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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가연 Jun 03. 2022

크리스티나 양의 방

연대의 감각을 느낀 공간

수비드 닭가슴살처럼 설날을 보냈다. 수비드 닭가슴살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닭가슴살을 시즈닝한 뒤 진공포장한다. 진공포장한 닭가슴살을 일정한 온도를 유지하는 뜨끈한 물에 담근다.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너무 뜨거우면 단백질이 엉기고, 너무 차가우면 요리가 안 된다.


나는 이따금 수비드 닭가슴살처럼 시간을 보낸다. 피곤하면 열이 잘 나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세트아미노펜같은 해열진통제를 싫어한다. 그 약을 먹으면 속이 쓰리고 근육이 아리다. 위액이 아슬아슬하게 올라오고 목이나 등 쪽의 근육에 담이 걸린다. 가장 효과가 좋아서 생리통 진통제로 먹는 덱시부프로펜도 정도는 약하지만 비슷한 부작용이 있다. 표준화된 의료 체계에서는 감기로 의심되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높지 않은 열이 난다면 같은 처방을 사용한다. 모든 의약품에는 분자구조에 맞춘 호명의 질서가 있고 그 질서에 따라 기능을 지정한다. 병든 육체에도 비슷한 규칙이 적용된다. 열이 난다면 항상 아세트아미노펜이나 그것과 비슷한 화학적 속성을 가진 약품을 쓴다. 그리고 나의 부작용은 아나필락시스 쇼크 반응처럼 거대하지 않기 떄문에 얼마간의 불편함은 참는 게 의학적으로 옳은 선택이다.


그 규범에 맞추어 하얀 타이레놀로 몸뚱아리를 시즈닝하고 이불로 포장했다. 그리고 일정한 온도를 유지했다. 너무 많이 먹으면 구역감이 나서 약효가 안 듣거나 근육을 다치고, 너무 적게 먹으면 고열로 더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수비드 닭가슴살처럼.


설날엔 침대에 누워서 하루종일 틱톡을 봤다. 모든 것을 할 수 있기에 질병 없음도 성취해야 하는 긍정 과잉의 현대와 환자를 사회에서 격리하여 수용하는 규율 사회의 유산이 합쳐져 나는 잘 아프는 기술을 습득하지 못했다. 나는 앓는 사람을 거울 속과 소설이라는 두 개의 가상적 공간에서 만났다. 가끔 조부모님이 편찬으시면 병문안을 가기도 했지만 우리 모두가 예절로 중무장했기에 나는 질병의 민낮을 보지 못했다. 네글리제를 입은 책 속의 그 여자들은 고양이와 노닥거리면서 책을 공상하는데 나는 유튜브로 고양이를 보고 틱톡으로 타인의 세계를 염탐한다.


틱톡 영상에는 story time이라는 일종의 장르가 있다. 거창할 거 없이 숏폼 컨텐츠에 최적화된 막장 드라마인데 보통 레딧에 올라온 썰을 기반으로 하는 것 같다. (틱톡적 정신에 걸맞게 그 유래나 정확한 명칭을 굳이 찾아보는 수고는 하지 않겠다.) 팟캐스터가 레딧 텍스트를 낭독하는 컨텐츠를 만들고, 그 음성을 배경음으로 네일아트나 쥬얼리 영상이 얹힌다. (내 피드 fyp에 올라오는 것들이 보통 이렇다. 틱톡의 알고리즘은 꽤 독특해서 아마 다른 사람의 피드에는 다른 종류의 영상이 올라올지도 모른다.) 보통 자신-I이 선인이며, 악녀가 자주 나온다. 모두 같은 도입부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Am I the asshole이라는 문구가 보통 첫 문장이며 화자의 나이와 성별, 등장인물을 필두로 story time이 전개된다. I, 25 years old female... 연애, 결혼, 가족사가 주된 내용이며 항상 화자가 여성은 아니다. 실화와 주작의 경계를 오가는 막장이지만 청자가 보이는 감정적 반응은 항상 진실하다.


위키피디아에서는 막장 드라마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막장 드라마 혹은 줄여서 막드는 복잡하게 꼬여있는 인물관계, 현실상으로는 말이 될 수 없는 상황 설정, 매우 자극적인 장면을 이용해서 줄거리를 전개해가는 드라마를 의미한다. 막장 드라마의 하위 장르로는 에로 드라마나 속물 드라마가 있다.

자극적이고 극단적인 설정을 사용하여 부정적인 평가를 받지만, 대다수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여, 흔히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로 불린다.[1] 극단적인 설정으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기도 한다."


