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에서 엄마는 죄인이 된다
감기로 아이들이 병원을 찾은 건 지난주 화요일이었다.
지난 주말부터 잦은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한 명은 콧물까지 나와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둘 다 상태가 심각하진 않아 보였고, 아무래도 월요일 아침 병원은 엄두가 안나 그날은 스킵하고 화요일에 부랴부랴 데리고 나갔다. 보통 병원 시간은 점심시간 전인 12시 정도를 선호하는 편이다. 오전에 어느 정도 급한 환자들은 다 왔다간 시간이라 늘 12시 즈음에는 병원이 한산하다. 아이 둘을 데리고 북적북적한 병원에 가는 것은 여간 고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항상 이 시간을 이용한다.
화요일 진료 때는 둘 다 목감기 정도로만 처방을 받아왔다. 그런데 3일 치 처방약으로도 기침이 가라앉지 않아 금요일 같은 시간대에 다시 병원 진료를 찾았다. 진찰을 하시더니 둘째는 상태가 호전되어 가고 있는 중이고, 첫째는 심해져서 항생제를 처방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똑같이 3일 치 약을 주셨고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 주말을 지나고도 낫지 않으면 다음 주 예정된 외출이 힘들 것 같아 주말 외출은 되도록 삼가고 낮잠도 집에서 충분히 재웠다. 다행히 첫째는 약을 먹일 땐 힘들었지만, 항생제 처방약으로 조금 나아진 기색이었다.
아이들의 증상이 완화되는 정도는 밤잠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른들도 코가 막히거나 기침이 나오면 잠을 설치게 마련인데, 몸이 아플 때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이 극심한 잠투정을 부린다. 아직 22개월 차인 말 못 하는 우리 아이들은 온갖 울음과 짜증과 고함으로 불편함을 표시한다. 잠을 자주 깨는 것은 물론이고, 자다 깸에 따른 신경질적인 울음이 동반된다. 이런 22개월 차 아이 둘을 데리고 자는 일은 정말 죽을 맛이다. 평소 잠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라 쌍둥이 육아에 다행힌 체질이라 위로해 보지만, 이런 나도 밤잠은 정말 괴롭다. 둘이 자다가 한 번씩만 깨도 난 밤잠을 두 번 이상 깨야 한다. 만약 두 아이가 각각 두 번씩 깬다고 하면 나는 고작 6시간을 자면서 네 번을 자다 깨야하는 상황이 온다. 매일매일 인간의 한계와 싸우는 느낌 반, 내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 반이다. 하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낮에 애둘을 돌봐야 하는 상황은 정말 극한이다. 이 어려운걸 한다 또 엄마라는 존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 질 낮은 6시간 정도의 수면시간으로도 버티던 나인데, 월요일 새벽은 정말 극한의 극한이었다. 아픈 탓에 낮잠을 너무 충분히 잔 두 아이는 밤잠을 일찍 자길 거부해 11시가 넘어 잠이 들었다. 심지어 감기 증상이 호전되다 다시 악화되기 시작한 둘째는 잠들기 전부터 엄청난 짜증과 떼를 부렸다. (엄마 기준의 표현이다. 중립적 표현으로 아이는 고통을 호소했다 정도가 되겠다.) 둘째도 항생제 처방을 받았었어야 돼.. 하는 후회와 얘 진짜 왜 이래 세게 울면 목이 더 아프다고.. 하는 화가 밀려왔다. 아이들이 잠들고도 새벽 2시까진 개인 시간을 보내느라 안 자고 있던 나는 2시부터 계속되는 둘째의 자다 깨다 울다의 반복에 미칠 지경이었다.
둘째가 자다 깨 세게 울면 잘 자고 있는 첫째가 깰까 봐 노심초사했다. ‘무서운 꿈 꿨어? 다시 자보자 이리 와~’, ‘꿈에 호랑이 나왔어?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잖아~’, ‘아이구 우리애기 어디가 아팠어 아프니 잠들기 힘들지.’ 레퍼토리를 반복하면 서너 번은 달랬던 것 같다. 그러다가 둘째의 깨는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나는 잠들 수가 없는 상태에서 첫째의 수면의 질 까지 생각하다 보니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파서인걸 뻔히 알면서도 자주 깨는 둘째가 원망스럽고 밉기까지 했다. 애가 세게 울면서 깨면 옆방의 부모님도 깨실 것 같고 이만저만 눈치가 보이는 게 아니었다. 이런 엄마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둘째는 동이 틀 때까지 깊은 잠을 자지 못했다.
