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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sky Sep 10. 2023

삶을 여행하는 법

일을 하지 않고 돈이 있으면 된다

올해 여행을 많이 다녔다.

양양, 구례, 강원, 여수부터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일본까지. 그리고 2주 뒤에는 필리핀 보홀에 간다. 아직 9월임을 감안하면 월에 1번은 여행을 하는 셈이다. 내게 여행은 그리 무거운 존재가 아니라 그냥 갈 수 있으면 가고는 한다. 돈이 있고 시간이 있으면 간다.


여행은 대체로 다 좋지만, 모든 여행이 다 100점인 것은 아니다.


나는 관광지를 돌며 유명한 곳만 도는 여행을 싫어한다. '여기에 가봤다'라는 말을 위한 행보는 싫다. 사진만을 남기기 위한 여행은 싫다. 물론 사진을 보면 그때의 그 감정을 언제고 다시 불러올 수는 있다. 그러나 사진을 위해 그 시간이 달아나는 여행은 별로다. 어느 정도의 계획은 필요하나 그때그때 내키는 곳에 가는 여행이 좋다. 가려던 식당의 웨이팅이 너무 길다면 포기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 분명 이런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도 꽤 많을 것이다. 그래서 여행 스타일이 잘 맞지 않는 사람과의 여행은 곤욕이다. 차라리 혼자 하는 여행이 훨씬 즐겁다. 그럼에도 반드시 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마음을 내려놓는다. 가족여행 같은 것들 말이다. 스스로 최면을 거는 편이 좋다. 이것은 여행이 아닌 행사라고!


나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여행을 좋아한다. 낯선 것들을 경험하면 시간은 느리게 흐른다. 때로는 정보가 너무 많지 않은 것이 오히려 낫다. 블로그에서 애써 찾아본 식당보다 우연히 찾은 작은 가게가 좋다. 기대가 없으니 맛있게 먹을 확률도 높다. 유명한 관광지를 가지 않고 근처 카페에서 창밖을 구경하거나 글을 쓰는 것이 더 즐겁다. 몇 날 며칠을 한 동네에 머무르며 단골 가게에서 인사를 나누는 평화로움. 여행지에서 하는 달리기도 좋다. 어떤 풍경이 나올지 예측이 되지 않는 곳을 뛰는 경험은 근사하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열정적으로 달리는 모습은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다. 집 근처에서 관성적으로 운동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화성시에서의 달리기나 후쿠오카 오호리공원의 달리기는 그 나름의 맛이 있다.


내게 여행은 낯선 곳을 탐험하는 여정이다. 서울에 있는 수많은 규칙과 정답에서 벗어날 수 있는 순간이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문제 되지 않는 곳. 그래서 삶이 벅찬 순간에는 여행을 가고 싶었다. 한창 프로젝트가 바쁘던 때에는 비행기표를 끊으면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일상과 여행의 경계가 명확하던 그 시절은 하루라도 빨리 '여행 구역'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2년 정도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1개월 반 정도가 지났다. 아직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않았기에, 아침에 운동을 가고 낮에 카페에서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이 있다. 저녁을 지인들과 시끄럽게 보낼 수도 있고 혼자 적막하게 보낼 수도 있다. 어떤 옷을 입던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길을 가다 새로 보이는 카페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문득, 서울을 여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을 하지 않고, 충분한 돈이 있고 마음에 여유가 있는 곳에서의 시간은 여행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 기분을 느낀 이후로, 여행을 참 좋아하던 나는 갑자기 여행이 그리 귀하지 않게 되었다.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서울에서도 느낄 수 있으니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여행을 갔을 때의 낯선 공기가 그립기는 하나, 내가 궁극적으로 여행을 사랑하던 목적은 그 공간에 있지는 않았다.


삶을 여행하는 법을 깨우쳤음에도 '충분한 돈'을 벌려면 일은 해야 하겠지. 내가 사랑하는 여행을 삶에서 지속하기 위한 방법은 고민을 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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