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생일, 페이스북을 통해 나의 감정을 공개적으로 표현했다.
'I get lost'
어릴 적 상상하던 쿨하고 완벽한 나이가 주는 ‘서른’의 느낌은 온데간데 없었다.
실업급여는 떨어져가고, 준비하던 시험은 낙방의 연속이었으며, 이별로 인한 여파까지.
인생의 계획이 산산이 조각나면서 나는 마지막 탈출구로
영국의 한 공동체에 Assistant로 지원하고있었다.
평소 장애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고, 테레사 수녀처럼 순수한 봉사 정신으로 무장된
나는 더더욱 아니었다. 그저 한국을 떠나 내 돈을 드리지 않고 지낼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도착한 영국의 작은도시 Canterbury, 담당자 리즈가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있었다.
하지만 “Hello”이후,
영국 악센트를 가진 그녀의 말은 내귀를 스쳐가기시작했다. 불길했다.
그 불길한 느낌은 기적처럼 변하지 않았고 일년간 지속되었다.
Rainbow house의 2층, 보라색 페인트가 칠해진 방에 짐을풀었다.
벽면을 뒤덮고 있는 무지개는 너무 과하게 느껴졌고,
시험 준비로 책상에 민감한 나에게 드라마 ‘Downton Abbey’에나 나올법한
앤틱한 화장대를 책상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은 실망스러웠다.
하우스 리더인 헬렌은 내가 음악을 전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3옥타브짜리 전자 피아노를 가져다 주며 해맑게 멋진 연주를 기대한다고 했다.
사람도, 공간도 어느것 하나 나에게 편한함을 주지 못했다.
“지적 장애인과의 공동체 생활”
거창했던 이상과는 달리, 호스피스 간호사와도 흡사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명랑하고 예쁜 소녀였지만, 이제 침대에서 움직일 수 없는 Y의 삼시 세끼 식사를 떠먹여 주었고,
매일 아침 그녀의 몸을 리프트로 들어올려 씻겨주어야 했으며
코를 막고 더러워진 시트를 간 후 목욕을 시켜줘야 M의 모닝 루틴도 쉽지 않았다.
그리고 두 달 뒤, 호주에서 새로운 어시스턴트(Assistant)가 들어왔고,
나는 선배 어시스턴트로써의 특권을 가지고 꼭대기 층으로 방을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두려움, 가장 큰 기쁨을 동시에 주었던 그 작은 옥탑방을 지금 떠올려본다.
다시 기억을 꺼내보면 조금 더 오랫동안 그 느낌을 간직 할 수 있지 않을까.
새로운 방은 보라색 방보다 훨씬 작았다. 2평 남짓의 방이어서 문을 닫으면 숨일 막힐 것 같아
방문을 항상 열어놓아야 했다. 창문은 커튼도 없었고, 바람이 많이 들어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장애인분들(Co-Members)과 분리된 층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굴곡을 가진 천장의 안락함이 좋았다.
그 작은 옥탑방에서 나는, 15명을 위해 요리 해야하는 부담감에 밤잠을 설치며 레시피를 찾았고,
아침에 일어나면 욕실의 샤워 부스 소리에 집중하며 언제 그곳을 점령할 수 있을지 청각을 곤두세웠다.
임종을 앞둔 Y를 밤새 지키고 돌아와 삶과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기도 했으며,
영국에서 마저 낙방하고 있는 영어시험에 대한 스트레스는 날이 갈 수록 심해졌다.
코어 멤버 D와 대치상태가 되고 급기야 그녀로 부터 생애 처음으로 뺨을 가격 당했을때
밤새 눈물로 배갯잎을 적셨다.
(몇주의 노력 끝에 관계는 나아져, 한국으로 떠날때 D는 나를 가장 따뜻하게 주었다.)
하지만 그 옥탑방에서 나는 두려움만 느끼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 두번씩 진행되는 파티를 위해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귀걸이도 달아보며
작은 거울을 열심히 들여다 보기도 했고,
일년에 한번있는 내셔널 개더링 반주자로 섭외되어 피아노를 연습하기도 했다.
에티오피아 출신 옆방 절툰과 한국을 사랑하는 독일 소녀 타비아도 가끔 내방을 들러
‘내짝은 어디있을까’,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당장 답이 없는 이야기를 공감하며 오랫 동안 시간을 함께했으며,
부모님이 먼 한국에서 방문해 주셨을때에는 침대 밖에 앉을 공간이 없어 죄송스러웠지만
가장 따듯한 시간을 보낼수 있었다.
그곳에서의 만난 사람들을 잠시 떠올려본다.
나를 만나면 늘 ‘How are you?’ 안부를 물어봐 주었던 따뜻한 P
(그럼 나는 진지하게 정말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자문해보았다.)
풍선과 컴퓨터를 좋아하는 해피맨 D,
자동차와 잡지를 좋아하고, 늘 형을 기다렸던 H,
프랑스 공동체 에서 만나 결혼한 존 폴과 헬렌, 그들의 결혼식 당시 헨렌의 드레스는 10유로,
하객들은 거의 장애인 친구들이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25년 동안 일한 에디는 아직도 코어멤버가 이야기 할 때면 아직도
누구보다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다.
시간이 흘렀고, 나는 작지만 거실이 있는 나만의 전세 집에서
우아하게 커피를 마시며 초록색 소파 위에 앉아보았다.
15명을 먹일 요리 걱정도,
오늘은 내 영어가 잘 나올까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된다
코어 멤버에게 음식을 떠먹이고, 목욕을 시키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밀려오는 그리움과 외로움은 무엇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