막장은 비현실적이라는 것이 보통의 인식이나 이는 막장을 즐기지 않는 사람의, 혹은 막장을 도덕적으로 허용하지 않는 사회의 관점에 불과하다. 막장은 사실적이다. 일반적으로 인생이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 힘든 사건의 연속이며, 대인관계 또한 이에 상응하며 마구 뒤엉킨다. 그림같은 가족이란 그림 속에서만 존재한다. 근대성이 20세기의 어느 시점에 현존했던 상태라기보다는 근대가 개발해낸 규범에 가깝듯, 근대적인 개인 또한 현상이라기 보다는 이상이었다. 많은 인간은 비규범적으로 관계맺으며 정상가족 바깥에서 비정상적으로 살아왔다. 디디에 에리봉은 <랭스로 되돌아가다>에서 '노동자들의 세계에서 부부와 가족의 구조는 아주 오래전부터 좋고 나쁨을 떠나 복잡성, 다양성, 절연, 잇단 선택, 재구성 등으로 특정지어 왔'음을 지적한다. ''동거하는' 남녀, '배다른' 아이들, 이혼하지 않은 채 각각 다른 여자, 다른 남자와 사는 유부남, 유부녀 등등'이 1990년대에 와서야 등장하는 대안적인 형태가 아니며, 이러한 형태의 가족 관계는 그동안 노동자들의 세계에서는 꾸준히 존재했다. 틱톡 스토리타임에서는 에서는 이토록 다변적인 관계를 3분 이하의 숏폼으로 귓구멍에 쑤셔넣어준다. 최대한 압축해 개인성을 없앤 서사 전달 방식에서는 일종의 시적 형식미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막장은 누구나 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 세계이다. 그 인물을 다루는 방식은 물론 문제적일 수 있고, 특정 유형의 인간에게 수치심을 주는 요소 또한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18개의 시즌동안 동성애와 이성애를 가로지르며 온갖 막장 서사를 쌓아온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가 증명하듯 막장스러운 세계관은 비규범적인 인간이 한둘쯤 나온다고 무너지지 않는다. 되려 양질의 막장은 다양한 인간상을 재단하는 대신 풍부한 서사 구축에 이용한다. 경직된 세계와는 달리 이미 틈이 있는 세계는 사방에서 잡아당기는 대로 늘어난다. 그레이-슬론 병원에는 하나의 공간을 공유하며 부대끼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있고, 사람들이 어이없이 죽거나 기적적으로 살아간다. 고귀한 자도 실수를 저지르고 어떤 인성 파탄자는 성숙한다. 그레이 아나토미를 더러 세상에 그런 병원이 어디 있느냐고 방문할 수 있지만, 그레이 아나토미 속 그레이-슬론 병원은 실재의 병원이라기 보다는 세계의 비유로서의 병원이다. 사실 의학적 정확성을 따지려면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기 보다는 해부학 교과서 그레이 아나토미를 읽는 게 맞다. 막장을 불행 배틀이라 칭하는 비판 또한 있지만, 실재의 사람들이 살아가며 마주하게 되는 온갖 말 안 되는 사건들을 고려하면 과도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어느날 아세트아미노펜에 귀찮은 부작용이 생긴 내 육체 같은 사건, 그 시점을 즈음해서 신체의 부분들이 맞아떨어지지 않게 된 현상은 분명 실재했지만 비논리적이며 막장스럽다. 대한민국의 말도 안 되는 근대사가 증빙하듯 대부분의 인간은 막장스럽게 살아간다. 너는 막장이 쓰니? 니가 편하게 살아서 그래. 고생을 많이 해서 그런가 나는 달기만 한데.


2021년 초반부에 잠깐 쉬는 기간이 있었다. 복수전공필수 3학점이 남아서 졸업을 못 했고, 그 강의는 2학기에만 열렸다. 이전의 몇 년간 도전하는 청년 에세이집으로 써내면 히트할 만한 불행 스펙을 쌓았는데, 그 기간 동안 몇 년 동안 몸에 쌓인 충격을 흘려보냈다. 그러면서 그 기간 동안 하루종일 집에서 그레이아나토미를 보았다. 가끔 친구들과 공모전을 준비하거나 학부연구생 잡일을 했고 책도 읽었지만 항상 태블릿을 옆에 끼고 그레이를 일어나서 잘 때까지 보았다. 그 기간 동안 드라마가 나였고 내가 곧 드라마였다. 드라마에선 여러 플롯을 교차시키는데 그로 인한 감정적인 소모가 상당히 컸다. 각 인물의 복잡한 개인사와 그들 사이의 다층적인 인간관계, 병원 내부의 권력 구조와 아프다가 살아나거나 죽는 환자들을 빨아들이듯 보았다. 그때는 넷플릭스에 시즌 16까지 올라와 있었다. 처음에는 말 안듣고 사고나 치던 인턴이던 그레이가 레지던트를 거쳐 일반외과의 과장이 되는 모습을 보니 내가 다 뿌듯했다. 특히 시즌 1에서 그레이와 함께 인턴을 시작한 크리스티나 양, 이지, 카레브, 오말리와 그들을 거느리던 레지던트 베일리와는 정이 깊게 들었다. 그들은 가상의 인물이지만 오랜 기간을 함께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공와 실이, 의도와 실수가 있는 한 인물의 서사를 단단히 구축하고 그를 면면히 알 수 있게 하니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었다. 그레이 아나토미는 의학 드라마이기에 능력주의의 한계를 가지긴 한다. 여성, 성소수자, 한부모가정, 인종 등 다양한 이슈를 반영하지만 의사여야 한다는 꼬리표가 있다. 그러나 그레이는 그들의 개판같은 삶을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담아낸다. 드라마 속의 의사들은 가끔 실수를 하지만 꽤 괜찮은 의사다. 그러나 직업 바깥에서는 엉망진창인 인간이다.


