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전의 연속인 쌍둥이 엄마의 일상
2022년 12월 1일.
아이들이 태어난 지 495일 되는 날이다. 친정 엄마가 오랜만에 오전부터 저녁까지 일정이 있으신 날이었고, 남편도 일찍 퇴근할지 어떨지 장담할 수 없었다. 한파가 시작된 12월의 첫날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계획형 인간인 내게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날이었다.
오전 9시 반부터 혼자만의 육아가 시작됐다.
지금껏 하루 3, 4시간까지 혼자 아이 둘을 본 적은 있지만, 이렇게 한나절을 내가 데리고 있어야 하는 날은 없었다. 일단 오전에 다른 가족들이 외출하기 전에 (애둘을 커버할 다른 양육자가 있을 때) 샤워를 마쳤다. 외출을 할지 안 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하루를 시작한다는 의미에서 샤워하고 메이크업 베이스까지는 하고 있는 게 내 하루의 시작이기도 하다.
오전 간식으로 식빵 한쪽을 구워 둘이 나눠주고, 나도 식빵에 커피에 계란 프라이 하나와 방울토마토를 집어 먹으며 고민을 시작했다. 과연 애둘을 데리고 혼자 외출할 만한 곳으로 어디가 적당할 것인지. 집에서 걸어 15분이면 도착할 위례 스타필드는 너무 가까웠다. 평소 제일 만만하고 유용한 쇼핑몰이긴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한파에 15분을 밖에서 걷기엔 무리 같았고, 평소 가는 일정을 생각해 본다면 혼자 가서 애둘을 데리고 1시간도 버거울 것 같았다. 약속이 있었다면 (다른 성인이 동행한다면), 2-3시간 까지는 있을 수 있었겠지만, 오늘은 정말 나 혼자 뿐이었다.
아이 셋을 키우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해, 어디야로 시작해 자주 톡 하지만 그래도 근황과 애셋 안부를 묻고 마지막에 롯데월드몰의 주차여건을 물었다. 사실 이미 오늘 아침부터 잠실에 갈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거였다. 집 앞 마실처럼 다니던 잠실인데 애둘을 데리고 운전을 해 가려니 용기가 필요했다. 평일 낮이라는 점과 혼자 운전하고 서초, 한남까지 가봤다는 몇 달 전 경험이 용기를 주었다. 사실 미국에서는 운전경력 3년 차고, 샌프란의 언덕과 베이브릿지를 주말마다 드나들던 실력이었지만, 서울에서의 운전은 올해가 처음이었다. 애들을 데리고는 무난한 주행코스인 올림픽공원 정도가 고작이었고.
주차 자리만 잘 기억하면 문제없을 거라는 친구의 대답에 이미 마음은 잠실이었다. 얼른 옷방으로 가 아이들 옷을 챙겨 나왔다. 아이 둘 낮잠 시간을 고려해 집에서 여유롭게 더 놀아주었다. 책도 여럿 읽어주고 장난감도 한 번씩 돌아가며 놀아줬다. 시간은 아직 여유로웠지만 사실 마음은 콩닥콩닥이었다. 애둘을 데리고 혼자서 괜찮을까 하는 당연한 걱정 반 안전하게 주차를 하고 애들을 데리고 어디를 데려가야 우리셋의 첫 데이트가 성공적일까 하는 근심 반.
평소 친정 엄마와 외출 준비할 땐 옷 입는 것부터 짜증을 내던 아이들이 고맙게도 무난히 협조하며 옷 갈아입고 짐 싸는 것도 잘 기다려 주었다. 사실 낮잠 시간보다 좀 미리 준비를 해서 덜 짜증 낸 것 같기도 하다. 긴장해서 아파트 주차 자리마저 잊고 내려갔지만 어찌어찌 차를 찾았다. 외투를 벗기고 한 명씩 카시트에 앉히고 나름 노련하게 유모차를 접어 트렁크에 실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롯데월드몰 주차장’을 검색해서 출발했다. 둘째가 주차장에서 좀 짜증을 내긴 했지만, 지상으로 나오고 차가 출발하자 이내 소리가 멎었다. 출발한 지 3분여 지났을까? 정지 신호를 이용해 백미러로 둘을 보니 둘 다 잠이 들어 있었다!
이때부터 긴장이 좀 풀린 것 같았다. 애기들은 잘 협조해 주었으니 이제 엄마만 잘하면 된다는 신호 같았다. 아는 길이었지만, 네비를 찍고 나니 안심이 놓이는 것도 같았다. 도착 시간까진 20분 걸렸는데, 다행히 네비에서 이탈하지 않고 롯데월드몰 주차장 앞까지 갔다. 평일인데도 지하 4층 주차장까지 내려갔다. 후면 주차 초보자인 나는 한적한 곳에 주차자리를 잡았다. 시동을 끄는데 내 마음도 털썩, 해버렸다. 조심스레 차문을 닫고 트렁크에서 유모차를 꺼내 펴고 먼저 잠든 아이부터 유모차에 태웠다. 차에서 유모차까지 깨지 않고 옮겨 누운 몇 번의 성공적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나름 순조롭게 아이들을 이동시켰다.
몰에 도착해 대형 트리가 눈앞에 보이자마자 첫째가 눈을 떴다. 나도 놀라고 첫째도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엄마 여긴 어딘가요..?’ 아직 잠에서 덜 깬 눈이 말하고 있었다. “잘 잤어^^?” 하고 물으며 유모차를 끌어야 한다는 압박에 (둘째도 깰까 봐) 나도 모르게 자라 매장으로 들어갔다. 롯데몰만 오면 무조건 반사처럼 훑는 매장이라 홀연히 그쪽으로 들어갔던 것 같다. 뭘 살 생각은 당연히 못하고 유모차 다니기 좋은 곳으로 좀 돌아다녔다.
