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을 크게 볶음밥을 좋아하는 사람과, 안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내가 어디 쪽에 속해야 하는 사람인지 결정하기 어렵다. 넓은 운동장에서 진행하는 O/X 퀴즈, 두 사람이 잡고 있는 가운데 줄에서 나는 가까스로 외줄타기를 하고 있다. 사실 고등학교 때, 전교생을 대상으로 웅장한 O/X 퀴즈가 개최된 적이 있었는데, (질문 자체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는 마음 속으로 정답을 O로 골랐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X로 이동하는 것을 바라보며 상류에서 하류로 흐르는 강처럼 X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제 길을 찾아가는 연어가 아니었다. 아직 초반 문제였기에 대다수가 선택하는 쪽이 정답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산란을 통해 대를 이어나가는 것은 연어의 성취다. O를 택한 극소수의 사람들은 정답의 맛을 봤고,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답 처리가 되어 쓸쓸히 자리로 돌아가야 했다. 어느새 10년도 지난 일이지만 나는 그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러고는 다소 아쉬워한다. 그 생각이 들때면 일단 생각한대로 행동할 수록 나중에 아쉬울 일이 없어진다-는 교훈을 스스로에게 주입한다.
아무튼 나는 원래 볶음밥을 딱히 좋아하지 않는 성격임에도 그런 말이 무색하게 최근들어서 성실하게 위장에 볶음밥을 채워넣고 있다. 일단 볶음밥의 '요리'라기 보다 '조리'에 가까운 간단한 방식과, 괴상하거나 상한 재료를 섞지 않는 이상 어느 정도의 맛을 보장한다는 점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후라이팬을 들고, 칼로 양파를 썰고, 밥을 푸는 행위를 통해 레토르트, 혹은 패스트 푸드를 먹고 있지 않다는 뿌듯함을 쟁취하고 있는 것이다. 볶음밥이라는 메뉴는 나처럼 혼자 자취를 하고 있는 남자에게는 만나와 같은 축복의 음식이다. 엉성한 요리 실력을 달궈진 기름과 각종 재료들이 잘 숨겨주기 때문이다.
자고로 요리란 '재료의 신선도'라든가, '불의 세기', '조리 시간'처럼 결과만큼이나 과정에 있어서 상당한 기준이 요구되는 일이지만, 작은 테이블에 앉아 혼자 배를 채우는 나같은 가여운 인간에게는 그런 기준이 엄격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마치 엄격한 백신 거리두기가 일부 집회에서 만큼은 느슨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나라고 최상의 재료들로 만든 초일류 요리를 마다하는 건 아니지만 퇴근 후의 저녁 식사는 어찌됐건 적당한 것들로 배를 느슨하게 채우면 그만이다. 이따금 계란이나 스파게티 면을 구매하러 간 마트에서 운좋게 아사히 맥주를 보는 날에는 맥주를 사서 곁들인다. 이 정도로 충분하다. 회사의 몇몇 사람은 단지 내가 퇴근하고 저녁 식사를 한다는 사실만으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퇴근하고 그게 가능한가요?" 그럼 나는 대답한다. "누구나 만족시킬 만큼 맛있다고는 못해요."라고. 물론 가까스로 속으로 삼키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볶음밥의 요리법은 너무나 간단하다. 너무 간단해서 레시피를 검색할 필요도 없을 정도다.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는 행위만으로 이미 요리의 절반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파기름이니, 뭐니, 드라마틱하게 맛이 좋아질 거라는 기대감도 내게는 딱히 없다. 볶음밥은 그저 볶음밥일 뿐이다. 어느덧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회사 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