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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Nov 01. 2021

스트릿우먼파이터의 댄서들과 회사원의 공통점

스우파 매회 운 사람 모두 모여

1. 하나의 말, 피사체, 배경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으로


사람들은 오징어 게임 덕에 "국뽕"을 느낀다고들 했지만 난 스우파로 진정한 "국뽕"을 느꼈다. 매회 댄서들의 인터뷰와 무대를 볼 때마다 울컥울컥 하는 걸 참느라 애썼다. 나는 스우파야 말로 4D MAX로 보고 싶은 콘텐츠였다. 핸드폰은 물론이고 아이패드나 컴퓨터 모니터로도 부족했다. 그래서 항상 최적의 시간에 경건한 마음으로 주전부리 혹은 식사를 준비해놓고 반드시 집 거실에 있는 TV로 시청했다. 덕분에 종종 가족들과 함께 시청하기도 했는데, 우리 엄마는 잠깐 보더니 트로트 대회랑 비슷한 거냐라고 물으셨다.


나는 손사래를 쳤다. 트로트는 신인 혹은 트로트계에서 뜨고 싶은 사람들이 나오는 것이지만 이건 질적으로 다르다고. 이미 각자의 자리에서 인정받는 프로들이지만, 그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탄탄한 실력이 재미있는 기획과 만나 비로소 대중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게 되었다고. 엄마는 내 말을 흘려듣고 "그래 멋있다"하면서 댄서들의 화장에만 놀라움을 보냈지만, 나는 엄마와 달리 매회 스우파를 볼 때마다 느끼는 내 안의 그 뜨거운 무언가를 어쩔 수 없이 억제하며 마치 북한 사람들이 레드 벨벳 무대를 보듯 경건히 볼 수밖에 없었다.


내 안의 그 뜨거운 것 중 일부는 물론 인간이 갖고 있는 흥에서 기인한 것임은 틀림없다. 리듬에 반응하는 것은 본능일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자 하는 욕망이 내가 가진 그 뜨거움 중 지배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사원"과 "백댄서"의 공통점이었다. 라치카의 리더 가비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촬영장에 갈 때마다 저는 하나의 피사체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제 비로소 대중들의 관심과 사랑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었고 그것이 너무 감사하다는 내용이었다.


피사체라는 단어는 회사원으로서 통감하는 단어였다. 나는 위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오징어 게임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나의 말"에 지나지 않았다. 나를 중요한 의견을 낼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고, 그저 명령에 복종하면 되는, 그저 제자리에서 기계처럼 시키는 일이나 하면 되는 피사체였다.


나는 아직 피사체로서 그 자리에 조용히 존재하지만, "백댄서"들은 그 틀을 깨고 비로소 대중들에게도 사랑받는 "댄서"가 되었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은, 그들이 항상 준비된 프로들이었다는 점이다. 씬에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말 그대로 선수들이었다. 댄서들은 아이돌 무대에서 병풍처럼 받쳐주는 역할에 갇힐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충분히 매력 있고, 얼마든지 이를 선보일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점이 너무나 짜릿했고, 또 대리만족을 느꼈다.


회사원들의 인생이 드라마틱하게 바뀔 가능성은 적다. 하지만 스우파 댄서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잊지 않고 살아가련다. 우리는 충분히 매력 있고, 얼마든지 이를 선보일 준비가 된 프로라는 것. 그게 어떤 방향이든, 어떤 모양이든. 물론 나 자신에게 자신 있을 때까지, 때 빼고 광 내는 것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2. 오해와 싸우는 법


내가 흥미롭게 보았던 다른 포인트 하나는 사람들의 댓글들에서 시작됐다. 어김없이 방송 시청 후 여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튜브 영상을 디깅 할 때마다 이런 댓글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댄서들 예전에는 문란(?)하다고 느껴졌는데, 이제는 그 노력과 실력이 너무 멋있어요", "외모만 보면 무서운 언니들인데 완전 순둥순둥 순두부" 등등. 물론 시청자들의 결론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는 점에 포인트를 두어야겠지만, 나는 문장의 앞부분에 생각이 꽂혔다.


기실, 문란하기로 치면 회사원이 더 심할 수도 있다. 주변에 댄서분들이 없어서 어떻다고 비교를 할 순 없겠지만, 노출 있는 의상을 입고 관능적인 춤을 추는 것이 문란한 일일까. 노출 있는 의상이라는 것부터가 문화적으로 모두 다른 해석을 내릴 수 있다. 더하여 진부한 방법이지만, "문란"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도덕, 질서, 규범 따위가 어지러움'이라는 뜻인데, 오히려 춤을 통해 인간은 내재된 욕망을 건강하게 발산하고, 이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준다고 생각한다. 이는 오히려 인간 사회의 도덕, 질서와 규범 따위가 통합되고 정리되도록 돕는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한편, 외모가 순한 편이 아닌 나로선, "무서운 언니", "센 언니"라는 표현에 항상 움찔움찔거리게 된다. 세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사람들의 무수한 오해로 정말 내가 세거나 다가가기 힘든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항상 사람들의 오해와 싸워야 한다. 때로는 싸우는 것이 지쳐 그 오해를 그저 내버려 두기도 한다. 특히 진한 화장이나 한국인의 보편적인 기준에 안 맞는 화장법을 한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그 내면은 여리지 않을까 싶어 진다. 여린 내면은 눌러두고 세상에 목소리를 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외모, 화장법 등은 본질이 아니다. 그저 각자가 표현하고 싶은 것들의 수단일 뿐이다. 무슨 지킬  하이드처럼 화장을 지우면 순두부가 되고 화장을 하면 갑자기 Bitch 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스우파 댄서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멋진 노력의 시간들로 채워나간 멋진 사람들일 뿐이다. 나는 그런 댄서들이 사무치도록 좋고 마음이 울렁일 정도로 응원하고 싶다. 스우파 영상을 보며 오징어 댄스를 추는 모든 회사원들에게도, 세상으로부터 받는 오해 따위는 떨쳐버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사랑받는 주인공이 되기를 사무치도록 바라고  울렁일 정도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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