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교환학생기] 75. 마지막 파리1
니스에서 파리로 향하는 야간열차에서 사육을 당하고 나오니 파리에 도착했다. 내 몸 하나 겨우 뉘일 수 있는 야간열차는 이제 돈 받고 타라고 해도 못 탄다. 파리가 뭐라고 도착하니까 아늑한 감정이 드는지. 민박집이 마치 한국 집처럼 느껴진다. 상큼하게 한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혼자 뒹굴거리는 시간이 깨알같이 행복하다. 게다가 오늘은 대망의 쇼핑 데이다.
파리에 온 한국인이라면 무조건 들린다는 몽쥬역의 약국. 주변은 파리인데 약국 안은 한국 시장인 줄 알았다. 한국인 할머니 단체 관광객들부터 젊은 여자들까지. 프랑스에서 웬만하면 한국어 하는 프랑스인을 만나기가 힘든데 몽쥬 약국은 그 힘든 일이 일어나는 곳이다. "궤산 하나쒹 올려주쎄요!!" 한국인들이 얼마나 고마울까 싶다. 나도 과소비를 해버려 택스 리펀을 받기 직전까지 갔다. 더 살까 하다가 말았다.
쇼핑은 우리 뇌의 도파민을 분비시켜 흥분감과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던데, 소비를 통해 정신 치료를 받은 기분이 든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뿌듯할까. 나의 쇼핑은 멈추지 않는다. 디저트로 유명한 포숑에 왔다. 어른들의 젤리 하우스쯤 될까. 초콜릿, 마카롱, 잼, 꿀, 차, 커피, 와인까지... 우리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곳이었다. 나는 우선 티부터 접수하기로 한다. 내가 이런저런 티의 냄새를 맡아보는데 멀리서 직원이 나를 보면서 웃는다. 처음에는 날 비웃는 건가 하는 자격지심에 시달리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와 친절하게 이것저것 샘플 티를 따라줬다. 소심한 유학생은 이런 점이 문제다.
나는 애플티와 우롱카라멜티를 골랐다. 애플티는 마치 향수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진한 사과의 향이 올라온다. 조금 인위적인 것 같기도 했지만 새로운 맛에 도전해보고자 구매를 결정했다. 우롱카라멜티는 지금까지도 내 최애 티다. 고소하고 쌉쌀한 우롱잎에 캐러멜 향이 덧입혀져 향을 맡는 것만으로도 캐러멜을 입 한 가득 물고 있는 듯 침이 고인다. 티 외에도 밤잼과 무화과잼을 샀다. 잼의 세계에도 프랑스에 와서 처음 입문했는데, 잼은 정말 위험한 음식이다.(나를 살찌웠던 누텔라와 로투스잼...) 아니 사악하다. 입문하지 않는 편이 나을 수도.
포숑은 오페라극장 바로 옆에 있었다. 오페라 극장은 외관도 아름답지만 내부 투어도 있다고 하는데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무겁게 하고 민박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쉬고 있는데 민박집에 새로 온 친구와 죽이 맞았다. 밤 마실을 가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생 미셸역에 먼저 가기로 했다. 그곳은 한국으로 치면 대학가 같은 곳이었다. 술집이 즐비해있었고 파리의 이러한 면을 알게 된 점이 좋았다.
우리는 디제이가 디제잉을 하고 있는 펍에 들어갔다. 그곳은 디제잉을 하기엔 다소 작아 보였고 이 파리의 거리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일렉트로닉 음악을 힘찬 기세로 내 고막을 물론 가게 전체가 울릴 듯이 틀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파리도 썩 마음에 들었다. 나를 이곳으로 인도한 그 친구와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과한 음악 소리로 인해 우리는 그곳을 나와 센 강을 걷다가 돌층계에 걸터앉았다. 노트르담 성당이 보이는 곳이었다. 그가 슈퍼에서 사들고 온 하리보를 뜯어먹었다. 센 강의 밤은 오히려 밝았다. 센 강 다리의 조명이 마치 그 주변을 환한 낮처럼 느끼게 했다. 별 중요한 이야기는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