달래다 지쳐 나는 이제 화만 내고 있었고 둘째는 내가 화내는 소리에 더 우는 것 같았다. 결국 둘째는 울다가 우유 먹은 것을 다 토하고 말았다. 휴우... 올 것이 왔구나. 의사 선생님은 목에 가래가 있고 기침을 세게 하면 토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셨던 것 같다. 후우.. 원인이 뭐가 됐든 시간이 어떻게 됐든 지금은 토를 빨리 치우는 게 우선이었다. 다행히도(?) 둘째가 토하는 순간에 바로 앞에서 나는 한 손으로 토를 받아 냈다. 다행인 게 맞다. 내 손에 많이 묻었지만 침대 시트에 많이 묻지 않아 치우는 시간이 단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우는 애를 뒤로하고 화장실로 가 내 손부터 재빠르게 닦고 방으로 가서 나머지 잔여물들을 치웠다. 첫째를 안 깨우고 싶었지만, 둘째가 토하는 순간 불가능한 일이 되었다. 또 반대의 경우도 여럿 있었기 때문에(첫째가 자다가 토하고 둘째가 타의에 의해 잠에서 깬 경우) 첫째의 표정은 그리 놀라 보이지도 않았다. 휴우.. 토할 때까지 우는 아이들이 원망스러웠지만 그때까지 다그친 내게도 책임은 있었다.
예민하지 않은 엄마이고 싶지만 밤 시간, 새벽 시간에는 그게 잘 되지 않는다. 엄마도 사람이라 기본적인 내 수면욕구가 방해되는 시간엔 나도 모르게 날이 선다. 안타깝게도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는 나이다. 이 힘듦은 시간이 지나야 한다는 걸 나만이 알고 있다. 나름 건강한 쌍둥이라고 자부하지만, 아이들은 아프지 않고 클 수는 없다. 오늘은 그걸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 날이었다.
새벽 6시경 토한 둘째를 다독였다. 아이는 자기 옆에 와서 누우라고 손짓을 했다.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했다. 미안함에 솟구친 눈물이었다. 아니 아직 2살도 되지 않은 아픈 아이를 이 새벽어둠에 다그치고 화내는 나란 엄마는 무얼까 하는 자책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나는 아이의 얼굴에 내 우는 얼굴을 파묻어 너의 아픔, 너의 눈물까지 다 내 몫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으로 아이를 토닥였다. 그렇게 기침하고 목놓아 울던 아이는 엄마가 자기 곁에서 안아주자 서서히 흑흑거림을 멈추고 잠이 들었다. 첫째도 내 살갗으로 다가와 같이 잠을 청했다. 새벽 어스름에 다 같이 안도한 듯한 공기가 흐르며 나도 서서히 잠이 든 것 같다.
그렇게 뒤척였는데도 둘째는 첫째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마 이 아이가 엄말 닮아 잠이 없는 아이구나, 싶었다. 6시에 겨우 잠든 나는 아침에 4시간 반 정도를 잔 것 같다. 그걸로 오늘 하루를 버텨야 하는 거다. 전업맘이 되고 월요병에 대한 부담은 줄었으나, 오늘은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가야 하는 부담이 있는 날이었다. 친정 엄마도 오전 일정이 있으셔서 혼자 애 둘을 준비시키고 나도 대충이라도 씻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아이들 아침까지는 먹여 주셔서 부랴부랴 내 아침으로 햄치즈 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욱여넣었다. 오후 진료를 갈까도 잠시 생각했지만, 낮잠 시간이랑도 겹치고 오늘 하루가 지체될 것 같아 빠듯하더라도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했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 탓에 내 머리 말리는 것을 생략했는데도, 짐 싸고 아이 둘 옷 입히고 삐삐머리 해 주고 중간중간 둘 요구사항 들어주고 비눗방울 놀이까지 챙기고 하다 보니 병원에 도착한 시간은 12:45분이었다.
점심시간이 1시부터니까 15분 전에 도착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순간 착각이란 걸 너무 빨리 알려주셨다. 오늘 오전 진료는 끝났다고......
