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서울을 사랑하지만.
서울에서 산지 벌써 7년을 꽉 채워간다. 일 년에 몇 번 가지 않는 고향은, 점차 내게 낯선 공간이 되었다. 우리 집이라기 보단, 엄마 집 혹은 아빠 집. 이젠 그곳엔 내 방도, 내 물건도 거의 없다. 샤워를 하고 나오면 꼭 써야 하는 바디로션이나 샤워가운이 없어 매번 불편할 뿐이다.
게다가, 나는 서울을 사랑한다. 전날 밤에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아침에 오는 편리함, 몇 걸음 나서면 있는 쾌적한 운동 시설과 마사지샵, 쇼핑과 힙한 식당들, 번듯한 회사 명함, 무엇을 하던 크게 주목받지 않는 익명성까지. 작은 동네에서 태어나 늘 복닥거리며 살았던 내게 서울은 정말이지 완벽한 도시였다.
그래서 문득, 나는 늙어서도 서울에 살겠노라 다짐할 때가 있다. 제사를 거하게 치르는 집안에서 자란 나는, 음식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준 이 도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씩 몰려오는 공허한 감정은 자극적인 음식과 넷플릭스, 알코올로 소구할 수 있으니.
지난 주말 저녁, 지인과 저녁을 먹었다. 실없는 소리를 하며 웃고, 떠들고, 맛있는 것을 먹었다.
그러다 정말 이상하게도 집에 들어온 순간, 눈물이 났다. 그리고 한참을 소리 내어 꺽꺽대며 울었다. 그냥 사람과 분리되어 나의 공간에 혼자 들어온 순간, 주말이 끝나고 또 내가 삶에 내던져질 것이 예상되어 두려웠다. 그렇게 정말 많이 울었다. 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과 온갖 감정이 뒤섞여 몰려왔던 듯하다.
그리고 진정이 되었을 때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목소리를 가다듬었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대번에 내 목소리를 눈치챈다. 신기한 일이다. 목소리가 왜 그러냐. 혹시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은 아니냐. 그 말을 듣자마자 또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대답을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 사실 별일 없어. 별일 없는데 그냥 마음이 그래. 사는 것이 다 이런 것일 텐데, 그냥 오늘 유독 그래.
그리고 비행기 표를 끊었다. 주말에 잡혀있는 일정은 취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울었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아빠에게 전화가 왔다. 아마 엄마가 언질 했을 테다. 아빠 목소리가 유독 다정했다. 꼭 어린 시절의 나를 달래는 것 같았다. 서울 살이가 힘들지. 아빠가 보고 싶으면 언제든지 내려와라. 주말에 동네에 새로 생긴 참치집에 가서 저녁을 먹자.
비행기표를 끊었다고 말을 하고, 또 눈물이 나는 것을 겨우 참으며 전화를 마쳤다.
그리고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맞춤법이 틀려 더 울컥한 카톡.
딸과의 통화를 마치고 꾹꾹 눌러썼을, 그 문장들.
정말이지, 사람은 너무 이기적이다.
서울을 너무 사랑하지만, 삭막한 삶에서 허망함을 느낄 때 찾는 곳은 결국 집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줄 유일한 곳.
집에 있지만, 집에 가고 싶은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