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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sky Dec 23. 2021

읽고, 쓰고, 말하는 세계

「책, 이게 뭐라고」를 읽고

책을 정말 오래간만에 읽었다. 업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독서가 아닌, 순수하게 독서를 위한 독서는 정말 오래간만이었다. 책을 붙잡고 있는 내내, 읽고, 쓰고, 말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게 했던 책. 누가 선정했는지 참 탁월한 선택이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 책을 즐겨 읽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다. 왜인지 그런 사람들은 말도  우아하다. 심지어 목소리까지. 이른바 말을 잘하는 달변가들의 대화는 그냥 쉽게 지나치게 되지만, 글을 쓰는 작가들의 말은  기울여 듣게 된다. 아마도 나는 무의식적으로, 읽기와 쓰기가 말하기와 듣기보다 우월한 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내게 글을 쓰는 사람은 ‘지식인 위치를 지닌다.


그럼에도 작가는 읽거나 듣는 행위 자체가 더 우월한 행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글을 쓰고 읽는 이에 대해 동경했던 것은 무엇이라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안에 담긴 사유를 높이 사지 않았나 싶다. 깊은 고찰과 사유. 대개, 묵직한 사유는 글로 표현되는 편이 많다. 일상생활 중, 그러한 깊이 있는 고찰들을 꺼내 놓기에는 삶이 너무나도 치열하고, 말은 찰나의 순간으로 지나간다. 그래서 결국 사유는 읽고 쓰는 세계에 머물게 된다.


읽고 쓰는 세계가, 듣고 말하는 세계와 합치되는 순간이 있다. 읽고 쓴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순간이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하거나, 내가 써 내려간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때가 그렇다. 그리고 그럴 때에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신중해진다. 대화의 소재가 달라진다. 비로소 말에 무게감이 실리는 순간이다. 그간 숨겨왔던 내 민낯이 드러나기에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작가가 조망한 시선과 다소 다른 관점에서,  '읽고 쓰면 더 좋은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근본적으로 동의한다. 적어도 생각하는 것과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가는 것. 알고 있는 세계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 한 사람의 세계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이 책이다. 나의 널브러져 있는 사고를 효과적으로 정리할 수 있는 방법 또한 글쓰기이다. 자꾸만 읽고 쓰다 보면 나의 내면을 차곡차곡 정리하게 된다. 물론, 의미 없는 활자들이 나열되지 않는 글이라는 전제가 붙겠다.


끝으로,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는 건 가능한가?’라는 작가의 물음에 덧붙여 본다. 모든 책을 다 읽지는 못하겠으나, 가벼운 알코올과 곁들이는 책은 그 자체로 근사한 순간이다.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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