시즌 18까지 온 지금은 성숙하게 문제를 해결하지만 시즌 초반의 그레이와 동기 인턴들은 그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동안은 공부만 하다가 환자를 대해야 하게 되었기에 자신의 삶을 현명하게 꾸리는 방법도 몰랐고, 건강한 관계도 못 맺었고, 차분하게 숙고하며 선택을 할 시간도 없었다. 그때는 관련법령의 개정 전이라서 첫 근무가 48시간이었다. 그래도 사람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막장 드라마는 모두가 모두와 사귄다. 시즌 2에서 크리스티나 양은 심장외과 과장인 버크와 연애를 시작했다. (시즌 2가 방영된 2005년은 공적 위계와 사적 관계에 대한 담론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았다.) 가벼운 관계로 시작한 둘의 관계는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버크는 크리스티나에게 집 열쇠를 주며 자신의 사적 공간에 크리스티나를 들여온다. 버크의 방은 놀랍도록 깔끔하고 모든 것이 질서에 맞추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다. 버크는 크리스티나 또한 그녀의 집을 공유하고 동거를 시작하길 바라지만 크리스티나는 강경하게 거부한다. 갈등은 깊어지고 결국 크리스티나는 자신의 방을 공개한다.


병원에서 크리스티나는 실력 있고 똑부러지는 인턴이다. 모두가 그의 성공을 의심치 않고, 본인도 자신의 행동에 자신감이 넘친다. 그러나 크리스티나가 공개한 그녀의 방은 더럽기가 그지없었다.


  

크리스티나는 버크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여기서 살아. 엄마가 꾸며주고 갔다. 나는 빨래도 안 하고, 속옷은 사서 입어. 여기 식탁 밑 보이지, 6개월치 잡지가 쌓여 있는데 절대 안 읽을 걸 알지만 버리지도 않을거야. 나는 설거지도 안 하고, 바닥도 안 밀고, 휴지도 안 채워넣어. 한번은 청소도우미를 고용했어. 울면서 뛰쳐나갔지. 냉장고에 있는 거라곤 물, 보드카, 제로 콜라 뿐인데 나는 신경도 안 써. 근데 넌 아니지. 아직도 같이 사는 게 좋은 생각 같아?"

This is where I live. My mother decorated it. I don't do laundry. I buy new underwear. And see ah under the table, 6 months of magazines that I know I'll never read but I won't throw out. I don't wash dishes, vacuum or put the toilet paper on the holder. I hired a maid once. She ran away crying. Ah the only things in my fridge are water, vodka and diet soda and I don't care. But you do. Still think living together is a good idea?


내 방은 크리스티나의 방과 다르지 않다. 나는 빨래도 하고, 바닥도 밀고, 냉장고도 채우지만 입다 벗은 옷가지나 정리되지 않은 시간이 자기 마음대로 널부러져 있다. 나는 이렇게 살아왔다. 오늘은 3월 18일이다. 설날이 2월 1일이었고 그때 청소를 했어야 됐다. 헝클어진 방에 규칙을 만들어서 바닥까지 헝클어놓지 않고도 삶을 쌓아올릴 수 있도록 몸을 움직였어야 했다. 그런데 내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날이 아니라도 하루 정도는 비워서 방을 치웠어야 했는데 그 뒤에는 새로운 일거리가 들어왔고, 생리가 터졌고, 전시를 준비하거나 해체했고, 수업이 개강했다. 중간에 바닥 청소나 이불빨래도 돌렸지만 깔끔한 방은 총체적인 준비가 필요하기에 거의 두달이 되는 기간 동안 내 방은 깨끗했던 적이 없다. 오늘만의 일이 아니라, 항상 내 방은 이랬다.


크리스티나의 방을 본 뒤로는 더 이상 외롭지도 수치스럽지도 않았다. 유치한 말이지만 크리스티나의 엉망인 삶이 나에게는 최고의 위로였다. 성취 지향적인 삶과 칼같이 깔끔한 내부공간은 공존 불가능함을 수용했고 자신의 방 하나도 관리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서도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사실은 이렇다. 집에선 잠만 잤고 일은 작업실에서 했으니 기능상에 큰 무리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비위생적이지만 방 안에 썩는 쓰레기는 없다. 다만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이 좀 많을 뿐. 세탁한 옷은 건조기로 바로 돌려 빨래바구니에서 빼지도 않고 건져 입지만 주름이 생겼지만 청결한 생활은 유지하고 있다. 물건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녀서 그렇지 내가 할 일은 곧장 해낸다. 그냥 이렇게 산다. 사건 전개는 개판이지만 시청률은 유지하는 막장 드라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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