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어쩌다 너를 만나서...
수영장이 문을 닫은 지 3개월이 흘렀다. 매일 아침 그곳에 모여 수영을 하고 수다를 떨던 활기 넘치는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굳게 닫힌 수영장 출입문엔 출입금지를 알리는 빛바랜 공고문만 남았다. 코로나 바이러스 팬더믹은 인간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고, 작은 동네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한 인간의 수영하는 즐거움마저 앗아 가버렸다.
처음엔 보름만 쉬면 당장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한 달, 또 한 달... 지금은 그나마 수영장에서 날아오던 정기적인 안내 문자마저도 멈췄다. 격리자가 0명이 되기 전에는 다시 수영장으로 돌아갈 수 없지 않을까.
격리자 0명이 되는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오랜만에 동네 수영장으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출입문 유리창에 얼굴을 대고 어두컴컴한 실내를 바라본다. 늘 습기가 차 있던 유리창은 바짝 말라 있고, 공기 속에 희미하게 떠돌던 염소 냄새도 그 많던 사람들과 함께 사라졌다.
눈을 감아본다. 투명하고 파란 물이 넘실거리고 첨벙첨벙 두런두런 사람들의 소리가 넓고 높은 수영장을 울리며 날아와 귀에 꽂힌다. 푸른색 수영복의 여자가 소리 지르며 달려와 물속으로 뛰어든다. 팔을 한 번 저어 미끄러지듯이 조용히 나아간다. 차가운 물이 온몸의 솜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반갑다고 인사한다.
‘아아.... 이거야. 수영이 너무 좋아’
21살에 시작한 담배를 끊기로 마음먹은 건 2013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때아닌 여름 감기에 죽을 만큼 기침을 한 뒤였다. 금연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고 응원하는 사람도 없이 자발적으로, 살아보겠다고 갑자기.
보건소의 금연 프로그램을 이수하진 않았지만 보건소 홈페이지에서 금연에 관한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금연을 시작하며 내가 필사적으로 붙든 건 단 두 가지 메시지였다.
‘무조건 오늘은 피우지 않는다.’
‘하나를 잃었으니 하나를 보상하라.’
금연 첫날 주황색 메모지에 써서 붙인 ‘무조건 오늘은 피우지 않는다.’ 이 메모는 지금도 메모 벽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같은 날 동네 수영장의 월수금 아침 8시 강습을 신청했다. 스무 살 여름방학에 오빠에게 한 달 배운 걸 제외하고 생애 최초의 수영 강습이었다.
왜 하필이면 수영이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 수영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어떤 운명적 징후들이 분명 있었다.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전업을 꿈꾸던 시기여서 시간은 많았지만 마음이 복잡했고, 그 충분한 시간에 깊이 빠져든 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었다. 그런데 하필 무라카미 하루키 본인이 어딜 가나 수영복을 챙겨 다닐 정도로 수영 마니아였고, 그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도 대부분 마음이 복잡할 때나 습관적으로 수영을 했다. 그것도 1500m를 쉬지 않고 천천히.
그 느낌이 너무 궁금했다. 불안한 미래로 인해 어지러운 마음을 어쩌지 못하던 당시의 나는 장거리 수영을 어떤 의식처럼 치르는 주인공의 심리가 궁금했고, 장거리 수영을 하면 정말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알고 싶었고, 그 글을 쓴 하루키의 생각에 더 깊이 공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의 수영 실력으로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또 당시 텔레비전에 방영되던 녹십자의 이미지 광고도 수영을 선택하는데 한몫했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인간의 염원을 담은 그 광고엔 초록색 수영복을 입은 백발의 여성이 등장했다. 그녀는 많이 늙었으나 늙지 않았고, 말랐다기보다 건강해 보였고, 아름답다기보다 생기 있었다. 오래 살 계획은 없지만 만약에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도록 살아 있다면, 초록색 수영복의 그녀 같은 모습이고 싶었다.
그렇게 담배를 버리고 수영을 선택했다. 마침 수영장도 큰길 건너편에 있었다. 자유형, 평영, 배영을 할 줄 아니까 당연히 중급을 선택했고(잘하지는 못해도 할 줄 안다고 믿었다!), 옷장에 처박힌 지 10년쯤 된 수영복과 수모, 거금을 들여 구입한 아레나 도수 수경을 가방에 넣고 이른 아침, 수영장으로 갔다.
2013년 9월 2일이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