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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심소녀단 Jun 20. 2020

수영 홀릭

03. 수영하면서 사색이라니요?


‘수영을 하면 몸에 쌓인 피로가 풀리고 긴장한 근육도 풀어진다. 물속에 들어가면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보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1주일에 이틀, 30분 정도의 수영으로 그는 몸과 정신의 균형을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또한 물속은 사색하기에 좋은 장소이기도 했다. 일종의 선 수행 같은 것이다. 일단 운동 리듬을 타면 사고를 아무런 속박 없이 자유롭게 떠가게 할 수 있다. 개를 들판에 풀어놓은 것처럼.’(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중에서)       


 


아무리 복잡한 생각도

어느 순간 사라진다     

     

집에서부터 혹은 수영장에 들어오면서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생각이 있었다 하더라도 물속에 몸을 담그는 순간 생각의 다른 차원이 열린다. 킥을 차고 팔을 돌리기 시작하자마자 25m를 가는 게 중요해지고 앞사람 혹은 뒷사람과의 간격을 유지하는데 집중하게 되고, 잘 돌아와서 다시 25m를 더 편하게 가는 게 목표가 된다.    

  

그러다가 한 바퀴를 더 돌 것인가 쉴 것인가를 두고 고민에 빠지고, 중간에 쉬고 싶어도 강사나 다른 강습인이 신경 쓰여 꾹 참고 다시 간다.(에라 모르겠다의 심정으로 쉴 때도 가끔 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숨쉬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몸도 서서히 가라앉는다. 그때부턴 '쇳덩이 같은 무거운 팔과 다리를 멈추고 싶다'거나 '도착하면 쉴 수 있다' 같은 아주 단순한 본능만 남는다. 생각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그렇다. 그런 의미라면 작가 하루키의 말처럼 물속은 사색하기에 좋은 장소가 맞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생각이 단순해지는 곳이고, 더 적나라하게 표현하면 호흡이 제한된 곳에서 조금이라도 숨을 더 들이마시기 위해 필사적으로 애쓰다가 생각하기를  잊어버리는 곳이다.(과장을 보태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돌덩이처럼 박힌 무거운 생각이 비집고 나오더라도 호흡 한 번에 흩어져버리고 반복적으로 뱉어내면서 점점 가벼워진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개운한 몸만큼이나 날아갈 듯한 기분이 된다. 상념을 비운 자리에 그만큼의 여유가 생기고 뾰족한 생각은 둥글어지고 걱정은 무뎌진다.


대부분의 운동이나 취미가 집중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사색이나 명상의 효과가 있지만, 유산소 운동 중 가장 칼로리 소모가 많은 전신운동인 수영은 그 효과가 좀 더 드라마틱한 것 같다.   

       

방학이면 엄마와 함께 강습에 오는 상급 1번 언니의 아들(왼쪽) 접영하는 방심이(오른쪽)




“헤엄치는 건

하늘을 나는 것 다음으로 좋은 거야.”         


거기에 덧붙여 선 수행에 가까운 사색을 가능하게 하는 수영의 특별함은 바로 ‘물’에 있다.   

   

형체 없이 자유롭고 유연한 물은 몸 구석구석 작은  솜털 하나에도 부드럽게 스며들어, 크기나 무게를 차별하지 않고 누구든지 무엇이든지 공평하게 받쳐주고 띄워준다. 그리고 매일 매순간 앉고 서고 걷고 뛰고... 중력에 맞서 버티느라 고생해온 인간의 몸뚱이를 편안하게 감싼다. 이처럼 다정하고 섬세한 손길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안간힘을 쓰며 살았던 땅 위의 메마른 순간들은 물속에 들어가면서 완전히 무장해제된다. 나도 모르게 물이 이끄는 대로 스르르 마음을 놓고 만다. 그렇게 몸을 속박하는 것이 사라지면서 생각이 자유롭게 흘러간다.  




수영할 때 무슨 생각하세요?  

   

수영하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는 질문에 상급 레인 1번 언니는 스트록(팔의 움직임) 수를 세고 영법 교정의 타이밍을 위한 숫자를 세거나(평영의 경우 하나에 벌리고 둘셋에 모아 찌르기 등) 몇 바퀴 돌고 있는지 카운팅을 한다고 한다.(역시 상급반의 1번답게 뭔가 전문적이다!)


상급반의 다른 언니는 자신의 자세가 제대로인지 신경 쓰며 어떻게 교정할지 고민하거나 수영복은 어떤 게 예쁠까, 이런 생각도 한다고.(역시 수영장의 패셔니스타답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일을 생각하다가 호흡에 집중하는 나와 비슷한 친구도 있다.(우린 아직 상급반이 아니다!)     


나는 수영하며 잡다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다. 2014년 4월에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유난히 차갑게 느껴지는 물에 몸서리를 쳤고,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문제에 뜬금없이 분노하기도 했으며, 수영이 여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하는 중요 모티프가 되는 사라 폴리 감독의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의 물속 장면을 떠올리기도 했고, 한동안 꽂혀 반복해서 들었던 유희열의 ‘너의 바다에 머무네’(김동률이 부른)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결말 없는 생각이 대부분이었고 노래는 구간 반복으로 끝나버렸지만, 헤엄치는 모든 순간은 내게 의미 있는 사색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수영하며 물속에서 많은 생각을 흘려보냈다. 때론 잊기도 하고 때론 버리기도 하면서 조금씩 새로워졌다. 그 시간만큼 내 몸은 나이 들었지만 정신은 더 성숙해졌으며, 수영 실력도 천천히 나아지고 있다.


여전히 영법에 대한 고민보다 잡다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지만 10년쯤 흐른 뒤에는 조금 달라져 있지 않을까?(10년 뒤 수영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보다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가 더 궁금한 게 사실)     



문득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생이별 중인 수영장의 다른 언니들은 수영할 때 어떤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모두 잘 지내고 계신가요?     


          


** 꽤 주관적인 수영의 장점 몇 가지 **     


1. 각질 제거제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

   얼굴을 물속에다 앞으로 옆으로 뒤로,

   넣고 빼고 하다 보면 각질 제거는 물론

   모공 청소까지 된다.

2. 발목과 손목이 가늘어진다.

   다른 운동에 비해 발목과 손목을 많이 쓰는

   운동인 만큼 건강하게 가늘어져

   예쁜 팔다리가 된다.

3. 어깨 선이 살아난다.

   수영하면 어깨가 넓어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루에 한 시간 수영으로

   절대 수영 선수 같은 어깨가 만들어지지

   않는다.(수영선수 유투버들이 말했다!)

   움츠려 있던 어깨가 펴지고 근육이 붙으면서

   보기에 딱 좋은 어깨 선이 생긴다.

   옷태? 당연히 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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