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자유롭나? 곁에서 지켜본 바로는 전혀 아니다. 예술인도 사회생활을 하고, 시스템의 압박을 받고, 남에게 비치는 모습에 신경 쓴다. 예술 업계는 워낙에 좁기 때문에 그 압박이 결코 약하지 않다. 예술가라면 자유롭다는 사회적 인식이 있지만 실상은 그 반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안다고들 농담하는데 내 생각에는 농담이 아닌 것 같다. 한 다리 건너면 알락 말락 해도 두 다리 건너면 확실히 모두가 모두를 안다.
나는 전시회가 명절 같다고 느꼈다. 분명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도 보고, 신나게 푸념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었는데 마치면 피곤한 명절 말이다. 애정이 섞였을지라도 약간은 뒤틀린 할아버지의 덕담에 온몸을 바쳐 방어하고, 집안 어른들의 취직/결혼/돈 걱정에 필사적인 유머로 대응하는 한국의 명절과 조금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그동안의 작업을 내보이는 자리인 전시, 공연, 북토크 등에는 품앗이라도 해주듯 축하하러 삼삼오오 동료들이 모인다. 아끼는 사람의 얼굴도 오랜만에 보고, 서로의 삶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이야기도 나누다가 간다. 선물로 받은 케이크도 같이 먹는다. 전시가 아티스트 명절이라면 아티스트 명절 음식은 조각 케이크다. 프리랜서 비율이 높은 예술인의 삶은 원자화되어 있기에 대화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이런 자리가 참 값지고 귀하다. 와준 사람이 긴 기간 함께하며 우여곡절을 곁에서 지켜본 사람이라면 더 반갑다. 물론 방문객은 나의 동료 선에서 끝나지 않는다. 취직 못한 딸은 걱정하다가 간만에 자랑할 만한 일이 생겨서 기쁜 아빠도 오는데 아빠는 친구까지 끼고 오신다.
분명 반가운 사람들이지만, 오래간만에 만나서 정말 기쁘지만, 피곤했다. 내가 겪은 전시란 긴장할 일의 연속이었다. 할아버지의 덕담 아닌 덕담에 대비하듯 전시장 오픈 전에 모든 것의 준비를 마쳐야만 함은 물론이고, 전시 기간 내내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했다. 관객은 딱 한 번 전시장에 방문하고, 그 한 번을 망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준비하느라고 잔뜩 고생했고, 전시 중에도 긴장을 곤두세우고 있는데 맞이할 사람은 계속 온다. 반가운데, 분명 반가운데, 만나서 행복한데 피곤하다. 육체적으로도 소진된 상태에서 만나서다.
근데, 그렇다고 안 오면 엄청 섭섭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