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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주의 먼지 Nov 29. 2022

책, 들여다보기#13. 야생의심장가까이

#도서제공



내겐 기쁨 그 자체도 악만큼 큰 기쁨을 주진 못했어, 그녀는 놀라며 생각했다. 그녀는 모순들과 이기심과 활기로 넘실대는, 자기 안의 완전한 짐승을 느꼈다.    [본문 21p]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건 뭐니?” 선생님이 다시 시도했다.

 주아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녀는 말할 준비가 되었으나, 곧 그걸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는걸 깨달았다.

 “모르겠어요. 모르겠어요.” 그녀가 절망에 차서 말했다.   [본문 81p]


물은 장님에 귀머거리지만 벙어리는 아니어서, 밝은 에나멜 욕조아 만나면 쾌활하게 반짝이고 보글거린다. 실내는 숨막히게 답답하다. 뜨거운 수증기와 뿌연 김이 서린 거울, 젖어 있는 벽면 타일에 비친 벌거벗은 젊은 여자의 그림자.  [본문 100p]



 책을 폈다, 덮었다. 여러 번 그랬다.

밀물처럼 밀려오는 감정에 휩쓸리다가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다가 까무룩 정신을 잃기도 했다. 처음엔 이해하기 위해 읽었으나 이내 그냥 따라가보기로 했다.

 정확한 이미지나 형상을 하고 있지 않은 책이다. 어떠한 감정선이 놓여져 있고 나는 그걸 그냥 느낄 뿐이다. 너무 어렵게 들어간 책을, 며칠을 덮어 뒀다 다시 읽게 만든 용기는 [야생의 심장 가까이] 담당 편집자의 레터에서 이런 문구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 책을 집어 들었고 미술관에 걸린 그림 한 점, 한 점을 감상하는 기분으로 글을 읽어 내려갔다.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의 집합. ’, ‘찢겨진 사진 조각’같은 느낌이 남은 소설. 무언가 알기 위해 책을 읽진 않는가?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고 싶어 책을 탐닉하던 시절이 있는가? 지금까지 ‘이해하지 않기 위해 읽은’ 책은 없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에 다른 시각을 던져준 소설. 몰아치는 에너지 덩어리를 떠안은 느낌의 글. 감정의 덩어리들은 독자에게 퍽- 내던진 글. 어떻게 이런 문장을 쓸 수 있을까? 읽고 또 읽고 되짚어서 다시 읽었다.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흐름에 따라가기 위해. 그리고 좋은 문장들이 많았기에.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데뷔작, [야생의 심장 가까이]다.



 #암실문고 #소설추천 #클라리시리스펙토르 #데뷔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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