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 2년차의 후기
태양, 입맞춤, 야생의 향, 이 외의 모든 것들이 헛되게 느껴진다. 나는 이곳에서 굳이 혼자가 되려 하지 않는다. 나는 사랑하는 이들과 이곳을 곧잘 찾았고, 그들의 얼굴에서 사랑의 표정인 환한 미소를 읽었다.
- 『결혼, 여름』 , 알베르 카뮈
제주 생활도 2년이 되어 간다. 여름이 다가올수록 다시 지난여름의 설렘이 야릇하게 감각을 일깨운다. 어떤 명작보다 감동을 주는 하늘, 규칙적인 파도의 포말을 흘려보내는 바다, 꽃망울을 소리 없이 터뜨리는 파랗디 파란 수국, 배달 오토바이 소리가 아닌 새소리로 일어나는 아침. 이러한 조각들이 차곡차곡 모이다 보니, 2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꽤나 다르다.
오름을 오르고, 바닷가나 둘레길을 산책하고, 사람 없는 자연 속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고, 스노클링이나 서핑을 하면서 제주도가 주는 아름다움을 온전히 직면하다 보면, 문화고 예술이고 유흥이고 도파민이고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그 순간에는 자연이 주는 선물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벅차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열대나 온난한 기후 지방 사람들의 생산성이 왜 낮을 수밖에 없는지 몸소 이해가 간다. 태양이 저렇게 빛나고 야자수 이파리가 살랑거리며 달콤한 과일들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무엇을 위해 네모진 공간에 갇혀 액정만 들여다보고 있겠는가. 행복이 멀리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성이라는 말은 분명 기후와 자연이 별 재미를 볼 수 없는 지역의 사람이 만들었을 것이다.
출산율도 높아진다. 제주는 출산율 0.9명대로 통계로도 출산율이 높은 지역에 속한다. 주변에서도 외동인 집은 보질 못했다. 이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더 사랑하게 될 아이를 만들어 함께 이것들을 나누고 싶어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봉사 단체에서 빵 봉사를 했다. 단체가 위치한 곳은 한적한 숲 근처. 지체 장애인들이 밝고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마저 여유로워진다. 이곳에선 남 시선을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복잡한 도시 속에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일어날까 스트레스받을 일도 적다.
치열하게 경쟁하는 삶은 필수 불가결한 것일까. 복잡한 도시 속에서 부대끼며 사는 것이 유일한 길일까. 학생 시절 경쟁을 주입받으며 자라왔던 내가, 어렸을 때부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면 지금과 달랐을까. 아니면 반대로 도시에서 자랐기에 이정도의 생존력이라도 갖게 된 걸까?(사실 제주의 교육열도 상당하다. 카페에 가면 교육 이야기로 열띤 토론을 하는 학부모들을 다수 볼 수 있다.)
모든 도시가 서울 같거나, 혹은 모든 도시가 제주 같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시티걸을 외치던 내가 제주에 평생 살 수도 있겠다고 느끼는 것을 보면 우리는
모두 본능적으로 조금은 더 여유롭고 한가로운 삶을 바라고 있음이 틀림없다.
아, 어서 제주 바다에 머리를 박고 잔뜩 바다 생물들을 구경하다 나와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수영복 물기를 바싹 말리며 망고 스무디를 마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