그러다 아무래도 1층은 애들을 데리고 다니기 좀 복잡하다고 생각했던지 유모차 프렌들리한 4층으로 올라갔다. 한파에 쫄아 셋다 두꺼운 니트를 입었던 탓에 실내에서 너무 더웠다. 나시에 니트에 두툼한 조끼까지 애들도 많이 더웠을 것 같다. 서점 안 아티제에 들어가서 아이들 줄 만한 치즈롤과 내 끼니가 될 만한 대충 소시지가 들어간 빵을 골라 아이스라떼를 시켰다. 1시 즈음이었을까. 옆 테이블 직장인들이 ‘쌍둥인가봐’, ‘진짜 똑같이 생겼다’, ‘순해 보여’ 하는 말을 들으며 난 내 일행인 내 아이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이때 둘째도 깨서 씨익씨익하고 있었다. 다행히 둘 다 기분이 좋았다.
생글생글, 까꿍까꿍 하며 넙죽넙죽 처음 먹는 치즈롤빵을 띠어먹으며 엄마인 나만 바라보는 아이들. 16개월인 자매를 보고 있으면 아이들이란 이렇게까지 사랑스러운 존재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누가 이맘때가 제일 예쁠 때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힘듦에 치여 잊고 있다가 16개월 차가 된 지금 그 말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할 수 있는 말은 ‘엄마, 아빠, 맘마, 음머, 까까, 빠빠, 야아우(야옹), 음, 아’ 이 정도지만, 내 말을 다 알아듣고 반응을 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이성과 핑퐁핑퐁 할 때 나오는 눈웃음이랄까. 가끔 손짓으로 가리키는 ‘아, 아!’ 요구사항을 못 알아들을 때도 있지만, 아이들과 80% 이상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 ‘도리도리, 곤지곤지, 짝짝궁, 만세, 사랑해요, 윙크’를 세트로 하고 하하하 웃고 있는 두 아이를 보고 있자면 정말이지 뭘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른 느낌이다. 이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
확실히 힘듦보다 기쁨이 큰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막막하고 두렵고 말할 수 없이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지금과 같은 마냥 이쁜 시기도 오는가 보다. ‘냐이 냐이 냐이’ 하며 저 멀리서 나를 보며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엄마는 무장해제된다. 아직도 둘이 같이 징징대고 엄마만 바라볼 때면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둘이 애교를 부리며 나를 쳐다볼 땐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다.
아티제에서의 아주 짧은 런치를 마치고 서점에 들어갔다. 자연스레 육아 서적 섹션을 돌아 아이들 장난감 코너로 갔다. 여유 있게 돌아볼 형편은 안 되니 충동구매하듯 아이들 스티커북과 색칠공부 스케치북, 퍼즐 맞추기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에서 한 명이 짜증을 부려 잠시 위기가 있었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자극적인 맛의 과자로 유인해 무사히 서점을 빠져나왔다.
4층의 아이들 의류 코너를 휘이 돌고 ‘씽고빙고’라는 감각적인 장난감 교구 구경도 좀 하다가 아차 하고 기저귀를 갈아주러 갔다. 역시나 둘 다 기저귀는 흥건. 긴장과 걱정에 기저귀 가는 것을 오래 잊고 있었다. 평일이라서인지 패밀리 화장실은 한산했고, 혼자서 둘 기저귀 가는 것쯤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나는 순차적으로 일을 해결했다. 여기서도 한 명이 좀 짜증을 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곧 집에 돌아갈 생각으로 1층으로 내려갔다. 그냥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바깥공기 한 번을 쐬어줘야지 라는 지극히 주관적인 엄마의 생각에 아이들은 인생 첫 칼바람을 맞았다.
사실 내 입장에서도 외투 지퍼를 올릴 만큼 춥긴 했다. 나오자마자 손과 코가 빨개진 애들을 데리고 다니며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이런 엄마의 욕심 같으니라고. 자갈밭에서 유모차 끌기도 힘들어서 곧장 실내로 들어왔다. 그래도 푸른 하늘 아래 빨간 회전목마는 예쁘고 또 예뻤다. 추위는 야속했지만 12월의 파란 하늘은 그저 고마웠다.
혼자 16개월 애둘을 데리고 나갔다 온 날 친구들은 ‘대박이다, 대단하다, 브라보 맘, 수퍼맘’ 이라고 했다.
사실 누군가의 칭찬을 듣기 위해 아이들을 데리고 나간 건 아니다. 오로지 나 자신이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누군가의 도움으로부터 자유로운 육아’를 하고 싶었다. 아이들이 신생아 때부터 쌍둥이기 때문에 늘 누군가의 도움과 참여, 관여를 받아왔다. 그게 내겐 크고 어려운 숙제고 얼른 해결해 버리고 싶은 과제였다. 나 혼자의 힘으로 아이 둘을 키울 수 있을 만큼 아이들이 빨리 크기를 바랐다. 그게 언제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매일같이 그날이 오길 간절히 바랐다.
용기를 내었더니 용기가 생겼다.
오늘 하루 11 시간 넘게 아이 둘을 혼자 보고 나니 사실 힘들고 또 힘들었지만, 확실히 예전만큼 힘들진 않았다. 부쩍 아이들이 커준 느낌이었다. 내가 또 큰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혼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단 용기가 생겼다. 역시 할까 말까 망설여질 땐 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