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ABC캠프 정복기
리튼바이의 글감 주제에 아주 충실하여.
내 기억 속에 자리잡은 가장 눈부신 '첫 만남, 첫 기억은' 무엇이었을지 떠올려 본다.
혹자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 때 그 사람과의 강렬했던 첫 만남을 묘사하며 ‘그 사람의 뒤에 후광이 비쳤다. 빛이 났다’ 묘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그 빛이 설렘과 사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런 빛을 본 적이 있었다.
대학 졸업 후 인턴 생활을 마치고 다음 스텝을 고민하며 서점에 갔다. 내 미래에 대한 답이 있을지 여러 책을 뒤적이다가 히말라야 산맥의 그림을 보았는데, 그곳에 가야만 할 것 같은 생각에 사로잡혔다. 맹목적인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고 어느새 나는 트래킹을 준비하고 있었다.
내가 곧 떠날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내 친구 Mi는 나에게 동행할 수 없는지 물었다. 강남구 토박이의 우아한 말투를 가지고, 예중-예고-음대 졸업이라는 정석을 걸어온 그녀에게는 ‘깔끔’과 ‘까다로움’이 스며있지 않을지 생각했다. 혹시 내 자유로운 여행에 그 요소들이 걸림돌이 되지 않을지.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것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린 동행이 되기로 했다. 이후 여행에서 Mi는 샤워 할때 ‘핫 워터’만 찾는 나와는 달리 찬 물도, 적응하기 어려운 현지 음식도, 숙소의 지저분함도 개의치 않은채 여행에 최적화된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여행을 준비하며 Mi와 나는 관련 카페를 통해 정보를 얻었다. 그리고 우연히 우리와 입국일이 맞는 사람을 발견했다. 입사를 앞두고 연수에 들어가기 전 혼자 트래킹을 떠난다는 K, 내 친구와 같은 성을 가졌다. 네이트온으로 비자, 루트 등에 대해 간단한 이야기를 나눴다. 정확히 약속 한 것은 아니었지만 네팔 카트만두의 한인 민박이 많지 않았기에 그곳에서 만날 수도 있으리라 작은 기대를 가졌다.
우여곡절 끝에 현지 숙소에 도착 했다. 인도/네팔 여행이 늘 그렇듯. 공항에 도착했을때 말을 거는 무수한 호객 기사들을 뒤로하고, 우린 당당히 택시를 잡는 멋진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택시비를 후려치며 흥정을 해야 하는것도, 중앙선을 넘는것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듯 과격히 운전하는 기사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치 않는것이 쉽지 만은 않았다. 자정이 다 되어서 도착한 숙소의 청결 상태는 최악이었고 게다가 곧 정전이었다. 샤워도 제대로 하지 못한 우리는 서둘러 잠을 청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먹으러 야외의 작은 테이블 쪽으로 걸어갔다. 맞은편에 한국 남자가 보였다. 내가 네이트온으로 이야기를 나눴던 그 사람일까, 주저하고 있을 때 Mi가 먼저 말을 걸었다 “K씨 아니세요?”, 환한 미소를 머금은 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K어깨 너머로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 장면을 잊을 수가 없다. 험난한 과정을 거치고 도착한 숙소에서 한국인을 만난 안도감이었을까, 단지 그날 햇살이 좋았던 것이었을까. 아침의 기억이 서로 좋았는지 보름 동안 함께 여행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라고는 그저 이른 아침에 걷고, 짜이를 마시고, 점심을 먹고, 또 걷고, 다다른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고, 무수한 하늘의 별을 감격하고, 잠이 드는 것이었다. 여행 내내 김동률의 모놀로그 앨범을 수도 없이 들었고, 소진되어가는 초코바를 사이 좋게 나누어 먹기도 했다. 우린 산에서 내려와 몇일을 함께 한 후 헤어졌다. 눈물을 훔쳤다. 한국에 와서 우리 셋은 가끔 만남을 가졌지만 K는 결혼 이후 그 착실 함을 증명하듯 우리와의 만남을 지속하지 않았다. 서운했지만 K답게 현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이후로 환한 웃음과 함께 햇살의 핀조명을 받는 사람을 만나보지 못했다.
사실 트래킹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K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발견 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유로웠고, 자신감 있어 보였으며 여유로움과 따뜻함이 묻어 있었다. 각자의 이야기, 목표를 가지고 히말라야에 모여들었고, 베이스캠프를 정복한 우리는 특별한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이 되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다시 그들을 재회했을 때 우리는 기억에 의존하며 여행의 이야기를 늘어놨지만, 결혼생활. 직장 생활에 적응해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되어가는것 같았다. 각자의 모습 뒤에 비춰진 특별했던 빛은 그곳에서의 기억처럼 옅어져갔다.
글을 쓰다가 고개를 들어본다. 스타벅스의 큰 창위로 햇살이 쏟아진다. 하지만 그때의 기억처럼 강렬하고 따뜻한 느낌을 내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스마트폰에, 노트북에 집중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생각해 본다. 그때의 느낌이 그립다면 이제 내가 그런 그 따뜻함을 내뿜는 사람이 될수는 없을까.
자유롭고 따뜻한 모습으로 지금의 순간을 풍성히 누리는 사람. . 다른 이들에게도 그 특별함을 나눠줄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