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장례식

미래의 장례예배 디자인

by Goodpoem

<본 글은 미래에 대해 써본 글입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다. 며칠전부터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산책을 꾸준히 하고 있지만 무언가 다른 느낌이다. 신체의 활력이 줄어들고, 장기의 기능이 원활하지 않다.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것이다. 하지만 마지막 날까지 무기력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다. 젊은 날, 기획자로 활동하던 나를 떠올리며 장례예배를 디자인 해본다.


작은 바램으로 임종은 가족들과 집에서 오붓하게, 장례식은 교회에서 하고 싶다. 병원에서의 임종과 장례식을 수도 없이 보았는데, 사각형으로 잘라 놓은 켠켠히 작은 방 속 국화 밭에 내 사진을 두고 싶지 않다. 예배당 앞쪽으로, 환한 웃음이 있는 나의 사진을 이젤 위에 두어야 겠다. 몇살 때 사진이 좋을까? 교회가 워낙 시골에 위치해 있어서 찾는 분들이 불편하겠지만, 교외로 바람 쐬는것도 소중한 시간일 것이다.


예배전 백그라운드 음악을 생각해 본다. 내가 좋아하던 Gregory Porter음악을 틀어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싶지만, 아무래도 목사님이 싫어하실 것 같다. 교회 분위기와 맞게 세련되게 편곡된 찬송가를 틀어 놓아야 겠다. 나의 주요 약력에 대해서는 읊어주는 그런 판에 박힌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남겨진 이들을 위한 메시지는 목사님께서 잘 전해주시리라 믿는다. 또 예배에 무엇이 필요할까? 특송을 넣어야 겠다.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라는 찬송가를 힘차게 부르도록 가족들을 독려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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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겪었던 임종의 순간에는 늘 찬송가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S와 함께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분들이 모여계신 '샘물의집' 이라는 곳에 가서 3일 정도 봉사를 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분께 밥을 떠먹여 드려야 하는것이 나의 일이 있었는데, 너무 어려서 그랬는지 그 광경을 차마 볼 수 없어 방을 나와버렸다. 떠올려보면 죄송한 마음이다. 그 짧았던 봉사 기간 중에도 세상을 떠나신 분도 있었다. 내 기억 속 첫 장례식이었는데, 그 때 나는 찬송가 반주자로 투입되었고, 해가 지도록 여러곡을 불렀었다. 30대 초반, 켄터베리에서 지낼 당시 임종을 앞둔 Y의 곁을 친구 어시스턴트들과 지켰다. 막상 무얼 해야 할지 몰라 나는 우리말로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라는 찬송가를 여러번 반복해서 불렀는데, 그때 Y는 하나님 곁으로 갔다. 서른 중반, 나를 많이 아껴주던 외삼촌이 곧 떠나실것 같다는 말에 병원을 찾았다. 오랜만에 뵈었지만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외삼촌이 좋아하던 찬양 '너 걱정 근심 말아라'를 이모와 함께 수십번 불렀다. 우리 마음에 담대함이 필요한 순간, 클래식도 재즈도 생각나지 않았다. 찬송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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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공연 기획을 하면서 갖가지 인쇄물을 많이 만들어서 인지, 내 장례 예배 때의 순서지도 신경 쓰인다. 해외에서 수입한 모조지를 쓰고 싶은데, 아무래도 심플하게 가야하니까 몽블랑250g 정도가 괜찮을것 같다. 디자인은 젊은 시절 부터 나와 호흡을 맞춰온 최스타에게 맡길 생각인데, 그녀도 이제 나이가 많아 어떻게 만들어 줄지는 모르겠다. 첫 표지는 깔끔하게 감사예배 타이틀로 가고, 내지에는 내가 가장 행복했던 시절의 사진들을 컬러로 넣을 생각이다. 20대 때 ABC캠프를 정복하고 K와 찍었던 사진, 30대 후반. 사랑하는 엄마 아빠와 이태리를 여행할때 두오모에 올라서 찍은 사진을 넣고, 그 밑에 우리 아들 딸과 남편과 찍었던 50대 때의 그나마 예뻤던 사진, 그리고 5년전 남편과 둘이 아이슬란드에 가서 찍은 사진 사진을 넣어야 겠다. 사진 옆에는 내가 가장 좋아하던 성경 구절을 깔끔하게 넣고, 마지막 페이지에는 남은 생을 살아갈 가족들과 친구들을 위한 짧고 간결한 편지를 넣을 것이다.





식사가 좀 걱정인데, 판에 박힌 우거지 해장국은 싫다. 내가 좋아하던 뜨끈한 갈비탕을 대접해야겠다. 예배를 찾아주신 분들께 무언가 선물을 하고 싶은데.. 아! 동네에서 가장 맛있는 망개떡을 주문해야 겠다. 젊은 시절 고마웠던 마음을 어른들께 표현했을 때 늘 망개떡을 준비했었다. 침대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만들게된 작은 그림엽서도 함께 넣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겠다.


이정도 플랜이면 가족들도 나의 장례예배를 준비하며 슬픔을 느낄 겨를이 없을 것 같다. 이제는 세상에서 남겨진 시간까지 또렷한 정신을 가지고, 나의 삶을 정리하는것이 필요하다. 두려움 보다는 감사함으로,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매일 사랑한다고 표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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