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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일홈 Nov 21. 2021

스님과의 여행, 황남빵에서 거시기빵

경주 2011

자연의 법칙이 으레 그렇듯 시간은 반복되어 커지는 혹은 작아지는 프랙털의 크기에 비례하여 쏜살같이 성장했다. 나의 10년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우연히 20살의 끝자락 그리고 29살의 끝자락에 한 번씩, 한반도의 역사 중 머나먼 옛날 오랜 시간 수도의 지위를 갖고 있던 경주라는 도시를 여행하게 되었다.


성인 행세를 하고 나게 된 뒤 처음 맞이한 겨울이라는 자유 시간. 우리는 나라가 제안한 합법적이고 저렴한 여행 수단에 따라 그 해 겨울의 일주일의 절반 정도를 기차 위에서 보내게 된다. 우리는 한반도의 남부를 여행하기로 했는데 그중 한 도시가 경주였다. 지금이야 대다수의 이용객들이 기차 하면 KTX를 떠올리지만, 돈이 없는 학생들에게 기차는 '덜컹-덜컹-' 소리가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리드미컬하게 들리는 새마을호가 예외 없는 선택지였다. 그마저도 첫 경험이어서 새마을호의 속도가 느린 것인지도 알지 못했고, 그저 고요한 기차 속에 절친한 친구와 갇혀 끝도 없는 대화의 향연을 펼치는 것에 그저 행복할 때였다.


우리가 도착한 역은 "경주역"(KTX 정차역인 신경주역이 아니다). 아담한 역사에 발길을 내디딘 우리는, 지금과는 다르게 아는 것은 물론 계획성도 없었던 순진한 초등학생 같아서, '자- 이제부터 어딜 가 봐야 하나...' 하는 생각을 얼굴 표정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 와중에 밝은 회색의 승복을 입은, 성별을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스님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어디 가시는 곳 있으면 태워 드릴게요." 스님의 차에 올라탄 우리는 결국 하루 종일 그 여자 스님의 핸들이 이끄는 대로 경주 여행을 하게 되었다.


스님은 가는 길에 황남빵 맛집이 있다며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했다. 경주의 황남동에서 시작되어 '황남빵'으로 불린다는 제과였다. 크지 않은 가게에 빵을 만드는 공간이 훤히 드러나 있었고, 산더미처럼 쌓인 밀가루 반죽과 팥 소가 대조되는 빛깔을 뽐내며 빵집 안의 분주한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우리는 갓 만든 따끈하다 못해 피부가 견디지 못할 정도로 뜨거운 황남빵을 받아 들어 그곳을 나왔다. 추운 겨울에 갓 만들어진 빵을 호호 불어 먹으니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황홀한 맛이었다. 맛만 보기 위해 하나만 먹겠다는 마음가짐은 이내 어리석은 다짐이 되어버렸고, 스님의 차 안에서 우리는 황남빵 상자 안의 절반 정도를 모두 먹어버렸다.


우리는 이어 사찰로 향했다. 스님은 자기 확신이 가득한 리더처럼 우리를 이끌었다. 스님과 동행이라면 사찰도 무료였다. 능력 있는 남자 친구를 만난 것처럼 왠지 모르게 사찰 문을 통과할 땐 어깨가 으쓱였다. 스님은 우리에게 경주의 겨울 공기, 배스킨라빈스 선셋의 색깔로 뒤덮이는 하늘, 목조 건축물이 주는 깊은 향, 그 위를 덮는 기와의 곡선과 경주를 둘러싼 나지막한 능선의 산들의 조화를 보여주었다. 스님은 어느 한 지점으로 우리를 데려가 이곳에서 꼭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부처의 깨달음이란 이런 것일까. 그 자리에 서서 바라본 경주의 하늘은 내게 두고두고 삶의 커다란 가르침의 순간으로 남아있다. 사찰의 이름은 지금도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곳에서의 기억이 너무 아름다워서 다시 찾아가고 싶지만, 차라리 잘 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스님과의 인연을 붙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새로운 인연이 내게 밀려오던 때였다. MBTI가 유행하던 시절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신입생들은 모두 자신이 ENFP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결과가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새로운 사람, 관계, 인연을 하나라도 내 것으로 만드는 이 최고의 덕목으로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스님의 개인사를 여쭈었다. 스님은 경주에 있는 불교대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스님의 하루 일과는 새벽 3시에 시작한다는 정도만 들을 수 있었다. 연락처를 여쭈었지만 지금의 인연은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스님. 그때의 그 말이 내게 다가올 땐 맞지 않는 퍼즐 조각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의 나에겐 그 조각을 내 몸에 끼워 맞추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게 되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세월이란 참 영악한 어린아이 같다.


마지막 장소에 와서야 우리는 서로 얼굴을 붉혔다. 그 도착지가 성 박물관이었기 때문. 목적이 있어서 간 것은 아니고 가는 길에 보여서 들어갔다는 사실. 망설임이란 없었던 그 세 명의 조합은 아마 여행하기에 최고의 멤버가 아니었을까. 어쨌든 그곳에 입성하니 건물 바깥에서부터 온갖 고통 혹은 환희에 가득 찬 표정의 조형물들이 우리를 위압적으로 반긴다. 아니, 이거 천년의 고도에 있어도 되는 것들인가 싶다가도, 한편으론 B급 영화의 어이없는 유머 코드 같은 이 상황에 해방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 박물관의 취지는 대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성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에게 교육적인 공간이 되기엔 무턱대고 믿도 끝도 없이 문란했으며, 진짜 성을 즐기기 위해 오기엔 좀 우스꽝스럽게 풍자적이었다. 뭐 어디 그 사이쯤에 위치한 건가. 나와 내 친구는 쑥덕쑥덕 거리며 하나하나 티 안 나게 유심히 관찰했고, 스님은 그저 동네 마트에 마실 나온 주민 같았다. 그곳엔 우리 빼곤 모두 커플들뿐이었다. 발그레하기 상기된 표정에 서로를 향해 있는 각도가 예각이다 못해 곧 있으면 0도로 수렴할 것 같은 커플들은 박물관 마지막 코스가 될수록 발길을 서두르는 것이 느껴졌다. 아! 이리도 즉각적인 학습 효과를 내는 박물관이라니. 취지를 조금 알 것 같기도.


2011년 경주에서의 여정은 황남빵에서 시작해 거시기 빵으로 끝났지만, 오로지 2011년 겨울에만 느낄 수 있었던 경주 그리고 인연의 여행이었다. 그날의 경주와 그날의 인연 모두 지금은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그것들은 나를 이루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 진득한 팥 소가 되어 내 안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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