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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이주 Feb 18. 2021

분노를 노래하소서

에세이 / 맨날 참으면 속이 아파요, 저처럼


"분노를 노래하소서,"* 이런 말도 있으니까, 잘 분노하는 것은 미덕이다. 며칠 전에 이런 유튜브를 만들어 볼까 했다. 적당한 유머와 유튜브식 편집을 섞어서 <일리아스>를 소개하는 것이다. 시종일관 분노하기만 하는 아킬레우스의 모습을 영상으로 표현해보면 꽤 재미있지 않을까. 능력이 부족해서 우선 포기했다.
(* 일리아스, 호메로스, 천병희 역, 숲, 2015)



나는 화를 잘 못 내는 사람이다. 화내기는 정말로 실력이다. 결은 다르지만, 분노와 매력이 뒤섞인 아킬레우스가 있고, 당장 주변에도 실력 있는 사람이 많다.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도록 하고, 자기 안에 앙금이 남지 않도록 한다. 관계가 머쓱해지지 않도록 한다. 강력하게든 은근하게든 다수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형태로 표현한다. 또 그전에 지지를 미리 확보해두기도 한다. 결국 화를 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되, 자신의 화는 해소하는 사람이다.



화내기는 기술이며 또한 경험치의 문제다. 화를 많이 내어 봤어야 잘 낸다. 꼭 화를 내는 것이 아니어도, 자기 의사를 타인에게 곧잘 표출해 보아야 한다. 그리고 피드백을 수용하며 다듬는다. 그렇게 경험치가 쌓여야 한다.  수련하는 도중인 사람을 만나면 아주 곤란하겠지만 수련을 마친 사람이라면 존경하게 될 것 같다. 그 화는 들을 만할 테니.



나는 화를 잘 못 내는 사람이다. 화를 잘 안 내고, 그래서 잘 못 내고, 그래서 못 내며, 그러다 잘못 낸다. 극단적인 경험치 부족으로 인해 몇 년 주기로 아주 사소한 일에 폭발하여 타인과 자신에게 곤란함을 가득 안긴다.



하루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데 어떤 일행이 굉장히 시끄러웠다. 소주를 잔뜩 마시며. 그래서 조용히 좀 해 달라고 했다. 평소 같으면 무시하는데 그날은 왠지 말했다. 그리고 궁시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지금 저에게 말씀하신 거냐고 버럭했더니, 그들도 한 대 칠 것처럼 굴었다. 어떻게든 맞지는 않았다.



그들이 떠나고 나도 떠나고 나는 굉장히 후회했다. 후회와 아픔이 극심해서 2주 전에 겨우 시작했던 공부를 접었다. 그 화, 그 화를 낸 경험이 내 안을 격하게 맴돌아서, 그러고도 도저히 빠져나갈 줄을 몰라서 한동안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그 공부는 내 인생에서 꽤 중요했던 시험을 위한 것이었다. 우습게도, 식당에서 낯선 사람에게 화를 냈기 때문에 나는 내 시험을 단념했다.



화를 잘 내고 싶다. 그게 무척 어렵다. 그래서 화내기를 더욱 피한다.



어제 화나는 일이 있었다. 너무 분해서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었다.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내게 그런 말을 하느냐. 너의 오해로 나를 깎아내리지 마라. 그러나 화낼 수 없었다. 나는 화를 잘 못 내니까.



하지만 정말 내지 않느냐, 그렇지 않다. 엄청 낸다. 대신에 수동적으로. 가령 이런 식으로. 이런 글로. 그에게 직접 말하지 않고, 글에 직접 쓰지도 않으면서.



오갈 데 없는 화가 몸의 바깥으로 스멀스멀 뿜어져 나간다. 수동적이지만 분명히 화가 난 모습이다. 꽁하거나, 말을 멈추거나, 가만히 있거나, 가만히 있지 않거나, 예컨대 도망치거나, 잔뜩 먹고 잠들거나. 누군가 먼저 내 화를 들어주고 풀어주길 기대하면서.



능동적으로 화낼 자신이 없다. 내어 보았던 화는 전부 내게로 돌아왔다. 낼 때마다 후회했다. 내지 말 걸 그랬나.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 말은 꼭 했어야만 했는데. 한 것을 후회하고 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후회가 아프고, 아픔이 오래 삶을 방해해서, 그 훼방이 영원히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아프고 무섭다.



그래서 계속 참는다. 참아도 아프고, 참은 것을 후회하지만, 내는 것은 더욱 견딜 수 없다. 화냈던 기억들이 너무 아프다. 그래서 화내지 않는다. 경험치가 쌓이지 않는다. 나는 화를 잘 못 낸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 더 시원할까. 참 요원하다.





브런치 독자들께


안녕하세요, 브런치를 처음 시작한 이이주입니다. 브런치에 적응하는 동안만 이렇게 글쓴이의 말을 남길까 합니다.


천천히, 오래 쓰고 싶습니다. 일기와 에세이 사이에 있는 것을 주로 씁니다.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와 한국 현대소설의 서평도 올릴 것 같아요. 소설을 쓰고 싶어서, 엽편도 가끔 올리겠습니다.


오늘 하루 어떠셨나요. 늘 평안한 나날이 되시길 바라요.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또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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