‘쌍둥이라 준비 시간이 길어졌어요, 애가 어제 너무 아파서 밤에 잠을 못 자고 늦잠을 자느라 늦었어요, 아직 1시 아니잖아요 이런 게 어딨 어요...’라고 속으로 외쳤지만, 잽싸게 오후 진료 명단에 이름을 적어두고 2시까지 올게요 하며 바로 병원을 나왔다. 날씨는 주말 내내 살랑이던 봄바람이 하루사이에 푹푹 찌는 여름 햇살로 바뀐 것 같았다.
어쨌거나 병원 끝나고 놀이터에 갈 계획이었으니 순서가 바뀐 것으로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병원에서 가장 가까운 동네 놀이터로 향했다. 부랴부랴 나오느라 애들 간식을 제대로 안 가져 나와서 오아시스 마켓에 들러 사과주스 2, 샤인머스캣 주스 2, 새우짱 과자를 급히 샀다. 놀이터는 1/10 정도만 그늘이고 나머지는 다 땡볕이었다. 선크림을 바르긴 했으나 땡볕에서 아이 둘을 볼 자신이 없어 챙겨 나온 비눗방울 총을 너무 빨리 꺼냈다. 내가 비눗방울을 쏘면서 술래잡기 놀이도 하려고 했으나 호기심 많은 첫째에게 바로 뺏겨 버렸다. 첫째는 어제 터득한 방아쇠 버튼 고정을 요청했고, 나는 소리 지르기 전에 재빠르게 이에 응했다. 다행히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라 놀이터에 아이들도 좀 있었고, 초딩 언니들이 가끔 다가와 비눗방울 놀이에 흥미를 가져 주었다. 그치만 1시간의 9/10 정도는 거의 내가 놀아 주어야 했다. 어제 4시간 반 잔 것과는 다르게 극강의 E성향인 쌍둥이 엄마는 텐션이 높아져 잘 놀아준 것 같다. 내 생각이다.
10분 전 2시까지 들어가려고 1:40분쯤 놀이터를 빠져나왔다. 사실 더워서 더 이상 놀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병원에는 정확히 1:50분에 도착했는데, 우리 말고도 대기를 걸어놓은 (오전 진료에서 밀린) 환자가 대여섯 팀은 있는 것 같았다. 1시간 시간 때우느라 힘들긴 했지만, 2시 진료를 왔어도 꽤 오래 기다렸겠다는 생각에 다행이야 하며 대기의자에 앉았다. 만약 이때 바로 열 재고 들어갔으면 문제없었겠지만, 2시까지는 아직 10분이나 남았고 오후 진료 첫 팀이 우리가 아닌 게 문제였다. 아이들 낮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병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고, 40분간을 뛰놀아 살짝 둘 다 피곤한 상태였다. 그래도 5분 정도는 병원에 있는 아동용 책 세 권으로 시간도 때우고 핑크퐁 비타민도 주고 병원에 있는 물도 주고 흘린 물도 닦고 뱉어버린 비타민도 치우고 했는데도 아직 우리 차례는 아닌 것 같았다.
하아. 이때부터 전쟁이 시작된 것 같다. 둘 다 피곤한 상태에 가뜩이나 기다림이란 걸 22개월 아이들한테 하라고 하니 놀 건 없고 주변은 조용하고 낯설고.. 첫째가 둘째의 무릎을 탁 쳤고, 둘째는 이게 기분이 나빴는지 첫째의 얼굴을 확 때렸다. 종종 있는 일이어서 중재하고 간식으로 달래거나 한 명을 유모차에서 빼내면 소강되곤 한다. 하지만 우린 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태라 어딜 갈 수도 없었고 실내라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크게만 들렸다. 급한 대로 복도로 유모차를 급히 빼내 울음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복도는 왜 웅웅 거리는 지 울음소리는 더 크게만 들렸다. 다행히 첫째는 울음은 그쳤는데, 더 졸리고 더 아픈 것 같은 둘째의 울음이 멎질 않았다. 밤에도 낮에도 둘째 때문에 미칠 노릇이었다. 난 왜 이 더운 날 니트 반팔티를 입고 나와서는.. 하는 쓸데없는 자책과 화끈거림과 미안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둘째를 안고 어르고 달래고 주의를 줘도 울음은 그치질 않았다. 마치 나는 정수리와 등에도 눈이 달렸는지 다른 대기하는 사람들의 눈초리와 시선에 쏘임을 당하는 기분이었다.
