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 자와 떠날 준비를 하는 자
인간은 함부로 불평을 하면 안 된다고, 인천 생활이 지겹다 지겹다했더니 다음 직장 발령지가 제주도로 정해져 버렸다. 내 직장이 신비와 환상의 섬 제주라니. 높은 건물이라곤 중국 자본의 그랜드 하얏트뿐이고, 제자리에서 한 바퀴 반을 더 돌아도 파란 하늘이 온갖 군데서 나를 반겨준다. 가끔은 하늘이 덮고 있는 구름이 너무나 거대해서 마치 솜이불에 들어와 있는 것 같다. 가로수로는 야자수가 심어져 있으며 하루의 시작과 끝을 불쾌하게 만드는 만원 지하철 또한 없다. 내가 지내게 될 동네도 고요하고 적막한, 귀뚜라미가 가장 시끄러운 동네. 방문 앞으로 보이는 빨간 기와의 나지막한 집들과 그 너머로 풍경화를 완성하는 하늘색 하늘과 무심하게 찍어 그려놓은 듯한 구름 덩어리들. 이런 곳이 직장이고 집이 되어버렸다.
초반 한 두 달은 제주라는 것을 실감할 새가 없이 집 회사 집. 제주임을 자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출근길 야자수와 푸른 하늘, 퇴근길 새빨갛게 펼쳐진 끝이 없는 노을. 오직 그때뿐이었다. 금요일 퇴근길마다 이런저런 이유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별안간 가장 비싼 교통수단으로 출퇴근하는 삶이 되어버렸다. 회사에서 종종 듣는 제주도 사투리는 여전히 어색했고, 며칠이 지나도 내가 제주도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이 혼란하기 그지없었다. 회식 때마다 먹는 돼지고기가 지겨웠고, 큰 마트가 없는 이 동네가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푸르른 나무들과 청명한 공기는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고, 내가 원하는 것들은 모두 그대로 도시에 두고 온 느낌이었다.
몇 번의 주말은 제주에서 보냈다. 주말 제주 여행은 도시에 있다가 제주에 왔을 때의 여행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마치 인천에 있다가 강화도 정도로 놀러 간 느낌이랄까. 제주에서 제주로의 여행은 이전만큼 큰 감동이나 행복을 주지 못했다. 사람 마음의 간사함을 다시금 깨달으며 주말 내내 부지런히 돌아다니다 보면 어느새 다시 출근해야 하는 월요일이 찾아오는 것이다. 돌아다니지 않는 주말의 제주는 고독하고 외로움 그 자체였다. 집안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아도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사람들은 차를 타고 다들 어딘가로 나간다. 가족단위가 많이 사는 이 동네에서 유난히 나는 더 외로운 존재처럼 느껴진다. 길거리엔 사람이 없고, 매연도 소음도 그 어떤 공해도 없다. 강렬하게 내리쬐는 제주의 햇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여름 그리고 가을의 공기만이 진득하게 떠다닐 뿐이다.
근 세 달간 내가 느낀 제주에 사는 사람들은 크게 두 분류로 나뉜다. 결국은 머무는 자와 언제든 떠날 준비를 하는 자. 이 둘의 간극은 크다. 머무는 자는 떠날 준비를 하는 자와 해사한 미소를 띠며 잘 어우러지는 듯해도 마음 깊은 곳에는 그 문의 빗장이 굳게 닫혀있다. 떠날 준비를 하는 자 또한 외롭기는 매한가지다. 이곳에서의 잠시나마의 시간은 반짝 세일처럼 짜릿하고 즐거우나 결국은 그 즐거움은 제주에 둔 채 다시 본인이 추구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곳으로 돌아가거나 돌아갈 준비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이 둘은 끝까지 깊은 소통은 하지 못한 채 서로를 물과 기름처럼 나눠서 인식한다.
도시는 외로움의 얼굴이 만연하지만
섬은 철저히 철저히 갇혀있는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