’이었던 나는 이런 세세한 것들을 당연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처음 2~3일은 점심을 먹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또한, 전체 강습이 끝나면 주차장에 다 같이 모여서 강습팀 차량을 타고 내려갔었다. 그것도 알지 못해서 버스를 타고 내려가거나 나 때문에 강습차량이 다시 올라올 때도 있었다. 두 번 일하게 된 운전자는 “너 때문에 이게 뭐냐”고 화를 냈었다. 억울한 심보로 ‘누가 알려주지도 않는데, 어떻게 하란 말이야?’ 외치고 싶었지만 “죄송합니다. 이번에 처음 와서 잘 몰랐습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들이 몇 번 지속되면서, 내가 무능력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전 렌탈샵에서는 모두가 동등한 위치였고, 친구 같은 사이였다. 주어진 것만 하면 됐고, 배우는 거에만 열중하면 됐다. 그리고 그때는 ‘매니저’였기 때문에 스케줄과 인원 관리를 도맡았고, 모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어서, 진행되는 상황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아니었다. 이곳에서 나는 신입이었다. 가만히 있으면 누군가 나를 챙겨주겠다는 안일한 생각을 하면 안됐다. 내 옆의 강사는 동료이자 경쟁자다. 나에게 친절히 알려줄 의무도 없고, 그들이 나를 배려해줄 필요도 없었다.


또한 나이도 상관없었다. 실력이 있으면 나이가 어리더라도 존중받는 곳이었다. 이 말은 어린 친구들보다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나를 챙겨줄 의무는 없다는 것과 같다. 이곳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는 쓸모 있고 재능 있는 사람만이 인정받는 곳이었다.


즉, 이곳은 성과를 만들어야 하는 곳이다. 배우고 실력 쌓는 것은 알아서, 스스로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무시당하지 않으며 인정받고 존중받을 수 있다. 배우는 것에 집중했던 전 렌탈샵의 자세는 버려야만 했다.


‘신입’이었던 내가,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방법

첫째,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몸으로 부딪히며 체득해갔다. 누군가가 알려주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 내 옆의 강사는 동료이자 경쟁자다. 그들이 나에게 친절히 알려줄 의무는 없다. 그렇다면 알려주지 않아도 어깨 넘어로 스스로 눈치껏 배워야 한다. 능동적으로 움직이고, 주도권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 이처럼 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터득하는 사람이 될 때, ‘센스 있는 친구’라고 불릴 수 있다.


둘째, 질문을 하더라도 스스로에게 몇 번씩 질문해보고 나서 해야 한다. 인생에 바보 같은 질문은 없다. 질문을 많이 할수록 아는 게 많아지고 내 무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질문에는 그 사람의 수준이 담겨 있다. 내가 하는 질문이 수준 낮다면,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생각에 생각을 거쳐 수준 높은 질문을 해야 한다.


또한, 질문은 ‘목표’지점으로 다가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최소화하고, 달성시간을 절약하는 지름길이 된다. 즉, 질문은 올바른 방향성을 잡는 지표가 될 수 있다. 질문 없이 우둔하게 앞만 바라보고 가다가 잘못된 방향으로 들어섰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는다. 따라서 질문을 통해 방향 수정을 해가며 빠르게 목표 달성을 해야 한다. 남들보다 스타트가 늦은 나에게, ‘경험·경력의 차이’를 줄일 수 있는 질문은 필수다.


셋째, 선배들이 쉰다고 나도 같이 쉴 수는 없다. 그들이 여유 있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그동안 연차를 쌓으면서 끌어 모은 고객들이 있고, 부단한 노력으로 스키 실력을 쌓았으니 지금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들과 한 자리에서 쉰다면, 몇 개월이 지난 그 자리에 나는 없고 그들만 남아있을 수 있다.


생각을 정리하니,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가 명확해졌다

A. 강사라는 타이틀을 내려놓았다. 다시 말해, 스키 실력을 향상할 수 있다면 자존심 따위는 내팽개쳤다. 선배가 단체 강습을 할 때 손님인척 손님들과 같이 배웠다. 물론 정규강습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단체강습은 사람들이 많고 강습생 간 서로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몇몇 강사들이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비웃을 때도 있고, 안쓰럽게 쳐다볼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때 당시의 나는 그들의 시선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강습팀에서 맨 밑바닥이었고 어디 가서 강사라고 떳떳이 말하지도 못하는 위치였다. 내게 가장 시급한 것은 성장이었다. 따라서 누군가 나를 비웃어도 얼굴에 철판을 깔고 배웠다.


B. 강습이 있으면 계속 지원했다. 월급제였던 나는 강습을 많이 한다 해도 보수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야간, 새벽 가리지 않고 지원자를 뽑을 때마다 매번 나섰다. 나한테는 스키 실력뿐만 아니라 ‘현장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고객의 연령, 지역, 성향에 따라 선호하는 강습 스타일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강사는 고객별로 응대하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방식을 갖추게 되면, 이곳 강습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나의 ‘무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장 경험’으로만 키울 수 있다. 스키 실력이나 강습 매뉴얼은 혼자서도 철저히 연습할 수 있지만, 가지각색의 고객들을 다루는 실력은 실제 ‘현장 경험’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강습 지원을 수없이 했다.


모든 걸 잘할 순 없다. 그러나 내가 잘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하겠다

무엇보다 나는 체육학도생에 비해 스키 기초가 많이 부족했다. 노력으로 어느 정도 따라 잡을 수는 있겠지만, 동등한 위치까지 다다를 수 없다는 직감이 들었다. 체육학도생과 스키 실력으로 경쟁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어야 도태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오되고 싶지 않다면, 낙오 되지 않을 만큼의 내 무기를 갖추면 된다. 그 무기가 ‘고객별로 응대 방식을 다르게 한다’는 고객서비스 역량이었다. 앞서 언급했듯이 아버지 아래서 ‘가치를 담은 서비스’를 배운 나였다. 이것만큼은 잘 할 자신이 있었다.


힘들었던 생활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생활을 이겨내고자 노력했었다

정통파 체육학도생에 비해 보잘 것 없는 나였지만, 나름대로 자신의 약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방도를 찾으며 버텨내는 장점을 만들 수 있었다. 또한, 정신력까지 나약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었다. 스키 실력이 부족한 건 훈련으로 어떻게든 고칠 수 있지만, 정신이 약한 건 도저히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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