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늘 그렇듯 예측불허다
12월 7일 2차 피검을 마치고 그렇게 임신이 확정되고, 12월 11일 첫 초음파로 아기집을 확인한 후 정확히 일주일 뒤인 12월 18일 2차 초음파가 있는 날이었다.
남편과 함께 병원에 갔다. 벌써 임신이 확인된 지 2주가 지난 때였지만 병원에 가는 일은 늘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이었다. 초기라 조심해야 한다는 부모님의 노파심과 더불어 임신 확인 후에도 계속되던 플로루텍스(Prolutex), 크녹산(Cnoxane) 주사와 하루 4알의 질정제 덕분에 아직은 계속 난임 병원 환자로 관리받고 있다는 상태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 오전 10시 반 두 주사제를 직접 투약하였고, 오전 11시/오후 8시경 각각 2알의 질정제를 삽입하고 있었다. 병원에는 매주 주기로 방문하며 주사약과 질정제를 새로 처방받았다.
드디어 아기를 보는 두 번째 날.
다들 질 초음파는 불편한 느낌을 동반한다고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10월부터 잦은 진료와 수술로 어느 정도 익숙해진 상태였다. 무엇보다 아기의 상태를 확인하러 자주 병원을 간다는 사실이 안심되었고, 별다른 약속 없이 코로나 2.5단계 상황에 난임 병원 진료만 있던 나에게는 기다려지는 일주일 중의 가장 큰 스케줄이자 외출일이었다. 1차 초음파 때와 마찬가지로 먼저 질 초음파로 진료를 보기 시작했는데, (난데없이..는 아니었겠지만) 원장님께서 난황이 두 개 보이는 거 같다며 쌍둥이 같다고 혼잣말 하듯 넌지시 알려주셨다. 와... 정말 태어나서 생각해본 적도, 상상해본 적도, 내 일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한 일이었다.
쌍둥이 얘기를 듣고 반추해보자니, 배아 이식 당일 2개의 수정란 이식을 한다고 하셨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쌍둥이가 될 확률에 대해 여쭈었었다. 그때 원장님은 단호히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말씀하셨고, 배아 이식 후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서도 쌍둥이가 생겼을 거란 생각은 단 1%도 하지 않고 있던 나였다. 진료실에서 원장님은 쌍둥이 임신 확인증을 발급해 준다는 말씀을 하셨고, 그 말인즉슨 나는 지금 두 명의 생명체를 품고 있다는 뜻이었다. 어머, 웬일, 어쩜! 남편과 나는 둘 다 놀람과 기쁨과 당황함을 안고 다태아 임신 확인증을 받아 들었다.
또 다른 임신 확인증을 받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2020년 12월 18일. 하나님이 주신 크리스마스 선물인 걸까, 뭘까를 생각하며 흥분되고 설레고 동시에 어쩔 줄 모르는 마음으로 시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우선 두 분 다 놀라는 기색이셨지만, 그 뒤에 바로 기쁨의 웃음을 짓고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축하를 받았다. 앞으로 우리 부부의 인생이 점점 더 어디로 튈지 모를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우선 기쁜 소식임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친정 부모님께 직접 말씀드리러 가는 집으로 가는 길이 그렇게 총총거릴 수가 없었다. 엄마는 어떤 표정을 지으실까? 아빠는 어떤 말씀을 먼저 하실까?
점심시간이 지난 시각. 내 카톡창은 불이 났다. 가족 단체 카톡창을 비롯하여, 내가 주기적으로 연락하고 있는 2-3 그룹의 친구들의 단톡 창과 쌍둥이를 출산해 키우고 있는 친구, 배아 하나만 넣으라고 그렇게 잔소리하던 산부인과 의사 친구, 내 시험관 사실을 알고 있는 친밀한 이들에게 쌍둥이 소식을 알렸다. 이제 많이 기쁘고 살짝 흥분되는 마음이었다.
시험관 시도 1차 만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것도 너무 기쁘고 감사한데, 한 번에 두 명의 몫을 주신 상황을 얼마나 더 감사해야 할까 싶었다. 흥분되는 마음을 가라 앉히고자 시험관 시술 내내 하던 성경 필사를 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이렇게 나는 일란성쌍둥이의 예비 엄마가 되었다. 유난히 눈이 많이 오던 2020년의 겨울, 설(雪)이와 소복이를 품을 수 있음에 감사한 하루였다. 서울에서 생긴 아이이자 겨울에 생긴 아이라 ‘설이’로 미리 태명을 지어놨는데, 한 명이 더 생겨서 남편과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소띠해에 태어나는 복덩이라는 ‘소복이’라는 태명 하나를 더 지었다.
설(雪)이 소복소복 :)
특히 눈이 많이왔던 서울의 겨울에 어울리는 태명. 설이소복이와 함께할 앞으로가 기대되는 하루하루가 시작된 것 같다. 온통 다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