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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심소녀단 Jun 02. 2020

수영 홀릭

02. 강습 수영인의 세계

낯선 이가 출연하면

경계경보부터 울리는

중년 여인들의 세계     


강습 첫날은 나의 짧은 수영 인생을 통틀어 가장 우스꽝스러운 날이었다.


수영 강습이 처음이라 수영장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강습 시작까지 정보를 찾아 계획을 꼼꼼히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탈의실에서부터 강습이 끝날 때까지 내 뜻대로 흘러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나는 강습 수영인의 세계에 대해 너무 몰랐다.   


집에서 수영복을 입고 간 것부터 문제가 됐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 옷을 벗고 싶지 않았고, 워터파크에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 여겼다. 탈의실에서 옷을 벗는 순간, 어르신 나이쯤 되는 분이 샤워 후에 수영복을 입으라고 했다.     


“집에서 씻고 왔어요.”

“여기 자기 전에 집에서 씻지 않은 사람이 어딨어?”

“............!!!(정말 나오기 전에 씻고 왔다. 자기 전이 아니라!)”     


대꾸 없이 샤워실로 들어갔다.

그곳에 있던 어르신 그룹과 중년 그룹 여인들의 시선이 모두 내 몸에 와서 박혔다.     


“수영복 벗고 샤워부터 해요. 자기 몸 때문에 더러워진 물 자기가 다 마실 텐데..

진짜 더러워 죽겠네.”     


정말 시끄러워 죽겠네, 남의 일에 뭔 상관이야?...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삼켰다. 타인의 지나친 간섭이 불편해서 반발심이 더 생겼다.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더 꼿꼿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수영복이 도와주질 않았다.


10년 동안 처박혀 있던 수영복은 따뜻한 물이 닿자마자 겨드랑이와 사타구니의 고무줄 부분이 녹아내렸다. 순간 다른 사람들의 짱짱한 수영복이 눈에 박혔고, 펄럭이며 늘어진 수영복과 함께 당당하던 내 기세도 꺾이고 말았다. 시선을 피하려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벗었다, 씻었다, 그리고 입었다.

         


수영을 할 줄 아는 것과

강습 수영의 차이     


강습 첫날의 풍경은 언제나 똑같다. 쭈뼛하며 두리번거리는 사람과 익숙하게 자기 레인으로 가서 몸을 푸는 사람, 강습 시간에 맞춰서 나타나는 강사들.

 

처음 온 사람들에게 강사들이 묻는다.

‘어디까지 배웠어요?’

 

자유형, 평영, 배영 다 할 줄 안다고 자신 있게 말했더니 중급 레인에 배정이 됐다.(25m를  갈 수 있냐고 물었더라면...) 레인에선 샤워실에서 봤던 사람들이 수영 선수 같은 몸놀림으로 레인을 왕복하고 있었다.


나도 강사의 지시대로 자유형을 하기는 했는데...

25m 레인을 절반도 못 가 힘이 들었고...

잠시 쉬었다 가기 위해 바닥에 발을 대려고 했지만...

    

버둥거리다가 (내 몸을 담가서 더러워진!) 물을 들이켠 뒤에야 간신히 레인 레일을 붙잡았고, 레일에 매달린 채 수영장 끝으로 갔다. 겨우 수심 1.5m 물에 빠져 죽을 뻔했던 공포보다 망신살이 뻗친 게 더 아팠다. 그때 그 레인에 또 누가 있었는지 누가 보고 있었는지 그런 건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살겠다고 몸부림치는 요란한 버둥거림만이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남았다.



창피함도 잠시 강사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초급으로의 이동을 명했다. 자유형 발차기가 시작됐고 발차기만 하다가 강습이 끝났다.

아, 허벅지 터져!     

     


엄마들의 감시와

규칙이 지배하는 또 다른 세계     


두 번째 날, 더 이상의 실수는 없다.

남색의 밋밋한(최대한 눈에 안 띄는) 새 수영복을 장만했고, 집에서 씻고 가는 번거로운 짓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를 감시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옷을 벗고 샤워실로 갔다. 보란 듯이 알몸으로 입장하며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런데 꼼꼼하게 씻은 뒤 수영복을 입고 수모를 쓰려는 찰나, 이번엔 어르신 나이쯤 되는 다른 분이 내게 다가와 귀에 대고 말했다.      


“머리도 감아야지. 안 감은 머리 담근 더러운 물 자기가 다 마실 텐데...”

“.................!!!!!!”     


‘아, 쫌!!!’

소리 지르고 싶었지만 참았다. 


대꾸 없이 수모를 썼다. 머리 감는 것만큼은 양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샤워실을 나갔다.(이대로 질 수 없다는 마음이었는데 무엇에 이기고 지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투지였다.)    

  


강습 수영인의 세계는 또 다른 엄마들의 세계였다. 40대부터 70대까지 연령 별로 모인 엄마 집단의 세계. 엄마들의 규칙이 지배하는 세계. 반항해봤자 소용없다. 엄마 잔소리를 어떻게 이기나?


결국 나는 세 번째 강습부터 머리 감고 샤워한 뒤 수영복과 수모를 착용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다.



덧) 여자들의 경우 긴 머리 때문에 수영이 끝난 후에 머리 감는 사람들이 많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 * 보 수영 강습인, 수린이를 위한 팁 * *

1. 옷장에서 5년 이상 묵은 수영복 따위 과감하게 버리고 새로 장만합시다.

2. 버리기에 아까우면 최소한 물에 한 번 담근 뒤 늘어짐을 살펴보기를 권해드립니다.

3. 강습용 수영복이니까 블랙이나 네이비? 색상이나 디자인을 더 과감하게 고르십시오.

실내 수영장의 풍경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밋밋한 수영복을 입은 첫날, 다른 수영복이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4.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지 마십시오.

예전에 배웠는데 그 예전이 몇 년쯤 흘렀으면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강습이 처음이지만 바다나 강에서 수영을 꽤 하시는 분도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초급에!

수영엔 강습 수영의 세계가 따로 존재합니다.

5. 강습을 시작했다면 1년은 버티기를 권장합니다. 매일반이 가장 좋지만 주 3일이라도 1년만 하면 4가지 영법의 기초는 확실히 익힐 수 있습니다. 쉬었다가 다시 돌아와도 훨씬 편하게 적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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