감사하게도 그 정신없는 와중에 아이들 진정시키라고 다른 아이의 엄마가 와서 웨하스 두 개도 건네주시고, 어떤 할머니가 오셔서 둘째를 달래 보겠다고 하시기도 했다. 엄마 품에서 안 달래지는 아이가 낯선 할머니 품에서 진정될 리 만무하겠지만, 엄마 힘들다고 아가야 도와주라고 하시는 말씀에 울컥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아이가 우는 게 엄마 죄는 아니지만 그 순간만큼은 그 공간에서 내가 죄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이 둘이 같이 울어대니 안 쳐다보는 사람은 없었고, 한 아이는 진정이 안 되고 더 크게 울어대니 다들 우리만 주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진땀도 이런 진땀이 없었다. 땀과 눈물샘은 같은 곳에서 나온다던데 땀만큼은 아니지만 눈물도 딱 그 1/10 만큼 고였다가 들어갔던 것 같다. 울고 싶었지만 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
휴우. 아수라장 같았던 복도에서의 상황은 간호사 두 분이 오셔서 진료실로 아이들 데려가는 걸 도와주셔서 종료되었다. 내가 안고 있던 둘째는 그대로 안고 들어가고, 내가 손을 잡고 들어가려던 첫째는 유모차에서 내려오지 않겠다고 우겨 아마 간호사 두 분이 울려서 내려 안고 들어오신 것 같다. 의사 분도 안에서 이 큰 울음소리를 못 들었을 리 없었다. 나는 심해진 둘째의 증상부터 설명하고 첫째의 증상도 설명하고 둘의 항생제와 진해거담제& 기침감기약, 비염& 콧물약, 위장운동조절 및 진경제 등등을 처방받아 왔다. 이번 감기에만 세 번째 병원 진찰이었고, 언제나처럼 아비규환 속의 진료였고, 진료가 끝난 후 나는 마스크도 하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아마 아까 복도에서 너무 더워 마스크를 벗었던 채로 진료실에 들어갔던 것 같다.
아이들은 어느새 둘 다 선생님이 주신 과자로 진정되어 유유히 혼자 걸어서 유모차로 가고 있었다. 귀신같이 진료가 끝난 것을 아는 모양이었다. 진료실을 나오니 아까보다는 덜 따가운 시선들이 혼재해 있었다. 다시 아이들이 싸움으로 흥분하는 상황이 오지 않게 재빠르게 결제를 하고 처방전을 받아가지고 나왔다. 마지막 관문인 약국 대기는 처방전을 내고 아이들과 약국 바깥에서 기다리는 전략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울어도 실내보다는 실외가 좀 덜 미안해지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울음소리가 좀 멀리 퍼지는 효과도 있고.
아이들 데리고 병원에 오가면서 오늘처럼 진땀 흘린 적은 처음이다. 아이들 컨디션 맞춰 다녀갔던 덕분이기도 한 게 제일 큰 것 같다. 그래서 혼자서 아이 둘을 데리고 거뜬히 병원 왔다 갔다 한다고 말할 수 있었는데... 오늘부터 난 살짝 쫄보가 된 것 같다. 이제 병원은 꼭 친정엄마나 남편과 함께 방문해야 할 것 같다.
긴 인생을 통틀어 나의 지금 이 30대와 아이들의 22개월은 정말 소중한 다시 오지 않을 순간이란 걸 깨닫는 순간 하루하루가 너무 귀하다. 아이들이 매일매일 커가는 하루가 지나는 게 아쉽고 지금보다 더 아가였을 때 사진을 보면 뭉클하고 언제 컸나 싶어 하루하루가 아쉽다. 내 평생 처음이자 마지막일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치만, 쌍둥이 엄마도 너무 평범한 사람인지라 오늘 같은 날은 아이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다. 얼른 커서 이렇게 다른 사람 눈치는 안 보게 해줬으면 싶고, 얼른 면역력을 키워서 이렇게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엄마가 안 놀아줘도 둘이 오손도손하며 놀았으면 좋겠다. 오늘만큼은 정말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