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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가연 Jun 28. 2022

2022년의 절반이 지났고 나는 이렇게 살았다.

2022년의 반이 지났다. 얼마나 할 일이 많은지. 간이 세 개쯤 있는 사람마냥 매일 독소를 쌓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가끔 대학원 쌤들이랑 해소를 하긴 하지만 이 사람들 술을 꽤 마시는 편이라 간에 도움은 안 된다. 이러다 독에 가득 차가지고는 복어처럼 부풀어 오르지 않을까 걱정도 된다.

반년을 어떻게든 살아남았구나. 올해 1월에는 건축 설계와 영원히 결별하기로 결심했다. 학부 포트폴리오에는 주거 프로젝트가 없어서 공백을 해결하고자 정림학생건축상 공모를 넣었는데 리서치만 재밌었다. 솔직히 내가 건축사사무소 소장이라도 나 같은 사원은 별로일 것 같다. 이건 자기비하가 아니다. 적성의 문제를 인간됨의 문제로 수렴해서는 안 된다. 각각의 사람은 그 사람과 가장 잘 맞는 분야가 있다고 나는 믿는다. 사람마다 그런 분야가 있기 마련이고 없다면 사회적 문제다. 아무튼 1월은 그렇게 보냈고, 2월 마지막 주에는 전시를 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기획한 전시였는데, 나름대로 괜찮게 지나갔던 것 같다. <코로나 19 예술로 기록>에 작업물 제출도 했다. 저게 잘 되겠거니 했는데 나름 괜찮았는지 우수 어쩌고로 선정도 됐다. 근데 추가 상금은 못 받았다. 아무튼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러고 나니 3월에는 대학원 개강이었다. 자대로 대학원을 갔기 때문에 설계 수업 없는 개강 느낌이었다. 강독 자료가 매주 주어지고 가끔 발제를 해야 했으나 복전에서 매번 했던 일이기에 새롭지 않았다. 나는 같이 고민해줄 사람들이 있어서 정말 행복했고 설계 수업이 없으니 거의 뭐 천국이었다. 근데 동기들은 갑자기 다가온 인문대식 공부의 압박에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건 고생을 덜 해서 그래'라고 꼰대 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건축학도가 인문대생 사이에서 공부하면 꽤 힘들어진다. 건축가는 목적 지향적인, 최적화된 사고를 하는데, 인문대 공부는 그런 사고마저도 비판하게 유도한다. 아무튼 옆동네 인문대 대학원생은 매주 몇 권씩 읽어가는데 그거에 비하면 강독 양도 많지 않고, 설계 수업이 없어서 저녁시간도 다시 얻었고, 나는 아주 만족했다. 역시 행복은 상대적이다. (교수님이 우연히 이 글 읽고 강독 양을 늘리면 어떡하지?) 여기에 더해서 3월에는 학교 다니면서 인생 첫 전시 비평도 쓰고, 기획안도 넣고, 지원사업도 넣었다. 비평은 청탁받았던 거라 올라갔지만 뒤의 일들은 서류전형에서 떨어져서 먼지처럼 사라졌다.   

4월에는 세미나 발제 준비를 꽤 열심히 했다. 성장했는가? 잘 모르겠다. 내용이 꽤 현학적이어서 고생했다. 자기이론Autotheory, 페미니즘, 에이드리언 파이퍼, 칸트주의 이 네 축을 엮어가는 비평적인 글이었다. 올해 들어 소화하는 텍스트 중 비평의 비중이 많이 늘어났는데, 비평은 이론서와 또 다른 얽힘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활자가 참기름 바른 것처럼 부드럽게 넘어가지 않는다. 농담 따먹는 글이나 쓰고 싶어 하는데 나는 비평을 할 수 있을까? 약간 고민했다. 그래도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지적 자극이었다. 그러면서 전시 준비를 하긴 했지만 결국 계약 해지했다. 이렇게 또 하나의 노동이 먼지처럼 사라졌다. 큐레이터 양성사업 신청 넣은 것도 떨어졌다. 아,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길에서도 기획서 썼다. 진짜 억울해가지고 내가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진심으로 고민했다. 제주도의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면서 기획서 쓰고, 동료들과 저녁에 한잔 하면서 얘기 나누고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서 기획서 수정했다. (그런데 이건 붙었다!)

5월부터는 너무 바빠졌기에 기억이 해동 잘못한 송편처럼 눌러붙어 있다. 무언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기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기말까지 끝내야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연구 진행을 위해서 인터뷰 가고, 강의 듣고, 전시 보고, 계속 읽고 끊임없이 썼다. 진도를 팍팍 빼야 하는데 사소한 디테일에 전착해가지고 몇 번 공회전했다. 성격은 예민해가지고... 폭풍처럼 일만 했다. 그렇게 저번 주에 인생 첫 퍼포먼스 겸 토크 마치고 레포트 세편 제출하고, 이불 빨래 돌리고 나니 오늘이다. 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중간에 권연벌레가 집에서 나와가지고 사는 게 허무하고 절망스러웠다. 비슷한 벌레를 작업실에서 봐서 더 그렇다. 그리고 연구실에서는 바퀴벌레가 계속 나온다. 집에서는 절대 일하고 싶지 않고, 도서관에서 작업실로 책 옮기기 싫어서 독서는 학교에서 처리하는데 이 시스템을 바꿔야 하나 고민스럽다.

반년 동안 꾸준하게 이어온 일도 있다. 책 만들고, 번역 스터디하고, 책 읽는 스터디 하고,  글쓰기 모임 하고, 뜨개질하고, 쌤들이랑 술 마시고, 여행 다니고,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의 전시 보러 가고...  이런 나날들이 나를 살아있게 하는데 개인적인 일들은 공개적으로 써내려 나가기가 조금 그렇다.

올 초에 세운 목표가 몇 개 있다. 저축은 한참 멀었고, 통계 공부도 못 했고(이거는 연구를 계속하려면 진짜 해야 한다), 매주 브런치 글 업로드도 못 했지만 그래도 몇 개의 목표는 달성했다. 브런치는 글을 올려도 반응이 잘 안 오기 때문에 올리기 귀찮아지는 것 같다. 한마디로 도파민이 부족하다. 예술 쪽 일을 주업으로 삼게 된 지 올해로 2년 차인데 앞으로 내가 원하는 일을 하는 데에 필요한 맷집은 어느 정도 갖추게 된 것 같다. 열심히 쓴 기획서가 먼지가 되어도 별로 슬프지 않고, 같이 일해줄 동료도 있다. 이제 돈만 어떻게 해결이 되면... 그래서 제 통장 번호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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