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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ther May 17. 2023

나의 친애하는 '밤톨 동생'에게

10년 차 직장인 상담일지 3


얼마 전부터 자주 만나는 동생이 있다. 나는 그녀를 ‘밤톨 동생’이라 부르고 있다. 그녀는 뾰족한 가시들로 둘러싸여 있다. 작은 일에도 불안과 두려움을 느끼고, 때로는 그 감정에 압도되어 불필요한 적개심을 보이거나 숨어버릴 때도 있다. 그런 동생이 요즘 들어 나에게 자주 대화를 걸어오는 건 아주 잘 된 일이다. 선인장 같은 껍질을 까보면, 매끈한 알맹이로 꽉 찬 사람이란 걸 나는 알기 때문이다.


2018 어린이대공원


요즘 동생의 고민은 임신과 출산이다. "아이를 갖고 싶은데 겁이 나요. 경제적인 여유가 없는데 부족하게 키우면 어떡하죠? 체력도 달려서 육아를 병행하다가 결국 일을 포기하게 될 것 같아요. 제가 돈을 벌지 못하면 여러 사람이 절 무시하겠죠. 그렇게 되어버리면 제가 아이를 사랑으로 기를 수 있을까요?" 나 또한 같은 이유로 오랜 시간 속이 복잡했지만, 동생이 이 일로 괴로워하니 또 마음이 아팠다. 임신과 출산을 겪지 않은 나로선 동생에게 명쾌한 솔루션을 줄 수는 없었다. 다만 그 고민을 인정하고 공감해 줄 따름이었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 인류학자 최재천 교수님도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 대한민국에서 저출생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이어서 나는 만삭이 된 친언니를 바라보며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우리 언니도 사회생활을 오래 했고, 10월쯤 출산을 앞두고 있다. 그도 한때 임신출산을 두려워하던 존재였다. 엄마와 통화 중 전화기를 붙잡고 한참을 울기도 했을 정도로. 그랬던 언니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순간부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한다.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이 축복이라 느꼈고, 가족들이 한마음으로 아이를 준비하는 과정도 즐겁다고 한다.


2018 어린이대공원


나 또한 한 생명이 언니 뱃속에서 자라는 걸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 2mm짜리 조카는 그 작은 존재만으로 온 가족의 사랑을 받았고, 현재는 30cm 넘게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더불어 나는 내가 2mm였을 때를 상상하며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를 포함한 모든 ‘존재‘들이 한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존재였고, 가족들의 축복과 사랑으로 이렇게 큰 존재가 되어 내 눈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게 기적 같았다. 만약에 내 아이가 생긴다면 더 많은 감정을 느낄 터. 그렇게 생각하니 새 생명의 탄생을 보는 일이 삶에 있어서 나쁜 일만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임신출산이 두려웠던 시간이 꽤 길었지만, 지금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어. 아이를 낳아 키우게 된다면 힘들면 힘든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그 모든 경험 속에 가치가 있을 거라고 말이야.“ 동생과 대화를 마무리하며 내가 말했다. 더불어 ”그러면 어떡하지 “라는 식의 걱정을 이제 담백하게 접어두자고 했다.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일을 걱정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게다가 엄마가 불안하면 아이가 착상하기 어렵다고 한다!). 동생과 대화를 하니, 어지럽혀있던 내 생각과 고민들도 자연스럽게 정돈이 되었다.


2018 어린이대공원


이쯤에서 눈치챈 독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밤톨 동생’은 바로 나 자신이다. 내면과 대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페르소나로, 걱정에 둘러싸인 나 자신을 가상의 존재로 설정한 것이다. 지금 나의 고민을 ‘내가 아끼는 이의 고민’이라고 상상해 본다. 나의 경우 동생/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고, 대화하는 과정에서 생각이 정리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동생’을 페르소나로 정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녀를 만나고 있다.


페르소나가 효과적인 이유는 첫째, 나의 불안을 머릿속에만 두는 게 아니라 글과 말로써 표현하면서 정리할 수 있다는 점이고, 둘째는 고민을 타자화 하여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증폭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점이다. 페르소나가 내가 애정하는 존재라면 더 좋다. 내가 아끼는 인형이 될 수도 있고, 만화 속 캐릭터일 수도 있다(<인사이드 아웃>의 소심이랄지). 어떤 이는 소설 속 교수님의 모습을 존경해,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그에게 편지를 쓴다고 한다. 그/그녀라면 어떤 답장을 줄지 상상해 보는 것이다.


2018 아차산 자취방에서


오늘 나의 또 다른 페르소나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여러분도 걱정이 피어날 때마다 부담 없이 찾아가 대화 나눌 존재, 불안의 늪에서 나를 끌어올려줄 존재를 내면에서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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